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가을야구의 추억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가 넥센에 12-2로 뒤진 9회 말. LG 팬들이 힘찬 응원을 펼치고 있다.

▲ LG 가을야구의 추억 지난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가 넥센에 12-2로 뒤진 9회 말. LG 팬들이 힘찬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다사다난했지만 감동적이었던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LG는 지난 10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2-12로 패하며 1승 3패의 전적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LG로서는 박수받기에 충분했던 시즌이었다. 무려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지난 2013년 시즌도 감동적이었지만,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을 뛰어넘는 뭉클함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시즌 초반 "끝났다"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다

LG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팀 순위에서 맨 끝자리를 달리고 있던 팀이었다. 투타 밸런스는 엇박자를 그렸고, 급기야 시즌 초반에 김기태 전 감독이 성적부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하는 악재마저 겪었다. 당시 LG 팬들 사이에서는 4강 진출은 고사하고 "이번 시즌은 끝났다"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침몰 일보 직전의 LG에 일약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이 바로 양상문 감독이다. 처음 그가 LG 트윈스의 지휘봉을 잡을 때는 우려가 많았다. 투수 전문가로 명성을 떨쳐왔지만, 1군 감독으로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공백기도 길었던 양상문 감독의 복귀에 많은 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올 시즌 당장의 성적보다는 내년 이후를 대비한 팀 리빌딩에 무게를 둔 운영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아서 다루기가 어렵다고 정평이 난 LG 선수단이다. 여기에 전임 감독에 대한 향수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던 분위기마저 있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LG에 작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양상문 감독은 선수단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특유의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소통을 통해 눈높이를 맞추는 길을 택했다.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았던 LG였다. 하지만 올 시즌 감독교체 이후에도 이렇다 할 내부 잡음 없이 오히려 강하게 결속할 수 있었다. 이는 모두 양상문 감독의 포용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양상문 감독은 부임 이후 LG의 강점을 불펜을 중심으로 한 투수력에서 찾았다. 전임 김기태 감독 시절부터 어느 정도 전력이 갖춰진 상황이긴 했지만,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의 후유증 속에 올 시즌 초반 마운드는 붕괴됐다. 에이스 레다메스 리즈의 공백과 필승조의 동반 부진이 겹쳐 투수 운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양상문 감독은 투수진을 재정비했다. 선수들에게 어울리는 보직과 특성을 고려해 특유의 강력한 불펜야구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봉중근, 류택현, 이동현, 우규민 등 LG 투수 상당수가 과거 양상문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이기에 선수 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LG는 올 시즌 10승 이상의 선발 투수는 단 한 명이었고, 20홈런 타자는 전무했다. 극심한 타고투저 속에서도 팀 타율(0.279)과 홈런(90개) 꼴찌에 그쳤다. 그러나 특유의 탄탄한 불펜과, 승부처에 빅 이닝을 몰아치는 타선의 집중력에 힘입어 '실리야구'로 위기를 극복했다.

양상문 감독의 포용력... LG의 드라마가 시작되다

계륵같던 선수들을 팀의 주축으로 부활시킨 것도 양상문 감독의 공로다. 10년이 넘게 2군을 전전하던 무명 포수였던 최경철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올해 최고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퇴출설이 거론되던 외국인 투수 리오단은 시즌 중반 이후 우규민·류제국과 함께 LG 선발진의 중추로 올라섰다. 대선배 이병규(9번)의 그늘에 가렸던 작은 이병규(7번)는 부동의 4번 타자로 올라섰다. 신재웅의 불펜 전환 역시 신의 한 수였다.

양상문 감독이 5월 중순 지휘봉을 잡았을 때 LG의 성적은 10승 23패 1무였다. 승률은 3할(.303)에 머물렀다. 당시 4위였던 롯데와는 무려 7.5경기 차가 났다. 하지만 양 감독 부임 이후 LG는 52승 1무 41패, 승률 5할 5푼 9리를 기록하며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LG는 6월에 처음 탈꼴찌에 성공한 이후 7월 초에는 7위로 올라섰고, 다시 5~6위를 오가다 지난 8월 22일 마침내 롯데와 두산을 끌어내리고 4위까지 올랐다. 그 뒤로는 더 이상 한 번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양 감독의 공언처럼 조급하지 않고 밑바닥에부터 차근차근 내실을 다진 '계단론'이 적중한 결과다.

LG는 지난 10월 9일에는 KIA를 연장 10회 끝에 제압하고 승률 5할(61승2무61패)을 회복했다. 6월 7일 당시 17승 33패 1무로 5할 승률에 승수가 '-16'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3개월 만에 이를 극복해낸 것이다. 최종 성적은 62승 64패 2무로 5할에는 약간 못 미쳤다. 하지만 최하위에서 시작해 4강 진출이라는 반전을 일궈낸 LG의 기적은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한국보다 경기 수가 많은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이 정도 격차를 뒤집고 5할 승률을 회복한 전례는 찾기 힘들다. 2014시즌 LG의 뒷심이 역사에 남을 기록인 이유다.

LG는 정규시즌 마지막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SK를 단 1경기 차이로 제치고 2년 연속 가을잔치 티켓을 따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시즌에서 무려 7.5게임 차이가 났던 NC를 상대로 명승부를 연출했다. 3승 1패로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의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였기에 더욱 값진 결과였다.

하지만 넥센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빡빡한 일정과 체력고갈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목동 원정에서 1승 1패를 거두며 선전했지만 3·4차전에서 폭발한 넥센 타선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양상문 감독의 투수교체 실패와 믿었던 불펜진의 붕괴가 발목을 잡았다.

아시안게임 휴식기와 우천 순연 등이 겹치며 포스트시즌 일정이 더욱 빡빡해진 것은, 사실상 정규리그 막바지부터 치열한 4위 다툼으로 매 경기 결승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소화한 LG 선수들의 과부하를 초래했다.

그래도 LG가 올 시즌 보여준 위대한 비상은 충분히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31일, 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후 1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마지막 홈경기를 대패로 마감했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가을야구의 기쁨을 안겨준 선수들에게 보내는 최대한의 찬사였다.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은 내년으로 미뤄야했지만, 양상문 감독이 팀의 슬로건으로 내건 "우리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문구에 부끄럽지 않은 한 시즌을 보낸 L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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