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1년 <도가니>의 예상치 못했던 흥행은 한국 영화계에 실화를 다룬 상업 영화들의 제작을 촉진시켰다. 그로인해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에 이어 <변호인>이 등장해 '천만 영화'가 되었고, 이후 <제보자>와 <카트> 그리고 <국제시장>까지 이르렀다. 조금 먼 역사적 실화를 다룬 영화인 <명량>은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을 들인 작품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영화에 관심을 보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국제시장> 속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접하다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자 사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같은 현실 속에 살아온 한국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현실을 보고자하고,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 흘러온 <국제시장> 덕수의 삶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주)JK필름


<국제시장>은 <해운대>로 '천만 감독'이 된 윤제균 감독의 신작이다. <해운대>에서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와 재난으로서의 바닷물을 적절히 활용해 드라마성과 볼거리 모두를 잡았다면, <국제시장>에서는 덕수(황정민 분)라는 한 노인의 생애와 한국 현대사를 적절히 활용해 역시 드라마성과 볼거리를 모두 잡으려 시도했다.

가장 큰 볼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흥남철수(6.25전쟁 당시 동북부 전선에서 작전 중이던 아군 주력 부대가 흥남항을 통해 대규모의 해상 철수를 단행한 사건)' 시퀀스다. 중공군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CG에 의해 광대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덕수 가족의 피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감동을 준다.

<국제시장>에서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은 영화 속 볼거리의 재료로 쓰인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덕수와 영자(김윤진 분)가 결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덕수가 가스 폭발 사고로 광산에 갇히게 되는 장면이 등장해 재난 영화와 같은 긴박감을 준다. 또한,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덕수가 겪는 베트콩의 폭탄 테러 장면을 통해 스펙터클한 액션을 연출했다.

액션 장면뿐 아니라, 1980년대 '이산가족 상봉 생방송'을 소재로 감성적인 볼거리를 주기도 한다. 과거 KBS를 통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제 방영됐던 이 TV프로그램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수십 년 만에 만나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봤던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이 덕수 인생의 일부가 되는 방식은 <국제시장>이 취하고 있는 내러티브 스타일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덕수라는 인물의 생애(픽션)와 한국 현대사(논픽션)의 조화가 <국제시장>만이 지니는 독특한 볼거리이자 관람 포인트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형식면에서는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가 연상되듯, 덕수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면 처리를 비교적 무난하게 수행했다. 한국 현대사는 덕수의 생애를 다루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데, 다만 한국 현대사와 덕수의 생애 간의 유기성에는 약간의 의문도 든다.

한국,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주)JK필름


한국인이라면 실제 겪었거나 전해 들어 알 수 있는 한국 현대사를 영화화한 것은 분명 재밌는 시도다.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는 추억하는 재미를, 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상상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고 앙드레 김, 가수 남진이나 전 씨름선수 이만기가 마치 가상의 인물처럼 등장해 덕수와 만난다. 이런 카메오 캐릭터들은 새롭지는 않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아무래도 덕수라는 인물이 겪는 사건들이 한국 현대사와 겹치는 게 반복되면서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덕수처럼 한 사람이 이 영화에 나오는 한국 현대사의 각 장면들을 모두 겪은 경우는 그리 많을 것 같진 않다. 픽션과 논픽션을 섞을 때 형식뿐만 아니라, 보다 덕수의 내면에 대한 탐구를 추구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보다 덕수의 이야기가 참신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덕수의 이야기가 겉핥기식처럼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 이끌려갈 따름으로 느껴지는 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덕수만이 아닌 국제시장으로 상징되는 시장 사람들, 곧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즉, 덕수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지금 한국의 불특정한 노인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제작진은 관객들이 덕수를 통해 자신을 보거나 자신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를 보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자면 덕수도 일종의 도구로 쓰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픽션에 집중하면 논픽션이 도구가 되고, 논픽션에 집중하면 픽션이 도구가 된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주)JK필름


이런 <국제시장>의 독특하거나 모호한 영화 구성은 이 영화가 한국의 전 세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기에 불가피했을 듯 보인다. 노인 세대는 덕수라는 인물의 픽션에 자신만의 논픽션을 이입해 영화를 볼 것이고, 청년 세대는 한국 현대사라는 논픽션에 덕수라는 픽션이 더해진 것이라 여기며 영화를 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의미는 뭘까. 모든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한국영화라는 것뿐일까?   

결말에서 덕수는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사는 게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지켜오던 국제시장에 위치한 수입품 가게 '꽃분이네'를 처분한다. 오랜 세월동안 덕수가 '꽃분이네'를 지켜온 건 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덕수는 '흥남철수' 때 아버지가 자신과 헤어지며 했던 "'꽃분이네'를 기억하라"는 이야기를 마음속에 지니고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 영화의 의미는 그런 노인 세대를 이해하자는 메시지 전달에 있을 수도 있고, 덕수가 영화 속에서 영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가 겪은 고생들을 우리 자식들이 겪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말을 통해 유추해볼 수도 있다. 노인 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바라는 건 자신들에 대한 이해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이해일 것이고, 이는 청년 세대가 노인 세대에게 바라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제시장>은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최루성 신파'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장면들을 유독 길고 격정적으로 보여준다든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직설적인 대사로 과거의 한국인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점이 그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라면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주목할 만한 것은 <국제시장>이 가질 수 있는 의미다. 단지 '한국이란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국제시장>의 가장 큰 의미였다. 상영시간 126분. 12월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국제시장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윤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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