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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4년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206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세월호 이야기 이젠 그만하자', '세월호 특별법은 말도 안 되는 법이다', '유가족이 벼슬이냐. 어디까지 해줘야 하느냐' 등 세월호 참사에 대해, 유가족분들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해를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달, 경북대학교에서 있었던 세월호 유가족과의 대화.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
▲ 이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지난달, 경북대학교에서 있었던 세월호 유가족과의 대화.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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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달,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대화'에서 단원고 2학년 10반 다영양 부모님과 대구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선우님을 만났습니다. 주변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람이 없어서, 대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먹고 살기 바빠서 등 각종 이유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저였습니다.

평소 TV와 신문을 통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는 일에 과연 국민 모두가 나서야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저는 이날 다영양 부모님, 김선우님과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일',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 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했고 '나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해를 갖고 계신 분들에게 제가 그분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드리자!'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화'는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살아 있을 이유가 없어요"

다영양 어머님은 '다영이는 참 감성적이고 마음이 따뜻했던 아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 다영양을 다영양 부모님은 평생 데리고 살고 싶어 하셨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날인 15일, 다영양 어머님은 늦잠을 주무셨고 다영이를 한 번 안아주고 급히 출근을 하셨습니다. 다영양 아버님이 수학여행 가서 친구들과 먹으라고 다영이에게 과자 한 박스를 사줬는데 그 일로 어머님은 아버님을 이렇게 원망하게 될 줄은 모르셨답니다. 만약 그 과자 박스가 없었다면 다영양이 과자를 사먹으러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에 가만히 있던 아이들은 더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그 소식을 들었어요. 배가 침몰했다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내 인생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애들이 전부 구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버스에 올랐고 6시간에 걸쳐 진도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려 체육관으로 달려가는데 봉사자들이 저희를 보고 너무 많이 우는 거였어요. 그때 참 기분이 나빴어요. 애 아빠가 '우리 다영이 저기 있다'라고 소리쳤고 달려가 봤는데 다영이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저한테 이야기하더라구요. '10반은 소연이 하나 밖에 못 나왔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을 잃었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찾은 체육관에는 정치인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그 자리에서 명함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죠. 그때 저는 알게 된 점이 있어요. 정치하는 사람도 '어떻게 된 거냐?'라는 말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내 새끼 좀 구해주세요'라고 소리치며 울고 불고 매달려도 구해주려는 사람도, 통제하는 사람도, 지휘하는 사람도,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게 지옥 속에서 3일을 보냈어요.

이제 저는 울어도 상대방은 울지 못하게 해요. 이틀째 뱃머리가 물속에 가라앉는데 하필이면 그날 달도 밝았어요. 저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선착장 옆 응급실에 누워 있었는데 엄마들이 선착장에 앉아서 '내 새끼 좀 살려주세요! 제발!'이라고 미친듯이 울부짓는 소리가 2시간도 넘게 계속 들려왔어요. 그게 지옥인지, 꿈인지 생신지 저는 모르겠어요."


이날 이후로 다영양 어머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절대로 울지 못하게 하신 답니다. 자신을 보고 울면 자꾸만 그날 일이 생각나 너무 무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날 일이 또 생각이 나신듯 눈물을 흘리시다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가'라고 들었어요. 국민들이 세금도 많이 내고 굉장히 잘 사는 나라라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느 놈 하나 나서서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진두지휘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시스템이 없는 나라에요.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일을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이런 일을 당한 약자만 울어야 하고, 참아야 하는 나라가 여기! 대한민국이에요.

저는 국회에서 40일 노숙, 청와대에서 30일 노숙을 했어요. 제가 왜 그렇게 했냐 하면 '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예요. 집에 들어와 애가 앉았던 자리, 애하고 같이 밥 먹었던 식탁, 애랑 같이 누워 있었던 이부자리만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픈데. 저는 엄마인데 해줄게 없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소리 질러도 안 되고.

