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넥센 중심타선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LG 트윈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에서 넥센이 LG를 12대2로 누르며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이날 넥센은 쓰리런 홈런을 쳐낸 김민성(왼쪽부터), 투런 홈런을 쳐낸 강정호, 박병호 등 중심타선의 활약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 살아난 넥센 중심타선 지난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LG 트윈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에서 넥센이 LG를 12대2로 누르며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이날 넥센은 쓰리런 홈런을 쳐낸 김민성(왼쪽부터), 투런 홈런을 쳐낸 강정호, 박병호 등 중심타선의 활약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팀 창단 6년 만에 최초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게 됐다. 넥센은 지난 10월 3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 트윈스를 12-2로 대파하고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지난 2013년 창단 첫 4강 진출에 이어, 이번 2014년에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행을 확정했다. 넥센이 이제 어엿한 프로야구의 신흥강호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증명'의 자리였다. 넥센의 지난 6년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미운오리새끼'가 시행착오를 거쳐 백조로 거듭나는 한 편의 파란만장 성장 드라마였다.

역사 속에 사라진 현대, 넥센 히어로즈로 부활

 현대 유니콘스 엠블렘

현대 유니콘스 엠블렘, '부자 구단'이었던 현대는 모기업의 재력을 통해 금세 강팀으로 성장했다. ⓒ 현대 유니콘스

넥센의 전신 현대 유니콘스는 지난 1996년 창단했다. 그 후 2007년 해체될 때까지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왕조로 군림했다. 1998년과 2000년, 2003년과 200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만 무려 네 차례나 차지했다.

하지만 현대가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2007년 팀 해체를 선언하면서 유니콘스의 짧은 황금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이름을 바꿔 재창단한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과 프런트를 상당부분 계승해서 구성된 팀이었지만 초창기의 모습은 현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국내 프로야구단들과 달리, 넥센 히어로즈는 현재 프로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다.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야구 전문 주식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모기업이 없는 대신 일정 광고료를 내고 메인 스폰서 기업의 이름을 팀명 앞에 붙이는 '네이밍 스폰서'를 모집한다. 국내 스포츠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만큼 히어로즈의 등장 자체가 한국야구에는 전에 없었던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초창기 히어로즈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대 시절만 해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 선수들을 마음껏 싹쓸이하던 부자 구단이었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생존을 위하여 선수들의 연봉을 깎거나, 아예 주전급 선수를 팔아치운 돈으로 구단 운영비를 유지해야만 하는 '가난뱅이' 신세였다. 초대 메인스폰서였던 우리담배와는 비용 문제로 법정 공방을 치르기도 했다. 히어로즈가 야구계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비판이 쏟아졌다.

구단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했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성적은 언감생심이었다. 히어로즈는 창단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보냈다. 2011년에는 51승 2무 80패로 창단 첫 최하위의 굴욕도 맛봤다.

 넥센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턱돌이

넥센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턱돌이. 초창기 하위권을 맴돌았던 넥센 히어로즈는 '한국형 머니볼'을 통해 강팀으로 성장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정신을 계승했다. ⓒ 넥센 히어로즈

하지만 히어로즈는 시행착오를 극복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젊은 선수의 육성을 통해 꾸준한 세대교체를 이루며, '유망주 사관학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다른 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던 선수들이 트레이드를 통해 히어로즈에서 자리 잡으며 꽃을 피우는 경우도 많았다. 이른바 '실속 영입'이 이어졌다.

지난 2010년, 지금의 메인 스폰서인 넥센 타이어와 계약을 맺은 것을 비롯하여 각종 70여 개 단체로부터 광고료 수입을 확보하며 최대 난제였던 재정문제도 안정궤도로 돌아섰다.

'지략가' 염경엽 감독의 부임은 넥센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지난 2012년, 넥센은 61승 3무 69패로 또 다시 4강 신출에 실패했다. 시즌 초반, 가능성을 보였으나 뒷심 부족으로 무너지자 넥센은 과감히 김시진 감독을 경질했다. 이듬해 염경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끈끈함이 2% 부족하던 히어로즈의 팀컬러는 성공적으로 변화했다. 2013시즌, 히어로즈는 염 감독과 함께 마침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14년의 넥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서건창·박병호·강정호·밴 헤켄 등 한 팀에서 MVP 후보를 4명이나 동시에 배출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았다. 넥센은 화끈한 공격야구를 앞세워 종반까지 선두 삼성의 독주체제를 위협하는 대항마로 등장했다.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창단 최고 성적을 거뒀다. 여기에 포스트시즌에서도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LG를 3승 1패로 제압하며 대망의 한국시리즈 티켓을 따냈다.

