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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몸을 긋는 소녀> 겉표지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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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쇄살인범들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희생자의 특정 소지품 또는 신체 일부를 가져간다.

희생자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챙겨가는 살인범도 있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가는 살인범도 있다. 속옷만 벗겨가는 살인범도 있다.

이들은 이런 물건들을 자신만의 장소에 모아둔다. 그리고 때때로 이 물건들을 보고 만지면서 살인의 순간을 떠올린다. 사람을 죽일 때 느꼈던 그 기분을 되살려 보는 것이다. 일종의 전리품이자 성적표인 셈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점잖은 편에 속한다. 희생자를 죽이고 나서 고의로 시신을 훼손 시키는 경우도 많다. 영화 <사이코>의 실제모델이었던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은 여성들을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서 옷을 만들기도 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연쇄살인

길리언 플린의 2006년 작품 <몸을 긋는 소녀>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은 특이하게도 사람을 죽이고 희생자의 치아를 뽑아간다. 그가 노리는 대상은 15살 미만의 어린 소녀들이다. 작품의 무대는 미국 미주리주의 작은 마을 윈드갭.

그 마을에서 최근 두명의 여자아이가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아이들의 치아는 모조리 뽑힌 상태였다. 시카고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여성 카밀은 이 사건의 취재를 위해서 윈드갭을 방문한다. 공교롭게도 윈드갭은 카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새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재혼을 통해서 낳은 동생 앰마가 살고 있다.

카밀은 12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지만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카밀을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 않다. 동생 앰마와도 서먹하기만 하다. 하지만 카밀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왔다. 그녀는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경찰서를 찾아가고 피해자 가족을 만나지만 쓸 만한 기삿거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카밀은 그곳에서 오래된 자신의 기억과 마주한다. 아직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소한 일로 어머니와 부딪치면서 카밀은 과거로 과거로 돌아간다. 그 과거속에는 10대 초반에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 처음으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던 자신의 모습이 있다. 사건을 취재할수록 카밀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 이 사건의 진상은 카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스스로를 학대하는 주인공의 모습

작품의 제목은 '몸을 긋는 소녀'다. 여기서 지칭하는 소녀는 바로 주인공 카밀이다. 카밀은 스스로를 가리켜서 '커터(cutter)'라고 생각한다. 칼같이 날카로운 도구로 자신의 몸을 긋고 베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카밀의 몸에는 그녀가 스스로 칼로 새겨넣은 글자들이 채워져 있다. 사악한, 메스꺼운, 고양이, 건방진, 사라지다 등.

카밀은 이런 글자를 13살 때부터 자신의 몸에 새겨 넣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자신을 해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만큼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글자를 몸에 새기는 행동이 자신에게 안전한 느낌을 준다. 생각과 단어. 자신이 볼 수 있고 따라잡을 수 있는 곳에 단어를 새겨두고 붙잡아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평소에 주변에서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자신의 몸에 집착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겠다. 연쇄살인범이 희생자의 특정 소지품이나 신체부위에 집착하는 것처럼,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몸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통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몸을 긋는 소녀> 길리언 플린 지음 / 문은실 옮김. 푸른숲 펴냄.



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푸른숲(2014)


태그:#몸을 긋는 소녀, #길리언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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