제가 국회, 청와대에 있으면서 느낀 게 있어요. 당신들이 기득권이라면 다 해먹으라고 해요. 난 너무 억울한 게 세금 다 냈고 애들한테 준법질서 잘 지키고 살고 신호등 잘 지키고 그런 국민이 되자고 했는데. 그런 우리 애들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이유도, 왜 차가운 바다에 있어야 하는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아요. 난 헛살았어요.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살잖아요. 자식들 더 하나 먹이고, 더 하나 입히고, 좋아하는 거 더 하나 쥐여줄려고, 그렇게 살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열심히 살고 나쁜 짓도 안 하고 살았는데. 내 삶의 전부인, 내 분신과도 같은 내 새끼가 없어졌는데,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만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다! 해먹어도 좋아요. 이번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거에요.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이제 없어요. 내 자식도 지키지 못하는 이런 거지 같은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요.

정말 마지막으로 한마디 할게요. 정말 억울해요. 우리는 어디서 인생을 보상받아야 하죠? 이제 쇼핑도 못하고 문화생활도 못하고 영화 보러도 못 가요. 제가 산책할 때 발걸음이 느려요. 그때마다 우리 다영이가 속도도 맞춰주고 손도 잡아주고 했는데. 이제 저는 산책도 못 가요. 다영이가 채워주던 그 만족감이 없어졌어요. 살아 있을 이유를 잃었어요. 누가 보상해주나요? 그게 정말 너무 억울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다영양 어머님. 그러한 우리 국민 중 한 사람의 자식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라고 말하며 울부짓는 다영양 어머님을 떠올릴 때마다 제 가슴에도 불이 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먹고사는 문제'가 존재"

이분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 다영양 부모님, 대책위원회 김선우님의 자리 이분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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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학년 10반 4번 김다영, 아버지입니다."

다영양 아버님은 짧은 인사와 함께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서 찍힌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이 아이가 다영이구요, 옆에는 기도를 하고 있는 아이가 소진이입니다. 나머지 아이들도 가만히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있는 줄 알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아이들은 수장되었습니다. 

'난 살고 싶은데! 난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아, 정말. 이 구명 조끼 1994년도꺼야! 20년이 넘었어! 아, 진짜!' 복원한 아이들의 디지털카메라 동영상에서 나온 한 아이의 절규입니다. 그 후 날씨 좋았던 3일 동안 아무도 이 배에 접근하지 않았고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우리 유가족들은 조롱과 비난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혹시나 해가 될까봐 꾹 참았습니다. 저는 이 사고 전에는 '먹고사는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참 버거웠었기에 다영이 데리고 여행도 잘 못 갔습니다. 그래서 다영이가 이번 수학여행을 정말 기대했는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 후 저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사람'만 있으면 라면을 먹어도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면 되는데 '죽고 사는 문제'는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혹시 기억하십니까? 1953년 창경호, 1974년 남양호 침몰 사고,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그리고 2014년도 세월호 사고까지. 1953년부터 1993년까지 약 20년 주기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났었지만 단 한 번도 철저한 수사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없었고 법 제도 개선 문제는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오히려 축소, 은폐하거나 일부는 조작하려고 했고 수사를 하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큰 사건은 잊혀져만 갔고 20여 년 후 오늘날, 대형참사가 다시 발생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하고 직·간접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정부 기관의 대응 문제를 바로잡고 그에 따른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20년 후 저와 다영이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또 다른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 다른 다영이 같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대형 참사의 유가족은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노숙 생활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이런 큰 대형 사고가 일어난지 몰랐습니다. 약 20년 주기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들이 일어났는데 왜 우리나라는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을 위한 법 제도 개선이 없을까요? 왜 이런 참사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요?

