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했다. 원작소설을 이미 읽은 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긴장하고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작가 길리언 플린이 쓴 <나를 찾아줘>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일단 영화는 원작보다 훨씬 훌륭했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지난 수십 년의 세월에 대해 딜리트(Delete)키를 '찍' 누르는 듯했다. 핀처 감독은 문장들이 쌓여 있는 한 권의 책에서 마술을 부리듯 철저히 원작을 가지고 놀았다. 멋지다. 끝까지 드라마틱 했다. 공포스럽고 움찔할 정도로 말이다.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한다면?

 영화 <나를 찾아줘>

영화 <나를 찾아줘> ⓒ 20세기폭스 코리아


원작소설은 너무 세세하게 표현해 전체적으로 지루한 감이 있었다. 300페이지쯤 읽어야 이 부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본격적인 사건은 그 뒤부터인데, 독자들을 너무 지치게 만든다. 속도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흘러가는 영화가 더 생생하고 재밌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작소설이 괜히 '원작'이라 하겠나? 원작소설에는 있지만 영화에 없는, 전체적인 흐름에 중요할 수 있는 요소들이 빠지거나 쓱 하고 지나친다. 영화 러닝타임 149분에 그정도 빠져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그 포인트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에이미의 어린시절 묘사가 그것이다. 에이미는 클 때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모델로 한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에 실제 에이미가 해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위 친구들의 보는 눈, 부모님의 기대와 감시,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 집을 나가 세상을 뒤집어 놓는 서프라이즈한 에이미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가 에이미 대변인은 아니지만 에이미의 그런 어린시절의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영화에서 좀 더 다뤄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원작소설보다 영화가 스토리도 잘 다듬고 깔끔하고 재밌고 무시무시했다. 핀처 감독은 원작을 읽고 머릿속에 큰 줄기의 시나리오를 구성했을 것이다. 군더더기는 빼고, 이렇게 저렇게 만지면 물건이 되겠구나, 하는 감독만의 느낌으로 말이다. 분명 영화는 재밌다. 그렇다고 해도 원작소설이 뒤지는 건 절대 아니다.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 굳이 원작소설도 읽기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넣을 것이다. 분명 감독이 놓친 부분들이 존재한다.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지는 읽는 이의 판단이겠지만.

결혼이란 제도에 가해자는 있어도 피해자는 없다

이 영화를 보고 1989년에 개봉한 <장미의 전쟁>이 생각났다. 비슷한 맥락의 스토리다. 첫 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가 사랑이 식고 애정도 없자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로 죽이려 든다는 영화다. <나를 찾아줘>와 비슷하다. <장미의 전쟁>보다  최신 영화라 싸움의 무기와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내 주위에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게 싸울거면 이혼 하면 되지'  '왜 서로 죽이려고 그래? 헤어지면 되지' '그러니까,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거야' '남자가 나쁜놈이네'

결혼이란 제도가 문제일까? 아니면 부부의 문제일까? 제도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결혼하는 건 우리에 '선택'이다. 으레 그래야 해서 혹은 사회적인 통념 때문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부부가 살면서 질릴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다. 이럴 땐 서로 현명하게 대처 해야 하는데, 모든 부부들이 솔로몬 같은 지혜로 잘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닉과 에이미는 서로 으르렁 하기만 한다. 서로를 물고 뜯는 데는 둘 다 서로에게 충분한 이유가 있다. 허무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결혼을 하고 서로 매일 같은 침대에 있다고 해도 중요한 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어메이징한 소시오패스 에이미​

에이미의 행동이 가장 무서웠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소시오패스 뺨을 친다. 어메이징 에이미 다운 행동을 강요받은 어릴 적부터 에이미는 이미 에이미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어야 했고, 흉내내야 했다. 자가적인 행동보다 보여지는 행동을 우선했고 자신의 행복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 여긴다.

어느 날, 어메이징 에이미는 어메이징한 시나리오를 만들 게 된다. '까부는' 남편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다시 복종시키고 세상의 관심을 다시 자기로 돌리고 별로 없는 통장의 잔고까지 채우는, '일타삼피'의 기가막힌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다.

결론은 모두 다 원하는 대로 됐지만 중간에 걸리적 거리는 일이 생긴다. 뭐 그래도 그녀에겐 걱정없다. 눈깜짝 할 사이에 플랜B를 만들고마니까. 그래야 어메이징 에이미답지. 사람이 죽어나가고, 법을 어긴다 해도 에이미는 원하는 걸 얻어야만 한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주 진지하게.

제목 <나를 찾아줘>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자신인 '나'를 찾아달라고 하는 것과 누군가가에게 제발 '나를 찾아줘'라고 하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는데, 사는 게 정말이지 드라마틱한 것이다. 그나마 이 영화는 '재밌는' 에피소드에 속하는 편이다.

적어도 남편을 죽이거나 부인을 죽이지는 않으니까. 그럼 결론은 해피엔딩? 상상은 덤으로 남겨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나를 찾아줘 결혼제도 소시오패스 부부싸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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