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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지난 10월 1일 용산 전자상가 내 아이파크몰을 찾아 휴대전화 판매점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날 나온 이통사들의 보조금 지급 표를 보고 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지난 10월 1일 용산 전자상가 내 아이파크몰을 찾아 휴대전화 판매점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날 나온 이통사들의 보조금 지급 표를 보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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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년 전 처음 '보조금(지원금)'을 받았다. 아이폰5가 나온 직후여서 대다수 소비자들은 '제값'에 샀지만 밤새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져 할부원가를 10만 원 정도 깎을 수 있었다.

2년 약정 만료를 앞둔 26일 종로에 있는 한 이통사 대리점을 찾았다. 그 사이 아이폰6 출고가는 2만 원 정도 내렸고, 지금 쓰는 '42요금제'(부가세 포함 월 4만6000원)에도 공식 보조금이 10만 원 정도 나왔다. 2년 전과 단순 비교해도 2~3만 원 이득이었다.

그런데 대리점 직원은 18개월 뒤 중고 단말기 반납 조건으로 38만 원을 미리 빼주는 '67요금제'(7만3700원) 이상을 집요하게 권했다. 매달 비슷한 요금을 내고도 '무제한 요금제'를 쓸 수 있다는 말에 혹했지만, 단말기를 반납 못하면 결국 '빚'이었다.

고액 요금제 늘고 마케팅 비용 줄고... 이통사만 배불렸다?

지난 10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된 지 두 달. 통신사들이 2000년대 이후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 김희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내년에 통신사들이 부흥기에 진입할 것'이라 전망했다.

LTE 가입자 비중이 60%를 넘고 데이터 사용량이 3년 만에 2배로 늘어 통신사 이익을 좌우하는 가입자 1인당 매출(ARPU)이 증가한 반면, 단통법 덕에 마케팅 비용이 줄어 이익이 크게 늘 것으로 본 것이다.

9월 현재 LTE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월 3.1GB로, 월 6만 원대 요금제 사용량인 5GB에 근접해 있다.

5년 전 3만~4만 원대에서 5만~6만 원대, 이제 7만~8만 원대 무제한 요금제까지. 소비자들은 점점 비싼 요금을 통신사에 지불하고 있지만 정작 '단통법 효과'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새 단말기로 바꿔야 그나마 단통법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아이폰6, 갤럭시노트4 같은 최신 단말기 출고가는 여전히 100만 원대를 넘나들고, 월 9만~10만 원에 이르는 고액 요금제를 써야 그나마 최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바꿀 엄두를 못 낸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소비자대로 불만이고, 손님 발길이 줄어든 유통점들도 볼 멘 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아영(가명, 43)씨는 최근 부모님 단말기를 바꿔주려다 대리점에서 '호갱(어수룩한 고객을 뜻하는 속어)'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은 월 1만5000원짜리 실버 요금제를 계속 쓰면서 단말기만 바꾸려고 했는데, 대리점에서는 보조금을 미끼로 60만 원대 스마트폰에 5만~6만 원대 요금제를 6개월만 쓰라고 권했다. 

김씨가 보조금은 필요 없으니 30만 원대 값싼 단말기로 달라고 하자, 대리점에서는 해당 단말기는 품절이고 단통법 때문에 2배 이상 비싼 일반 요금제를 써야 한다고 우겼다. 하지만 이통사에 알아보니 요금 수준이 비슷한 새 실버 요금제로 전환할 수 있었고, 해당 단말기도 일시 품절이어서 재입고될 예정이었다.

'표인봉' '현아'? 불법 온라인 판매에 중소 유통상 '속앓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한달 째인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휴대폰 판매업 종사자들로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회원들이 단통법 시행 중단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 "휴대폰 출고가 인하하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한달 째인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휴대폰 판매업 종사자들로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회원들이 단통법 시행 중단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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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이달 초 '아이폰6 대란'과 같이 온라인을 통한 불법 판매도 여전하다.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한 게시판에는 현재 수도권 상황이라면서 "게이티 신규&번이 순28 시놋 인봉형님은 1~3개월 출장 중. 로그 번이 시놋 34요금 현아는 빵먹는중"이라는 정체불명의 글이 떴다.

