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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영국 부자 동네 출신의 마들렌 맥켄이라는 여자 아이가 포르투갈 알가르베 리조트에서 실종됐다. 그곳은 영국 상류층들에게 인기 있는 휴가지였다. 마들렌 사건이 터지자 영국 언론은 1148건이나 되는 기사를 쏟아냈다. 26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현상금도 제시됐다. 의회 의원들은 참여 표시로 노란 리본을 달았다.

9개월 뒤인 2008년 2월, 또 다른 실종 사건이 일어났다. 마들렌과 비슷한 또래인 섀넌 매튜스라는 여자 아이가 수영 강습을 마치고 오던 중에 사라졌다. 섀넌은 영국의 한 퇴락한 산업도시에 있는 가난한 동네 출신이었다. 영국인들의 반응은 마들렌 사건 때와 사뭇 달랐다. 언론이 만들어낸 기사 수는 마들렌 사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노란 리본을 단 정치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현상금 역시 마들렌보다 50배나 적은 2만5500파운드였다.

 <차브>
 <차브>
ⓒ 북인더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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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비슷한 실종 사건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국 <가디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 오언 존스는 이 문제를 계급적인 관점에서 풀이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 사건은 영국의 계급문제를 웅변한다. 저자는 특히 섀넌 매튜스 사건이 언론과 중간계급에 의해 '복지식객'으로 비난받는 하층 노동계급, 즉 차브(CHAV)의 이미지를 악마화하는 데 악의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본다.

차브는 영국식 '잉여계급'으로 불릴 만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를 의미하는 집시 언어인 '차비(chavi)'가 어원이다. 처음 콜린스 영어사전에 등재되었을 때는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으로 정의되었다.

그뒤 차브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착색된다.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이라는 유명한 신화도 만들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차브'라는 단어는 폭력, 게으름, 청소년 임신, 인종주의, 주정 같은 노동계급의 부정적인 특징과 연결된다.

이 책의 목적은 차브에 담겨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 개념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국의 상류층과 중간계급이 추진해 온 노동계급의 악마화 작업을 폭로한다. 차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만연해 있는 영국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존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 노동계급이 처한 상황의 진실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차브 혐오가 절대 우연한 현상이 아니며, 이러한 현상이 이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여러 세대를 거치며 최하층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차브로 대변되는 노동계급 악마화의 배경에 영국 계급전쟁의 유산이 깔려 있다고 보는 근거다. 그 저간의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계급이 없는 사회', 그것은 환상이다

마거릿 대처가 영국을 접수한 해는 1979년이었다. 그 해는 영국 노동계급을 향한 전면공격이 개시된 해로 기록되어 있다. 노동계급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이나 공영주택이 붕괴되고, 제조업에서 광산업에 이르는 노동계급의 일터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연대와 집단적 열망 같은 노동계급의 가치 또한 개인주의에 밀려 휩쓸려갔다.

오늘날 대략적인 공약은 노동계급을 회피하는 것들뿐이다. 정치가들은 중간계급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더 좋아하고 '열망'이란 말은 개개인의 자기성취를 의미하는 말로 재규정되었다. 결국 사다리를 기어올라 중간계급이 되라는 말이다. 한때 가난이나 실업 같은 사회적 문제는 적어도 자본주의 내부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됐던 반면, 오늘날 그것은 개인의 행동이나 결점, 심지어는 선택으로 간주되고 있다. (20쪽)

차브 우화가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저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작 사회적 문제의 희생자들을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믿으려 한다고 말한다. 관련 근거도 제시한다. 2006년 영국 국민의 4분의 3 정도가 계층간 임금격차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3분의 1이 조금 넘는 사람들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지확대를 지지했다. 1986년에 게으름이나 일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의견이 19%인 반면 20년 후 그 비율은 27%까지 올랐다.

저자는 차브에 대한 혐오감이 계급간의 전쟁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중간계급이 되어야 하며, 중간계급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영국 정치계의 주류 견해는 '영국은 이제 계급이 없는 사회'라는 말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사회가 다수의 부유한 중간계급과 그 수가 줄고 있는 소수의 노동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270쪽)

차브 현상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새로운 계급전쟁이나 계급정치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조헌 하리의 말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탈세로 해마다 700억 파운드의 돈이 국고에서 도둑맞지만 사람들은 그 돈이 강탈 당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백인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이 스스로를 같은 편이라 인식하고, 자신들의 돈을 강탈한 기업들과 억만장자들에 맞서야 영국 사회 내부의 균열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조금 부당수령 같은 빈곤층의 범죄는 자주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표적이 되는 반면, 이보다 훨씬 거대한 부자들의 금융범죄는 곧잘 무시된다. 이것이야말로 복지 사기에 맞춰진 비난의 초점이 탈세로 옮겨져야 하는 이유다. (393쪽)

저자의 분석을 따라 차브 현상이 만연한 영국 사회를 훑어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오버랩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견줘보자.

차브 현상, 우리나라에도 있다

먼저 세금 문제. 저자는 새로운 계급정치의 방향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영국 보수당 정부가 법인세율을 선진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24%로 내리는 동안, 빈곤층에게 한층 불리한 부가가치세율은 20%까지 올린 점을 지적한다. 또한 영국에서 탈세가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비용은 복지 사기에 비해 7배나 많다고 한다.

복지예산 100조 원 시대가 못마땅한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복지 부정수급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들은 최근 5년간 기초생활보장 부정 수급액이 300억 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양산하면서 '복지 망국병'을 설파하는 데 혈안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대기업이 감세받은 법인세 규모가 20조 원을 훌쩍 넘은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중소기업이 감면받은 것까지를 합하면 거의 30조 원이다.

정치 지형의 문제도 보자. 저자에 따르면 영국 노동당은 맥빠진 중도정치로 인해 노동계급의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수백만의 노동계급은 냉소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일부는 극우세력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은 겉으로는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중산층 중심의 정치적 의제를 강조한다. 야당 고유의 색깔을 지키려는 치열한 노선 투쟁을 통해 선명성을 견지해 나가는 일에 소홀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정현 후보가 지난 7·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이유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새정치연합이 현재와 같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계속 이어간다면 실망한 그들의 집토끼들이 산토끼나 들토끼, 심지어는 새누리당의 집토끼가 되기 위해 밖으로 더 많이 튀어나갈 것이라고 본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가 중간계급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슈퍼마켓 계산대에 서고 누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겠는가. 그것은 헛된 신화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담론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치인과 언론은 중산층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허황된 경제공약을 통해 모두가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열망을 퍼뜨린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처럼 중간계급, 곧 중산층에 대한 찬양은 사회 전반의 계급 시스템을 보수적으로 지탱하는 데 유용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뿐이다.

저자는 영국이 대처리즘과 신노동당이 조장해온 개인주의로 인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처럼 전체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려는 집단적 열망을 갖기보다 재능 있는 개인들이 스스로 노력해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는 주문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실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능력주의 관점에서 폄훼하는 논리가 널리 퍼져 있다. 능력이나 열정이 없어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바로 그것. 8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이 한국식 '차브'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저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계급정치를 차분하게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오언 존스 지음 / 이세영․안병률 옮김 / 2014. 11. 10. / 427쪽 / 1,75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북인더갭(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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