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봉 후 3주가 지난 현재 벌써 700만 관객수를 돌파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미국 내 반응에 비해 한국 영화 팬들의 반응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여러 뉴스 보도들은 나름의 한국 흥행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를 테면, 대중의 교양과학 수준이 향상된 점이나 높은 자녀 교육열 등이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분명 이러한 분석은 흥행의 통계 수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 유효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그러나 여기서는 이와 같이 수치화 된 결과를 해석하기보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과학이론을 내러티브 속에 녹여내는 데 활용했던 '부성애' 코드를 중심으로 다뤄 보고자 한다.

<인터스텔라>는 지구적 재앙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재앙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 전개된다. 그러한 내러티브의 중심에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가 존재한다.

그는 가장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다. 한때 파일럿이었지만 농부로 살고 있는 쿠퍼가 행성  탐사 미션에 참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앙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즉, 부성애다. 그리고 쿠퍼가 미션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가족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쿠퍼의 여정은 '미션 수행 - 지구 귀환'이라는 요약된 서술 안에 간단히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험난하기만 하다. 여기서 영화적 서스펜스는 치달아 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부성애는 서스펜스의 크기만큼 낙차를 크게 하여 관객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린다.

지구적 재앙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주로 간 아버지의 이야기인 <인터스텔라>는 '부성애'라는 코드를 지닌 부모(혹은 가장) 관객들에게 동일시할만한 접촉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닥친 위협과 재난의 공포라는 배경 설정은 현실의 무게를 체감하며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동일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전 지구적 자본의 포섭으로 인한 경제적 무게감은 현대의 가정을 짓누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리고 이는 마치 재앙의 수준과도 같이 다가온다.

때문에 미션의 무게와 가족의 무게를 지고 우주로 가는 <인터스텔라>의 아버지 모습은 가장으로서 마음의 짐을 지고 일터로 나가는 대한민국 아버지의 모습과 나란히 놓고 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병렬을 포착하는 순간 안타까움이 배어나온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이 영화처럼 이미 재난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우주로 떠나는 아버지와 일터로 떠나는 아버지
웹툰<대물림> 웹툰<대물림>중에서

▲ 웹툰<대물림> 웹툰<대물림>중에서 ⓒ VITAMIN


최근 다시 SNS를 통해 회자되는 웹툰이 있다. 웹툰 <대물림>은 가계부채 사슬이라는 재난에 대처하는 가장의 쓰라린 모습을 표현했다.

마냥 허구적이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는 단지 현실의 반영물로써 웹툰에 옮겼을 뿐이다. 하지만 독자는 반영물을 생산케 한 처참한 현실을 먼저 직시한다. 왜냐하면 반영물 너머 멀리 있는 현실을 망원경으로 보듯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현실의 두터운 공기에 둘러싸인 채로 반영물인 웹툰을 통해 현실을 재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가 아닌 현실의 대한민국은 참담하다. 동이 트기도 전에 잠을 줄인 채 출근을 재촉하는 가장의 뒷모습에는 지구를 구할만한 영웅적 미션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진 않는다. 그러나 피붙이들에게만큼은 현실의 재난과 위협을 안기지 않으리라는 저마다의 미션을 스스로 부여하고 몸부림치는 모양새는 영화 못지않게 역동적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하루종일 자본의 힘에 내맡겼던 존재를 추슬러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재회하면 언제나 감격이 있었던가?

영화 속 미션은 솔루션을 찾으면서 서스펜스가 해소되지만 현실 속 미션은 솔루션조차 마땅치 않은 채 그저 반복적인 삶 속에서 버티기를 요구한다. 심지어는 일터에서 돌아와 감격적인 재회가 이루어져야 하는 가정에서조차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가족은 서로 분리되고 파편화되는 비극이 일어난다.

어쩌면 영화는 현실의 이데아이기 때문에 관람을 하고 돌아서는 관객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이데아의 간극만큼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바라보고 위안을 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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