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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장날은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의 참맛을 보여주는 삶의 현장이다.
▲ 선산장날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미꾸라지와 메기 선산장날은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의 참맛을 보여주는 삶의 현장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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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마다 열리는 경북 구미의 선산 장날은 2일, 7일, 12일, 17일에 열리는 장이다.

선산 장날은 언제나 사람들의 북적임으로 흥이 절로 넘치는 곳이다. 복개천 위에 1km여 가량 길게 장이 형성되어 각종 다양한 물건들의 전시 박람회를 보는 듯 볼거리가 풍부해 지루할 새가 없다. 이곳은 사람 사는 냄새가 자연스레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삶의 터전이다.

뻥튀기도 덤으로... 정이 넘치는 5일장

괜히 흥정을 붙여보고 싶은 마음에 장사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께 가격을 물어보게 된다. 남는 게 없다면서 흥정이 끝나면 물건 봉지에 덤으로 하나 툭 하니 더 얹어 주며 고객 관리를 하는 정감도 넘쳐난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곳인데도 어떤 곳은 정신없이 물건 손질을 해 손님에게 건네주는 반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만 맞추며 씨익 웃음을 짓는 곳도 있다. 이런 풍경이 정말 자연스럽다. 지난 주말, 아이들에게 장날의 분위기를 체험시켜 주는 차원에서 선산 장날에 가자며 꼬드긴 후 장터에 왔다. 이곳에 온 목적은 아이들을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장터에서 막걸리와 함께 맛나는 음식도 먹고 싶은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잠시 둘러 본 뒤 전에 눈여겨 봤던 장터 노점 식당으로 곧장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홍합과 소라, 오뎅과 뼈없는 닭발 그리고 막걸리. 처음 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많은 사람 속에 다소 긴장했던 아이들이었지만 이내 장날 풍경에 익숙해져 즐거워했고, 뻥튀기를 튀겨내는 곳에서 아주머니가 뻥튀기를 공짜로 줘 아이들은 장터의 넉넉함에 더욱 매료됐다.

장터의 식당은 만남과 교류의 장이고, 선산장날은 이지역 어른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 금강산도 식후경, 선산장날은 각종 먹거리가 넘쳐난다. 장터의 식당은 만남과 교류의 장이고, 선산장날은 이지역 어른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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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지역에서 처음 맛본 김천 막걸리는 제법 맛났고, 집에서 늘 그러듯이 아이들에게 술 한 잔씩 따르게 한 후 장터 속의 풍요로움을 막걸리와 함께 만끽해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였다. 배불리 이것저것 장터 음식을 먹은 뒤 부풀어 오른 배를 가라앉힐 겸 본격적으로 선산 장터를 아이들과 함께 둘러 보았다.

뻥튀기를 맛보라며 공짜로 줬던 곳을 찾아 고구마 맛과 양파 맛의 뻥튀기를 한가득 산 뒤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장터를 돌아다녔다. 마침 장터 한편엔 옛날 물건을 바닥에 깔아 놓아 재밌게 구경하기도 했다. 소 코뚜레가 있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니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코뚜레를 장사하는 집에 가져다 놓으면 복이 들어 온다며 골동품 좌판 주인아저씨가 설명해주었다.

다음에 오면 사갈 골동품들을 마음 속으로 찜해 놓은 뒤 다른 곳을 둘러 보았다. 문득 강아지와 고양이를 파는 곳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구경하러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더욱 기대감으로 설렜다.

신기하게도 강아지와 고양이, 닭들이 모두 함께 옹기종기 모여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딸은 강아지 한 마리에게 관심이 가 집에 데려가자며 나에게 애처로운 시선을 보냈고, 아들은 엄마에게 허락 맡아야만 데리고 갈 수 있다며 동생을 설득했다.

귀여운 동물들이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해 부모들에게 자신들을 사갈 수 있도록 조르게 만든다.
▲ 강아지와 새끼고양이와 닭이 있는 작은 동물농장 귀여운 동물들이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해 부모들에게 자신들을 사갈 수 있도록 조르게 만든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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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오후에 늦게 와서 진득히 구경을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다음에는 일찍 와서 더 많이 구경하자고 한 뒤 선산 장터를 나왔다.