다영양과 다영양 부모님 같은 희생자와 유가족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자신들이 마지막 유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처럼 살고 계신 다영양 아버님을 보면서 '과연 유가족들의 바람이 이루어질까?' 하는 서글픈 생각과 '그렇게 되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행동 해야할까?' 하는 뜨거운 생각이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다음 세대를 위한 법"

'제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어 부정부패를 없애주십시오.'
▲ 세월호 손수건 '제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어 부정부패를 없애주십시오.'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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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대학특례입학', '희생자 의사자 지정'와 관련된 '세월호 특별법'은 사람들이 가장 큰 오해를 갖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특례입학 및 의사자 지정'은 유가족들이 원했던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오해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래서 유가족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데?', '특별법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데?'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질문과 오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답하기 위해 세월호 대구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선우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저도 집에 초등학교 2학년 애가 있습니다. 애가 아파서 입원하면 부모 마음이 다 그렇잖아요, '아,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죠. 저는 결혼을 하기 전, 애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런 마음을 잘 몰랐는데 이 상황에 처해 보니까 그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된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그 분들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80일 넘게 광화문, 국회,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보면 어떠세요? 운동권처럼, 투사처럼 보이시나요? 그런데 함께 있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분들은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집 아주머니, 아저씨. 동네 골목길에서, 슈퍼에서 마주치는 친구 어머니, 아버지였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돌아가실 때 여기 오신 다영양 아버님, 어머님 손 한번 잡아주시고 꼬옥 안아주세요. 그러면 마음이 전달될 거예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특별법 서명 다들 해보셨나요? 서명서에는 '첫째 진상규명 하자, 둘째 재발방지 하자, 셋째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 이렇게 써 있습니다. 다른 내용 없습니다. 유가족들이 제출한 4·16 특별법에도 '다시는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진상규명 위원회, 치유하고 기억하는 위원회, 안전소 위원회를 만들자!'라는 내용만이 들어 있습니다.

저도 애가 있다고 아까 말씀드렸죠? 세월호 특별법은 단지 지금의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 그치는 법이 아닙니다. 향후 이 법이 통과되었을 때 제 아이도, 여러분들의 아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입니다. 더 이상 세월호 같은 배가 출발하지 않아도 되고 위험한 비행기가 뜨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처럼 조마조마한 가슴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을 수학여행 보낼 수 있고 우리도 안전하게 배를 탈 수 있게 해주는 향후를 위한 법. 저는 그 법이 바로 이 세월호 특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특례입학', '의사자 지정'에 관한 내용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 법안은 유가족들이 낸 것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이 제시한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김선우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 다영양 아버님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을 감추고 돈으로 때우려고 했다'는 정치인의 이야기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김선우님이 들려준 다음 이야기는 '세월호 사건 이미 다 끝난 거 아니야? 잘못한 사람들 찾았고 처벌 다 끝났잖아'라는 생각이 보지 못했던 면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세월호 사건을 잘 보셔야 합니다. 검찰의 조사 결과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보시면 배가 왜 침몰했는지? 침몰할 때의 잘못은 누구한테 있었는지? 여기에만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VTS 직원들, 혼자 도망친 선장 및 선원들, 과적 및 출항을 허용한 관계자들만이 구속되었고 배가 출항해서 침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저는 작은 배든, 큰 배든 침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배가 침몰했을 때, 사람들을 제대로 구출해내고 인재로 번지지 않게 하는 일은 국가 및 시스템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서는 그러한 국가 및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그들의 역할 또한 전무했습니다. 이 사고의 책임 또한 오로지 해경 123정과 목포 해경을 구속시키는 데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왜 선장이 해경 집에 가서 잤는지, 왜 언딘에게 구조를 맡겼는지, 왜 72시간 동안 직접 잠수를 하지 않은 것인지, 왜 조명탄만 쏜 것인지, 왜 언론들은 허위 보고를 한 것인지, 왜 청와대는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지 않는 것인지. 유가족분들과 우리는 이런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너무나 답답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밝히기 위해서 저는 유가족들이 이렇게 180일이 넘도록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팽목항에서 단원고 2학년 4반의 한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국 사회에서 유가족이 된다는 건 참으로 더러운 일이다. 국회 돌계단에서 자야 되고, 청와대 앞에서 노숙해야 되고, 밥도 굶어야 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게 대한민국의 유가족이다. 하지만 아직도 배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가족들은 이런 유가족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180일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고 이후 달라진 것,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의 애도와 연민은 전쟁과 좌우대립으로 변했고 대통령의 눈물은 무관심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정치권이 이야기했던 수많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나도 지켜진 게 없습니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으니 우리 유가족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김제동씨가 이야기한 것인데요, 하늘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묻고 있다고 합니다. '진실은 밝혀졌나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질문이 더 이상 부모님들이 답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이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이 질문에 우리 모두가 대답해 할 차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대책위원회가 필요하고, 더 많은 서명 운동이 필요하고, 이 시간처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것이 향후 특별법을 만들 수 있는 방향입니다."
   
