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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박물관, 국립 인류학 박물관

멕시코 시티에 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떠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히는 느낌이다. 뒤늦게 숙소에서 만난 용하 형, 형철, 상규와는 매일 저녁 멕시칸 음식 파티를 벌이다시피 했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고, 먹을 것이 많은 이 도시는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서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독수리가 뱀을 잡아 먹은 곳에서 도시를 일으켰다는 멕시코 시티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그 무구한 역사와 옛됨이다. 그런 면에서 의견이 잘 맞았던 우리는 모두 함께 국립인류학 박물관을 찾았다.

기원전부터 마야, 아즈텍, 사포텍까지,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주요 유적을 모두 모아 둔 박물관이다. 야외 광장에 설치된 분수 기둥은 팔렝케 유적의 생명의 나무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단일 기둥으로는 세계 최고 규모다.
▲ 국립인류학박물관 기원전부터 마야, 아즈텍, 사포텍까지,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주요 유적을 모두 모아 둔 박물관이다. 야외 광장에 설치된 분수 기둥은 팔렝케 유적의 생명의 나무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단일 기둥으로는 세계 최고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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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멕시코의 국기를 지나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84m 크기의 캐노피를 업고 있는 기둥이었다. 때마침 떨어지던 물줄기 덕에 멀리서 보면 거대한 나무처럼 보이는 이 기둥의 이름은 '생명의 나무'. 그 생명의 기둥 아래 펼쳐진 23개의 전시실에는 아메리카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이어 내려온 수많은 사람과 신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중심에는 대지의 괴물과 태양신이 새겨져 있고, 가장 바깥 쪽에는 두 마리의 뱀과 52년을 주기로 하는 아스텍력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달력의 기능을 했다고 전해진다.
▲ 태양의 돌 중심에는 대지의 괴물과 태양신이 새겨져 있고, 가장 바깥 쪽에는 두 마리의 뱀과 52년을 주기로 하는 아스텍력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달력의 기능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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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멕, 테오티우아칸, 톨텍, 아즈텍 등 기원전 2000년부터 시작된 아메리카 문명의 시초를 들여다 보며 놀람과 의문을 반복하던 중 아즈텍의 달력 '태양의 돌' 앞에 멈추어 섰다.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신들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아즈텍인들은 태양석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들의 달력을 새겼다. 그런 땅에 자신들의 유일신을 내세우며 파괴를 일삼은 스페인들과 원주민들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기괴한 팔다리를 가진 땅의 여신, 노래와 춤을 담당했다는 거북이 모양의 신, 독특한 옷을 입은 팔렝케 원주민들의 모습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가득한 태양의 돌을 보고 나니 과학과 믿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호기심은 기어코 우리를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유적지로 향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쿠스코의 마추픽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하면 너무 쉽다.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겨우 한 시간 가량 달리고 나니 기원전에 시작되었다는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을 만날 수 있었다. 멕시코의 모든 유적지에서는 입구에서부터 기념품 사기 전쟁이 벌어진다.

수많은 미스터리를 품은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기반으로 한 기념품은 어디를 가도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인류학 박물관에서 봤던 '태양의 돌'을 조각한 것을 집어들고야 이 신비의 도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총 길이 5.5km에 달하는 ‘죽은 자의 길’ 은 당시에는 대규모 주거단지로 크고 작은 유적들이 좌우에 흩어져 있다. 길의 끝에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던 달의 피라미드가 가로막고 있다.
▲ 죽은 자의 길 총 길이 5.5km에 달하는 ‘죽은 자의 길’ 은 당시에는 대규모 주거단지로 크고 작은 유적들이 좌우에 흩어져 있다. 길의 끝에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던 달의 피라미드가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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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요금의 기차도, 숨 쉴틈 없이 몰아치는 사막의 모래 폭풍도, 5분에 한 명씩 귀찮게 구는 호객꾼들도 없는 테오티우아칸이 마추픽추, 이집트 피마리드와 같은 유적지보다 월등한 것이 있다면 그 어마어마한 규모다. 아니,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해발 2000m 고원 지대에 위치한 테우티우아칸은 기원전에 시작되어 갑자기 자취를 감춘 7세기까지, 약 1000여 년간 번성했던 인구 20만의 대도시였다고 한다.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미스터리한 땅을 칭하는 '테오티우아칸'이라는 말도 훗날 아즈텍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 이곳에는 수없이 많은 태양과 달의 신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추측되는 테오티우아칸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피라미드 건축물 외에도 다채롭고 잘 보존된 상태의 벽화들로 수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테오티우아칸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추측되는 테오티우아칸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피라미드 건축물 외에도 다채롭고 잘 보존된 상태의 벽화들로 수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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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수직으로 길게 뻗은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는 이제는 터만 남아 있는 무수히 많은 유적의 잔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지어진 건물의 벽에는 이들이 숭배했던 재규어의 벽화와 기이한 모습의 조각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었다. 인류학 박물관에서 보고 들었던 그대로의 모습에 우리는 그때마다 퀴즈의 정답을 맞추는 것처럼 묘한 쾌감을 느꼈다.