'한국형 머니볼', 프런트 야구의 새로운 가능성

모기업의 탄탄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등에 업은 대기업 구단들도 몇 년째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프런트의 영향력이 강한 몇몇 구단의 경우, 권한만 누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폐쇄된 조직구조의 한계때문에 최근 프런트 야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 반면 넥센은 '한국형 프런트 야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다.

넥센은 창단 초창기부터 철저히 프런트가 주도하는 구단 운영이 뿌리내린 팀이다. 몇 백억 원을 쓰는 부자 구단도, 조직 규모가 거대한 것도 아니지만 넥센은 작지만 효율적인 프런트의 전형을 보여줬다.

▲ 넥센 이장석 대표와 염경엽 감독 지난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에 승리한 넥센 염경엽 감독이 이장석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넥센의 역사를 논하면서 역시 이장석 대표이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투자 전문 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CEO 출신이다. 처음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며 야구계에 등장했을 때만해도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장석 대표는 이제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으로 친숙해진, 10개 구단 사장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됐다.

그의 별명은 영화 <머니볼>의 본래 주인공으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과 비교되며 붙여졌다. 빈 단장은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 선수를 영입하는 운영방식으로 유명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프런트 야구의 모범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프런트가 현장 야구인 못지않은 지식과 열정, 그리고 정확한 판단력을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넥센은 이러한 미국식 프런트 야구의 장점을 상당부분 벤치마킹했다. 이장석 대표는 빈 단장과 마찬가지로 선수를 판단할 때 OPS(출루율+장타율)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의 스카우트를 이장석 대표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히어로즈가 야구전문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초기에는 "기업인이 야구에 대하여 뭘 아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수년간 넥센이 성공적인 선수영입을 이어가며 쌓은 내공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프로야구 역대 트레이드 최고의 성공사례로 불리는 박병호의 영입, 신고선수 출신인 서건창의 인생역전 신화는 넥센 프런트의 안목을 증명하는 사례로 꼽힌다.

또한 넥센의 프런트 야구는 저비용 고효율만을 강조하는 미국식 머니볼과 다른 부분도 있다. 선수들의 현재 기량이나 기록은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로 파악할 수 있지만, 선수들의 인성이나 열정, 리더십, 팀워크 등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 부분을 채우는 것이 바로 프런트의 중장기적인 안목과 투자 의지다.

"돈을 쓸 때는 쓴다"는 것은 2011년을 기준으로 넥센의 가장 달라진 변화다. 팀의 리더 부재를 메우기 위하여 FA 이택근을 50억의 거금을 주고 다시 데려왔다. 창단 첫 4강에 진출한 지난해 겨울 강정호, 김민성, 손승락, 박병호 등 주축 선수들에게 연이어 파격적인 연봉인상률을 제시한 것은 넥센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선수들에게는 야구만 잘하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외부에는 넥센이 이제 생존 자체보다 성적을 위하여 투자하는 구단이 되었음을 보여줬다.

넥센은 올해 한국시리즈 진출로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2014시즌 정상 도전도 우연이 아니다. 넥센의 중장기적인 프로젝트에 포함된 계획이었다. 이제 다음 과제는 삼성이다. 이번 시즌 최강팀이자 '한국형 대기업구단'의 최고의 성공사례에 가까운 삼성 라이온스다. 넥센이 삼성마저 물리치고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빌리 빈 단장의 오클랜드는 한동안 포스트시즌에 단골로 출전한 강팀이 됐지만 끝내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넥센은 미국형 머니볼의 장점은 잇고, 단점은 극복한 한국형 머니볼의 대표주자다. 넥센이 '청출어람'을 완성시키고 한국야구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넥센 히어로즈 현대 유니콘스 머니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