   
11월 중순이 지난 지금, 반쪽짜리 세월호 특별법은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배는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영양 아버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후 우리가 본 TV의 보도 내용과는 다르게 구조 작업이 상당히 미비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해경은 유가족에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냐?'라는 말을 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던 유가족들은 5일째 되던 날, 청와대로 가서 직접 대화를 하려 했지만 진도대교 앞에서경찰에게 막혀 가지 못했고 그때 '가만히 있어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겠다'는 생각과 '오직 특별법만이 철저한 진실 규명이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에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진상 규명 위원회,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충분한 기간과 예산이 보장된 특별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있어야 다음 유가족이 생기지 않습니다!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부모로서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내고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를 지금 여기서 뿌리 뽑는 것이라는 걸 널리 알려주십시오!'라고 우리에게 힘주어 말씀하셨던 다영양 아버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 작은 종이에는 유가족들에게 할 질문을 적어야한다. 관심이 있어야 질문도 있다. 당신은 어떤 질문을 쓸 것인가?
▲ 무슨 질문을 해야할까? 이 작은 종이에는 유가족들에게 할 질문을 적어야한다. 관심이 있어야 질문도 있다. 당신은 어떤 질문을 쓸 것인가?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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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대구대책위원회 김선우님과 다영양 부모님은 젊은이들에게 원하는 바람을 전하셨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반드시 행동하겠다는 사람들이 현재 국민추진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작게라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동들을 꼭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품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를 검색하시고 들어와 보세요. 우리의 작은 실천이 모인다면 제대로 된 특별법,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선우님)

"젊은 사람들이 오면 저희 엄마들은 정말 힘이 나요. 지나가면서 들려오는 '힘내세요'라는 말에 '내 자식은 없지만 저 아이들이 있기에'라는 생각이 들면서 힘을 나요. 여러분도 언젠가는 아이를 낳으시겠죠? 그런데 이 나라는 절대 안전한 나라가 아니에요. 여러분의 자식들을 위해서도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투자라고 생각하시고 악플 말고 응원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러한 것들을 나서서 해주길 바라요. 여러분들의 힘이 간절히 필요해요. 부탁드려요." (다영양 어머니)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먹고사는 일'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저는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세월호에는 우리 사회의 총제적인 부정부패, 책임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쌓여 있습니다. 제가 현실 문제를 등한시 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살 때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변질, 부패되고 있었고 이런 것들에 제 딸을 빼앗겼습니다.

이 사고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정말 중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우리 아들, 딸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처럼 자식을 잃고 이런 자리에 서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유가족이 되지 않도록 사회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하고 더 행동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사회의 주체가 되었을 때는 '먹고사는 문제'에만 치중할 수 있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영양 아버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대화'를 마치고 나오다 함께 온 일행을 기다리고 계신 다영양 아버님을 만났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작은 관심도 작은 행동도 없이, 오해만 갖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 '힘내세요'라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언제쯤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분들은 마음 편히 아이들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진실은 밝혀졌나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일 때문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우연히 본 차창 밖 풍경에서 광화문을 지키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저기 다영양 아버님, 어머님도 계시겠지. 건강은 괜찮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지난 달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씁니다.

유가족분들과 김선우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담긴 이 글이 사람들이 가진 오해가 풀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멀리서나마 진실을 밝히기 위한 힘을 보탭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 항상 힘내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세월호 참사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 - http://sewolho416.org



태그:#세월호, #세월호 참사, #단원고, #REMEMBER 20140416,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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