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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정'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던 그가 한 정치인을 위해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12월 대선을 며칠 앞두고 신해철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유세 현장에 나타났다. 몸에 두른 노란색 어깨띠는 온통 검은색인 그의 옷차림과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신해철은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야 말로 화합과 발전과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라며 "현명한 선택"을 부탁했다.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멀찍이 돌아다녔는데..."

지난 2002년 12월 5일 여의도백화점앞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문성근, 신해철, 허운나 의원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2002년 12월 5일 여의도백화점앞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문성근, 신해철, 허운나 의원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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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명계남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은 신해철은 4분 40여초 동안 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지 조목조목 밝혔다. 연설은 그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신해철은 "저는 정치나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지금도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100미터, 200미터씩 멀찍이 돌아다녔다"고 운을 뗀 뒤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고집은 버리기로 했다"며 지지연설에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우린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밟고 일어서고, 경쟁하고, '네가 남의 머리를 밟지 않으면 남이 너의 머리를 밟고 일어선다'는 협박 속에 살았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맹수들이 서로 물어뜯는 맹수 우리하고 똑같다"고 일갈했다.

또 보수정권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정권은) '이딴 식으로 하면 북한이 쳐내려온다',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 '미군 철수 하면 어떻게 된다',  끝없이 협박을 던졌습니다만,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부르짖은 늑대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신해철은 "자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를 돌릴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며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인 노무현"을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때문에 신해철에게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모든 대외 공연을 취소하고 한 달 여 동안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는 같은 해 6월 21일에 치러진 노무현 추모콘서트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완전히 삭발 한 채 나타났다.

그 자리에서 신해철은 "노무현을 죽인 건 이명박, 한나라당, 조선일보가 아닌 바로 나와 우리들"이라며 "저는 가해자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올리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위해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숨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대표곡 '그대에게'를 불렀다. '그대에게'를 선곡한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 보다는 앞으로의 있을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2년 12월 7일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가수 신해철씨.
 지난 2002년 12월 7일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가수 신해철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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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켓 발사 경축"... 거침없는 발언으로 자주 화제

신해철은 침묵하지 않는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유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 자주 화제가 됐던 인물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신해철은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을 두고 "전 국민이 영어를 하게하고 싶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가 호주하고 캐나다와 함께 영국 연방으로 들어가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같은 해 신해철은 진중권 교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정부의 '촛불 집회 과잉 진압' 등을 지적했다. 당시 400회 특집으로 마련된 백분토론에서 그는 '가장 토론을 잘하는 비정치인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방송에서 신해철은 '올해 가장 화나게 했던 뉴스'로 '정치인 관련 뉴스'를 꼽고 "여당야당을 막론하고 국회의원 여러분이 보여준 모습은 청소년들이 보기에 모범적 모습이 아니다"라며 "국회 자체를 유해 장소로 지정하고 뉴스에서 차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뒤에 앉은 방청객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또한 2009년에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두고 '경축한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후에 진중권이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 '진중권의 이슈 인 이슈'에 나와 "홈페이지에 썼던 말 전체는 일일이 비꼰 것이며, (인공위성 발사를 두고) 우리 사회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측면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2002년 신해철의 노무현 후보 지지 연설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신해철입니다. 이 자리 노 후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도 정치에 '정'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정치가 좋아서, 정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인 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는 뿌리 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저 역시 정치나, 사업이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지금까지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100미터, 200미터 멀찍이 돌아다녔습니다마는 이번 선거에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이,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입니다마는, 지켜온 가치를 버리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괴로움도 있었습니다만, 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 우리 모두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더 큰 것을 위해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작은 고집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의 삶을 회상해보면,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의 삶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린 어렸을 때부터 이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이렇게 배워왔습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고 경쟁하고 네가 남의 머리를 밟지 않으면 남이 너의 머리를 밟고 일어설 것이고, 그리고 대학에 못 들어가면 네 인생은 '떡'되고 이걸 안 하면 너 혼자 낙오될 것이다 하는, 끝없는 협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사람하고 사람이 살아가야 될 이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맹수들이 서로 물어뜯는 맹수 우리하고 똑같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박수)

우리는 모두 경제, 경제, 경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사나, 모든 삶의 가치를 하나로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집에 100억, 200억이 쌓여 있는 집이라도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없고 부모가 서로 뺨 한번 부비지 않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행복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보수정권이 우리에게 했던 협박들, '이딴 식으로 하면 북한이 쳐내려온다',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 '미군 철수 하면 어떻게 된다', 끝없이 협박을 던졌습니다만,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부르짖은 늑대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한 안정이었습니까. 그들의 안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정입니까, 정권을 위한 안정입니까. 국민 생활을 위한 안정입니까. 우리 민초의 삶은 정권들 아래서 바람에 흩날리면 흩날리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리의 삶은 젖어 갔는데 그들은 줄 창 지금까지 안정을 외쳤습니다.

자,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택할 길은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를 돌릴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 저는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야말로 화합과 발전과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태그:#신해철, #노무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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