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 tvN


안영이(강소라 분)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이 쓰러졌다. 세 번째 임신으로 인한 과로란다. 같은 부서의 부장은 덕담은커녕 손실된 인원만 안타까워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이래서 여자들은 문제"라고 툴툴거리고, 부하 직원들은 상사 말에 맞장구를 친다.

촉망받는 직원인 선 차장(신은정 분)은 가사와 일의 병행에 짖눌리다가 후배 직원에게 말한다. "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결혼하지마!"라고. 이처럼 지난 31일 방송된 <미생>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었다.

사법 연수원생 중 여성 비율이 올해 들어 40%를 넘어섰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과 활약은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녀들을 제약했던 '유리천장'은 그녀들의 활약에 의미가 없어진 듯하다. 심지어 교사직의 경우는 이제 역으로 남성 성비 보존을 운운할 처지에 놓여있다.

하지만 수치로 나타나는 여성의 성취와 다르게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미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딸을 낳아 기르는 엄마들은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딸들의 미래를 꿈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교육받은 여성, 사회 진출하니 이젠 수퍼맘이 되라?
 지난 31일 방영한 tvN <미생> 5회 한 장면

지난 31일 방영한 tvN <미생> 5회 한 장면 ⓒ CJ E&M


일찍이 여성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여성의 신비>에서 베티 프리단은 '아내와 어머니를 칭송하는 여성의 신비 문화가 여성을 가정에 머물며 아이를 키우고 물건이나 사는 주부라는 직위에 머무르게 한다'고 성토했다. 1963년 당시 혁명적이었던 이 책이 모색한 대안은 '가정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직장과 가사를 성공적으로 병행하는 슈퍼우먼'이었다.

과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여성들은 '신비로운 여성'에서 자유로워졌을까?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은 맞벌이란 짐에 허덕이고 있다. 일과 가사의 병행은 그녀들을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성공'이란 이름으로 그녀들을 혹사시키고 있을 뿐이다.

<미생>에서 아이를 맡기는 문제로 실랑이하는 선 차장(신은정 분)의 마음을 오 과장(이성민 분)은 헤아린다. 그 역시 아내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육아 문제는 언제나 여자의 몫이라는 것을, 회사에서 차장이란 직위에 여자가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지, 동시에 여자, 엄마, 아내라는 이름 앞에서는 그것이 무기력해 진다는 것을.

그래서 여자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과 결혼 중에서 말이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한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은 뒤 계속 일을 할 것인가 등.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외치며 가정 밖으로 나올 것을 외치던 1963년에는 '행복한 전업 주부'가 판타자였다. 2014년에는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슈퍼맘'이 여자들을 들들 볶는다. 둘 다 성공할 수 있다고, 둘 다 놓쳐서는 안 되다고 말이다.

<미생>은 말한다. 인턴사원 중 가장 촉망받던 안영이는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고, 선배 직원은 마음 놓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간부가 된 선 차장은 여전히 아이 때문에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그녀에겐 밀린 집안 일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가 그린 엄마는 얼굴이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를 한껏 안아주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엄마의 얼굴을 보여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미생>인 그녀들의 '완생'은 이 사회에서 여전히 요원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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