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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를 살면 1년만 마음이 편하다. 삶이란 게 녹록치 않다 해도 한국의 전세는 잠시나마 편했던 1년을 벌주기라도 하듯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 이 전셋돈을 빼서 나갈데라곤 주변에 없다. 모르는 먼 곳으로 가야하고 아이들을 전학시켜야한다

아이들 학교를 고려한 이사는 옛말이고 없는 형편껏 옮겨야 살 수 있다. 나 역시 용인시 수지구 중에서도 제일 전세가가 비싼 동천동에서 산 지 4년이 넘어간다 2년마다 위협적으로 오르던 전세값이었지만 이번은 2년 만에 9000만 원을 찍었다. 전세만기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고 입맛이 없다. 내가 뭘 잘못봤나 자꾸 부동산싸이트를 뒤지지만 같은 결과에 입술만 마른다.

무탈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큰 아이와 유치원에 이제 좀 적응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를 보면 다른곳을 갈 수없다.

올해 초, 공교롭게 늘 근태가 문제였던 남편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받고 쉬게 되었다. 석달간이나 구직활동을 한 남편은 그동안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쉼없이 구직준비를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석달이 지난 후 다행히 취직을 하게 됐지만 퇴직금은 그간의 생활비로 사라지고 난 후였고 올려질 전세값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찾아봐도 생기지 않았다.

요즘은 전세를 전월세로도 많이들 돌린다고 들었다. 2년치 월세를 일시불로 계산해 주인에게 드리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큰아이 앞으로 조금씩 모아둔 적금을 깰 생각도 해본다.
전세 만기 3달 앞, 2달 앞 이 될수록 초조하고 불안하다. 주인이 연락이 없네... 어떻게 할 모양인건지... 1달 보름, 1달. 앞인데도 연락이 없다.

한달 안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자동갱신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우리 부부가 애초부터 그 법을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서 2년만 살고 나갈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집에서 오래 버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부동산업자들이 그냥있으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만기일로부터 딱 이주남겨둔 즈음, 양심적인 남편은 눈치도없이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실건지요..."

주인은 생각없이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고 이틀 후에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이틀동안 우리 부부는 소화도 안 되고 입이 말랐다.

이틀 후. 고스란히 9000만 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살 고있는사람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시세 그대로 9 천을 올려달라고 한다. 유순하고 물러터진 남편은 어렵게 사정을 해본다. 주인이 갖고있는 융자도 좀 감안해 봐달라고 사정을 해보지만 어림도 없는 눈치다. 급기야 사정이 안되면 나가라고 한다. 

남편이 서로 생각할시간을 갖고 내일 다시 통화합시다며 끊는다. 여자인 내가 돈을 좀 깎아달라고 사정을 좀 해볼까. 아님 원래 최소 한달 이전에 돈구할 시간을 주시는 게 임대인의 의무라며 법률적으론 자동 갱신이니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알아봐주십시오, 할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때문이다.

앞이 막막해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다들 2주 앞을 남겨두고 9천을 올려달라는 주인이 너무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대로 그냥 자동갱신으로 우겨보라고들 하였다. 입이 떨어질것 같지 않았다. 우선 노트에 할말을 적었다. 몇번을 연습한후 전화를 기다렸다.

드디어 집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인여자는 여유있게 갖고 있던 융자를 다 갚을테니 1억을 올려달라고 하루 만에 금액을 상향조정했다. 나가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그 사정이 안된다는건 주인이 알고 있는터였다. 내가 월세로 돌려서 조금만 조정이 안될까요, 사정을 해보았다. 안 된다고 했다. 사정이 안되면 집을 비우라고 했다. 집을 구할 시간을 얼마나 줄거냐고 물어보니 한달이면 되지 않겠냐는 야박하고 성의없는 말만 들을수있었다.

그때부터  난 작은목소리로 노트에 적은대로 읽기 시작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최소 6개월에서 한달 이전에 계약에 관한 의사전달을 해야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그 전과 동일한 조건의 자동갱신이 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내보내고 싶을시 6개월의 기간을 주어 집을 구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석달안에 나가길 원하신다면 응해줄 용의는 있으나 이사비용일체를 대주셔야지 않겠느냐고도 덧붙였다.

주인여자는 어처구니없다면서 말도 안된다고 했다. 난 조금의 말설임없이 좀 알아보신후 다시 얘기하실까요 물었고 여잔 좀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끊었다 몹시 불쾌해 보였다.
잘한것 같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스스로 격려했다. 어쩔수 없지 않은가. 내일 다시 연락오면 나가라고 하겠지.이사비를 대고 새로운 세입자를 시세대로 받는것이 그래도 이득일테니 분명 나가라고 하겠지. 정말 큰일이 났다. 지옥같은 하루가 지나고 담담히 주인전화를 기다렸다. 주인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좀 알아봤더니 그쪽 말이 다 맞더군요. 그냥 그대로 사세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닐까. 그냥 살라니. 이런 일도 있구나.

"복잡한거 싫어하는 성격이고 그쪽이 말한대로 내가 큰실수를 한것 인정하니 그냥 그대로 사세요."

이렇게 쿨 할수가. 내가 생각했던거와 달리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주인 여자는 잘 지내란 인사후 전활 끊었고 나와 내남편은 손을 잡고 뛰었다. 너무 기뻤다. 세상에 이런일도 있구나.

이 기쁨을 한달쯤은 제대로 누린것 같다. 정치까페 노유진을 들으며 부채주도성장을 유도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더불어 내가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안은 채 집을 사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앞으로 2년간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하겠단 다짐을 해본다. 2년후엔 늦지 않게 전화해 당장 나가라고 해댈 주인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태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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