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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7일 오후 4시 14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8일 김상률(숙명여대 영문학과 교수) 신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인사를 발표하면서 김 수석을 발탁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숙명여대 사회봉사실장, 대외협력처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국제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해 교육현장의 경험과 식견을 갖추었으며 업무에 열의가 높고 철저해 발탁했다."

김 수석은 뉴욕주립대 버펄로대학에서 미국 흑인문학과 폭력에 관한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숙명여대 교수에 임용된 이후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국제분과위원장, 한국대학국제교류협의회 회장, 전국대학국제처장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는 등 대학의 국제협력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하지만 지난 2005년에 펴낸 <차이를 넘어서>라는 저서가 '반미-급진 페미니즘' 논란에 휘말리면서 새누리당에서조차 경질 요구가 나오고 있다.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번역자와 '얼치기 반미주의자'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번역한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번역한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 갈무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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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석은 현대사상 조류의 하나인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영미문학(문화)을 해석해온 학자로 알려졌다. '탈식민주의와 미국 문학', '탈식민시대의 영미문학 정전 해체' 등의 논문들이 그런 시각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는 비슷한 시각을 가진 국내 학자 10명과 함께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2006년)라는 책을 펴냈고, 발레리 케네디 터키 빌겐트대 교수의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2011년)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번역본은 국내에서 가장 좌파적인 출판사로 알려진 '갈무리'에서 나왔다.  

발레리 케네디 교수는 김 수석이 번역한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간을 획일화하고 억압하려는 어떤 시스템과도 맞섰으며, 세속주의와 지리적·사회적·문화적 통섭을 대안으로 주장한 진정한 지성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평가받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김 수석의 문화(문학)비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3세계 실천적 지성의 상징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탈식민주의 문제설정을 한국 현실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수석이 지난 2005년 숙명여대 출판국에서 펴낸 <차이를 넘어서 : 탈식민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라는 저서가 '반미-급진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였다. <차이를 넘어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열강에 에워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민족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와 "결혼제도는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조장하는 식민적인 노예제도로서 발전적인 해체가 필요하다"라고 기술한 대목이 논란의 주요 근거였다. 

김종훈·이노근·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5일 공동논평을 내고 김 수석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김 수석이 "북핵은 약소국의 비장의 무기"라고 기술한 대목을 두고 "통진당(통합진보당)에서나 펼칠 수 있는 논리"라며 "김 수석이 있을 곳은 청와대가 아닌 통진당으로 보인다"라고 성토했다. "김 수석이 반미주의자나 다름없다"라고도 했다.

하태경 의원은 다음날(26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신식민주의와 반미주의 이론이 김 수석에게 내면화 되어 있다"라며 "청와대가 김 수석을 반드시 사퇴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김 수석을 "얼치기 반미주의자"라고 지칭하면서 "(그의 등용은) 한미동맹을 의심케 하는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보수성향 일간지 <동아일보>는 26일자 사설을 통해 김 수석을 "북한이나 반미주의자와 다름없는 주장을 하는 인물"이라고 지칭하며 그의 사퇴를 주장했다. <미디어펜> 등 일부 보수성향 인터넷매체들도 "이것은 최소한의 원칙마저 붕괴돼버린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이 경계를 넘어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준 징후"라고 꼬집었다. 

"현 정부 잣대로 보면 종북... 갈팡질팡 인사 보여주고 있어"

과거 교수 시절 저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약소국의 비장의 무기" 등의 표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상률 신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사진은 지난 25일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
 과거 교수 시절 저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약소국의 비장의 무기" 등의 표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상률 신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사진은 지난 25일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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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의 공세에도 청와대는 김 수석을 경질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26일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교육문화수석이 가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연히 간다"라고 답변했다. 여당 일각의 경질 주장에도 유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민 대변인은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김 수석의 )거취와 관련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응수했다.

그런 가운데 '탈식민주의'를 전공한 김 수석을 '누가' 발탁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전혀 다른 코드'의 인사기 때문이다.

김종훈·이노근·하태경 의원은 지난 25일 공동논평에서 "이것은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심각한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청와대는 김상률 수석을 대통령께 추천한 사람을 즉각 공개하고 김 수석 임명과정과 인사평가 상세 내용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민경욱 대변인은 이러한 요구에는 "따로 발표할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피해갔다. 

청와대는 지난 6월 계속되는 인사참사를 막기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한 바 있다. 인사수석실에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두어 철저한 사전검증, 우수한 인사의 발굴과 평가를 상설화해 인사시스템을 보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사수석실에서 인사추천과 기본검증이 이루어지면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심화된 검증을 진행하고, 이를 인사위원회에 올려 논의한 뒤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 

공식적인 인사절차로만 보면 김 수석은 인사수석실(정진철 수석)과 민정수석실(김영한 수석)에서 검증하고, 인사위원회(위원장 김기춘 비서실장)에서 논의한 뒤 박근혜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의 청와대'가 탈식민주의 관점을 가진 학자를 박 대통령에게 추천했을 가능성을 일축한다.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정통한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보통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비서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다고 봐야 한다"라며 "청와대 안에서 박 대통령을 빼고 (코드가 전혀 다른) 김상률 수석을 추천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김 수석처럼 '약소국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현 정부 잣대로 보면 김 수석은 종북이다"라며 "그런데 박 대통령이 그런 인사를 청와대 수석에 발탁했다는 것은 청와대 인사가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수석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을 들어 박 대통령과 숙명여대 전·현직 총장들의 관계도 거론된다. 황선혜 총장은 지난 2월 19일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진행한 대학총장들 만찬 간담회에 참석해 사립대학들의 상황을 박 대통령에게 가장 잘 전달해 눈길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지난 7월에 출범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 '통일교육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0월에는 박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알라산 드라만 와타라 코티디부아르 대통령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특히 김 수석은 한영실 전 총장이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4년 동안 대외협력처장으로 활동했다. 한 전 총장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때에는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중앙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친박인사로 알려졌다. 한영실 전 총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한 전 총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김 수석의 교육문화수석 발탁 사실을 알았다"라면서 "김 수석이 청와대에 가기 전에 한 전 총장과 상의한 적도 없다"라고 전했다.


태그:#김상률, #교육문화수석, #차이를 넘어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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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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