여기서 '게이티'는 KT, '르그'는 LG유플러스, '현아'는 '현금완납', '인봉 형님'은 '표인봉', 즉 '페이백'의 첫 자음을 딴 것이다. 일부 불법 판매업자와 '폰테크족'들이 방통위 단속을 피하려고 만든 일종의 암호다. 대략 KT나 LG유플러스로 번호이동('번이')하면, '순액 28요금제('순28')'나 34요금제 같은 저가 요금제로도 팬택 시크릿노트('시놋')를 공짜로 살 수 있고, 공식 범위를 넘는 보조금도 몇 달 뒤 현금으로 입금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상들은 방통위 단속이나 '폰파라치(보상금을 노리고 유통점의 불법 영업을 전문적으로 고발하는 이들)' 때문에 '정상 영업'만 할 수밖에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종로에 있는 한 이통사 대리점 직원은 "단통법 이후 번호 이동이나 기기 변경이나 똑같은 정찰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라면서 "이전엔 우리 매장에서만 매달 600대 넘게 팔았는데 지금은 수십 대 수준으로 줄었다"라고 하소연했다.

200여 개 중소 판매점들이 몰려있는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주원 테크노마트 상우회장은 "이달 초 '아이폰6 대란' 이후 규제기관에서 조사를 나와 2주 동안 두려움에 떨어 장사도 못했다"라면서 "요즘 팬택 제품을 중심으로 단말기 출고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고객들이 잘 찾지 않는 옛 모델이어서 손님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갤럭시노트4나 아이폰6플러스 등 최신 스마트폰 출고가는 100만 원 안팎이어서 30만 원대 보조금을 모두 받아도 60만~70만 원대에 이른다. '페이백'이나 '현금완납' 같은 편법을 동원한 불법 보조금의 유혹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고 회장은 "단말기 유통 시장이 활기를 띠려면 최신 단말기 보조금을 높이고 출고가를 확 낮추든지 아니면 발상을 바꿔 기본료나 통신요금을 내려야 한다"라면서 "출고가든 요금이든 확실히 내려 이통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원천적으로 덜 쓰게 만들어야지 지금 같은 상태에선 '페이백' 같은 음성적인 영업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관련 매출 4%에 이르는 높은 과징금과 사법 처리 서슬에도 유독 아이폰6 16GB 모델만 할부원금이 20만 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통3사가 타사 아이폰6 가입자 확보 경쟁을 위해 유통점 판매 장려금(리베이트)을 경쟁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결국 마케팅 비용이란 '실탄'이 남아있는 한 보조금 대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리 요금제-위약금 폐지 긍정적... 분리 공시-요금 인하가 '화룡점정'

정의당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국회의원단이 10월 15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통사만 배불리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히며 단통법에 의해 호갱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국민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정의당 "단통법은 전국민 '호갱법'" 정의당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국회의원단이 10월 15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통사만 배불리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히며 단통법에 의해 호갱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국민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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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통법의 장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단통법 이전 제값에 단말기를 사던 대다수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조금만큼 단말기 가격 거품이 빠지는 효과가 있다. KT가 약정 없이도 일정 요금을 할인해주는 순액 요금제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오는 12월 1일부터는 약정할인 위약금(위약금3)을 모두 없애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다.

미래부 역시 2년 약정뿐 아니라 1년 약정에도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저가요금제에 대한 보조금 수준을 상대적으로 올리는 경우에는 보조금 비례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통신요금 인하 운동을 펼쳐온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역시 "단통법 도입으로 알뜰폰(MVNO) 가입자가 늘고 '분리요금제'를 도입해 단말기 보조금 대신 요금 할인을 받게 한 건 바람직하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안 사무처장은 "단말기 정찰 판매로 '호갱' 숫자는 줄었지만 보조금 수준이 계속 바뀌면서 합법적인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통신사 폭리도 여전히 심하다"라면서 "제조사와 이통사 보조금 분리 공시제를 도입해 단말기 출고가 거품을 원천적으로 없애고 기본요금 폐지 등 통신요금을 크게 낮춰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태그:#단통법, #스마트폰, #이통사, #단말기 보조금, #아이폰6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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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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