김재규 생가에 가다

선산에 온 김에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얼마 전에 알게 된 김재규(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 생가를 찾아가 보고픈 마음이 일었다. 김재규 생가는 선산 이문리라는 곳에 있었고, 선산 장터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이문리 사무소 앞까지 왔고, 차를 댄 후 이문리 사무소 뒤편으로 걸어갔다. 뒤편에 밭이 있는 너른 공터 저편에 예사롭지 않은 기와 지붕의 저택과 담장 너머로 정원에 서있는 나무가 시선을 끌었다. 마침 저택 앞에 서 있는 한 아저씨에게 김재규 생가를 보러 왔다며 위치를 물어보았다.

무뚝뚝해 보이던 아저씨는 "그걸 왜 알려고 해? 우리는 그런걸 알려줄 이유가 없어!"라며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뒤져서 찾은 김재규 생가의 사진을 단서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진 속에서 봤던 김재규 생가 뒤편의 건물과 똑같은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처음 보았던 예사롭지 않았던 저택이 바로 김재규 생가였다. 김재규 생가 앞에서 마주친 아저씨가 바로 뒤의 생가를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 곳 사람들에겐 시대적인 아픔이 서려 있을 것이고 지금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뒤로 보이는 것은 장원방 인물들에 대한 기록물들이며 그 뒤로는 김재규 생가가 있다.
▲ 장원방이라 불리는 이문리 마을 뒤로 보이는 것은 장원방 인물들에 대한 기록물들이며 그 뒤로는 김재규 생가가 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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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생가 앞에는 넓게 잘 정비해 놓은 놀이터가 있는데 더불어 장원방을 알리는 표석도 세워져 있었다. 장원방이란 조선조 숙종 때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내용처럼 선산 지역에서 인재가 많이 나온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표석에는 김치, 김성미, 전가식, 유면, 하담, 정초, 정지담, 김숙자, 하강지, 하위지, 하기지, 김종직, 김종석, 김여물, 박춘보의 인물에 관한 과거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사육신 하위지와 조선시대 성리 학자이며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점필재, 김종직도 이 곳 선산 출신이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 보니 이 곳은 선산읍 노상리와 이문리 일대의 한마을에서 14명의 장원과 부장원 그리고 문과 급제자들이 배출됐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장원방이라는 이름도 얻었고, 현재도 이 일대는 서당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생가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에게 김재규 생가를 가리키며 저 곳이 누구의 집인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이름은 모르겠고요, 사람을 죽였다고 하던데요."

 담장너머로 김재규 생가가 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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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는 이곳 사람들에게 금기시 되고 터부시 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5년 된 지금 김재규라는 인물의 역사적인 평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김재규는 군사 재판에서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나타냈기도 했다.

혹자는 조선 세조 2년(1456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참하게 죽은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가 숙종 1691년에 다시 복관 된 것처럼, 김재규 역시 언젠가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범이라는 오명 속에서 복권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다 처형 당한 조선시대 문신 김문기는 영조 7년(1731년)에 복관되었고 후에 충의란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역사적인 인물이 바로 김재규의 조상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력이 지대한 이곳 구미 지역에서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아직은 때가 이르다. 복관된 사육신처럼 훗날 모든 상처가 아물었을 때 아마도 자연스럽게 재평가 되지 않을까.

가볍게 찾아 온 김재규 생가가 있는 이곳은, 내 나이 8살 때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격동의 세월을 지나쳐 온 우리나라의 모든 일들이 마치 주마관산처럼 스치듯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다지 오래지 않은 회환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곳은 훗날 나의 아들과 딸에게 어떤 곳으로 비치게 될지 미래가 궁금한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산장날, #선산 장원방, #한국유통신문 오마이뉴스 후원, #구미김샘수학과학전문학원 수학무료동영상강의,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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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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