가로로는 100m, 세로로는 5km 남북으로 길게 뻗은 중앙의 긴 길에는 '죽은 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길의 반대편 끝에 위치한 달의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이다. 그냥 걷는 데만도 1시간 가량 걸리는 죽은 자의 길에는 소문대로 그늘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한여름에 걸었다간 그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양의 피라미드에 오르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높은 피라미드인 태양의 피라미드는 사람이 걸어서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다.
▲ 태양의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높은 피라미드인 태양의 피라미드는 사람이 걸어서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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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비는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찾아왔다. 비교적 서늘한 겨울이었지만 해발 2000m에서 높이에서 65m의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 가볍던 두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중턱에 오르자 자연스레 허리가 굽어졌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기에도 바쁜 두 손마저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떨어질 겨를이 없자 이제는 걷는다기 보다는 기었다. 우리 꼴이 꼭 인류 진화의 과정을 거꾸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농담에 웃어보지만, 참다가 내뿜은 것도 아닌데 최대로 키워놓은 TV 볼륨마냥 커지는 호흡 끝에는 나도 모르게 욕설이 뒤섞였다. 대체 이들의 왕은 여기까지 매일 어떻게 올랐을까.

저절로 네 발로 기게 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자랑하는 태양의 피라미드에 오르면, 아즈텍인들이 왜 이곳을 가리켜 ‘신들의 도시’ 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 태양의 피라미드 위의 풍경 저절로 네 발로 기게 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자랑하는 태양의 피라미드에 오르면, 아즈텍인들이 왜 이곳을 가리켜 ‘신들의 도시’ 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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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전 아래에서 바라본 태양의 피마리드는 거대한 사람의 누워 있는 듯한 모양으로 계단이 나 있었는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꼭대기에 서자마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거구나! 여기에 왕이 오르면 아까 그 계단으로 그려진 사람의 얼굴 위치에 왕이 서는 거지. 태양이 이 너머에서 뜨면 그 후광 때문이라도 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꼭 신이 아니더라도 태양의 피라미드에 올랐을 때 펼쳐지는 풍경은 내 발 아래에 세상을 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겨우 65m 밖에 되지 않는 높이지만 고저 없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는 그 어떤 것도 이 태양의 피라미드에 범접하지 못했다.

현대 문명인인 우리가 봐도 놀라운 이 풍경을 아즈텍인이 발견했을 때는 '신들의 도시'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매일 이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는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피라미드 위에 선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그 장엄한 풍경을 앞에 두고 우리는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 댔다. 그 너머로 보이는 달의 피라미드는 그저 고요했다.

달의 피라미드를 향해 경배를

죽은 자의 길 끝에 위치한 달의 피라미드는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산 제물의 피와 심장을 바치던 장소였다.
▲ 달의 피라미드 죽은 자의 길 끝에 위치한 달의 피라미드는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산 제물의 피와 심장을 바치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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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죽은 자의 길'만큼 드라마틱한 길이 있을까. 태양의 피라미드를 지나 욱씬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죽은 자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달의 피라미드는 거대해져만 갔다. 조금 전 등반의 고통을 돌이켜 보니 달의 피라미드에 달하면 마치 생명이 다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 도착하면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낮지만 경사는 더 악랄하다. 가운데 철봉을 잡지 않고서는 오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테오티우아칸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장소는 달의 피라미드다. 정상에 서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중앙 고원에 위치한 유적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달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풍경 테오티우아칸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장소는 달의 피라미드다. 정상에 서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중앙 고원에 위치한 유적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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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다는 달의 피라미드 양 옆으로는 죽은자의 길을 따라 소름끼치도록 대칭을 이루는 풍경이 펼쳐졌다. 자연스레 영화 <아포킬립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좌우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관은 천천히 피라미들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 그곳에서 포로로 잡힌 제물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뜯어낸다. 끝도 없이 사열한 사람들은 열광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그들의 왕과 신을 받들었다.

그토록 강력한 왕과 신의 지배 아래 있던 테오티우아칸도 약 600년경 붕괴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아즈텍인들은 그들만의 제국으로 만들어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훗날 결국 스페인 군대에 함락 당해 파괴 당한 도시는 간척 사업을 통해 도시로 변모했고 오늘날의 멕시코시티에 이르렀다.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는 다리는 계속해서 떨렸다. 숨이 가빠서이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있다고 생각하니 현실과 공상이 머리 속에서 뒤석이면서 묘한 흥분이 나를 덮쳤다. 나는 마치 몰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숨어든 좀도둑마냥 감히 그 공간에서 쉽사리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간략여행정보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총 23개의 전시실로 모두 돌아보려면 최소 3~4시간은 걸린다. 오후에는 사람들이 많아 입장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 오전 9시 개장 시간에 방문한 후 점심 시간에 나온다면 여유로운 박물관 투어가 된다. 영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투어 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멕시코에는 세계문화유산이 서른두 개나 있다지만, 테오티우아칸은 세상에 둘도 없는 독보적인 보물이다. 멕시코시티의 북부터미널(Terminal Norte)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갈 수 있는데, 약 1시간이면 도착하는 이 고원 지대는 유적지 내에 그늘이 하나도 없어 선크림과 충분한 물이 필수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죽은자의 길'의 길이만 5km로, 그저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유적지 내부가 워낙 넓으니 언제 가도 사람이 붐빌 일은 없지만, 이 곳의 하이라이트인 달, 태양의 피라미드에 올라 감상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여러모로 태양이 덜 뜨거운 오전 일찍 가는 것이 상책이다.

좀 더 자세한 테오티우아칸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7016640




태그:#테오티우아칸, #태양의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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