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세계에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애증'으로 요약된다. 국내에서는 사제 개념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냥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이다. '성적'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달리는 것은 같지만 '개인사업자'에 가까운 선수의 입장과, 리더로서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는 감독의 입장은 동상이몽이 되기 쉽다. 궁합이 잘 맞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인연이 되지만, 엇갈리면 원수보다 못한 관계도 될 수 있는 게 바로 감독과 선수 사이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자유계약(FA)과 신생 구단 특별 지명으로 '선수 대이동'의 시즌이 찾아오면서, 몇몇 선수와 감독들의 특별한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누군가에는 '기회', 어쩌면 '화해'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되풀이된 '악연'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인연과 악연, 모두 끌어안은 조범현

지난 27일 단연 화제의 중심은 신생구단 수원 KT 위즈였다. 다음 시즌부터 1군 무대에 합류하는 KT는 FA와 특별지명으로 많은 전력을 영입하며 프로야구 선수 대이동을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이름은 김상현과 장성호였다.

두 선수는 KT의 지휘봉을 잡은 조범현 감독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조범현 감독은 KIA 사령탑 시절 이 두 선수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

김상현과 조범현 감독은 서로에게 있어서 귀인이었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거포 유망주로 주목 받은 김상현이지만 2008년까지는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로 머물렀다. 그러나 2009시즌 초반 고향 팀인 KIA로 트레이드되며 야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훗날 박병호(넥센)와 함께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중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조범현 감독은 우타 거포 김상현을 과감히 중심 타선에 기용하여 주전 4번 자리를 맡겼다. 최희섭과 함께 형성된 공포의 CK포는 그해 KIA의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김상현은 121경기, 타율 .315, 36홈런, 127타점으로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KIA의 기념비적인 열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홈런왕-타점왕 정규시즌 MVP까지 휩쓸었다. 김상현의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조범현 감독도 감독 인생 최초의 우승을 맛봤다.

이후에도 김상현은 2009년만큼은 아니지만 2010년 21홈런, 2011년 14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2011년을 끝으로 조범현 감독이 KIA를 떠나면서 김상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후 한 차례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지 못했다. 후임 선동열 감독은 김상현을 그리 중용하지 않았고 2013시즌 초반 SK로 트레이드되며 팀을 떠났다. 김상현은 SK에서 이만수 감독의 기대를 받았으나, 2013년 타율 .236, 7홈런, 37타점에 이어 올시즌에도 42경기, 타율 .263, 5홈런, 20타점으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았다.

'반짝 스타'로 잊혀가던 김상현에게 뜻밖의 기회를 다시 손을 내민 것이 조범현 감독이었다. 특별 지명으로 영입한 선수 중 조 감독과 함께 뛰어본 경험이 있는 선수는 김상현이 유일하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와 부상경력이라는 변수에도, 여전히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릴 수 있는 장타력, 그리고 무엇보다 KIA에서 조범현 감독과 좋은 인연을 만들었던 기억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호와 조범현 감독의 관계는 김상현과는 정반대다. KIA의 프랜차이즈스타 출신이던 장성호는 조범현 감독이 부임한 이후 팀내 입지가 줄어들며 관계가 썩 좋지 못했다. 조 감독은 리빌딩 차원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더 기회를 주려고 했고, 장성호의 훈련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오해까지 맞물리며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

이후 장성호는 한화를 거쳐 다시 롯데로 이적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조범현 감독은 KT의 지휘봉을 잡게 됐고, 지난 시즌 롯데 전력에서 밀려난 장성호와 퓨처스리그 무대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지난날의 앙금을 풀고 서로를 다시 보게됐다.

장성호는 통산 2015경기 출전(역대 6위), 2071안타(2위)를 때려낸 프로 야구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 지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3할을 때려내는 등 통산 타율 0.296, 220홈런 1027타점을 기록중이다. 한화-롯데를 거치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신생팀으로서 젊은 선수가 주축인 KT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야구 인생 내내 부동의 주전이었던 장성호에게 처음으로 시련을 준 감독과 어쩌면 야구인생 마지막이 될 도전을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도 두 사람의 기묘한 인연이 아닐수 없다.

'절이 따라와 중을 쫓아냈다?' 김기태와 이대형

 KT 위즈로 이적한 이대형

KT 위즈로 이적한 이대형 ⓒ 연합뉴스


반면 끝내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 관계도 있다. KT의 특별지명으로 팀을 옮기게 된 이대형과 김기태 KIA 감독의 엇갈린 인연은 야구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대형은 지난 특별지명에서 각 구단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선수중 가장 이변으로 꼽혔던 경우다. 이대형은 올시즌 126경기에 나서 타율 .323, 1홈런, 40타점, 22도루, 75득점으로 맹활약했다. 2013년 FA자격을 얻어 4년 24억의 조건으로 LG에서 KIA로 옮긴 이후 첫 시즌은 대성공이라고 할만했다. 한화로 자리를 옮긴 이용규(한화)의 공백을 잘 메우며 3분의 1 정도의 가격으로 KIA가 남는 장사를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KIA 유니폼을 입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홈 구장을 수원으로 옮기게 됐다.

이대형의 이적은 김기태 감독의 부임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쩌면 이대형이 처음 KIA로 팀을 옮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 바로 김기태 감독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LG 사령탑 부임후 당시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대형의 입지를 대폭 줄였다. 이대형은 2012시즌 101경기, 2013시즌 102경기에 나섰지만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서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국 이대형은 생존을 위하여 팀을 떠나야했다.

그런데 1년만에 선동열 감독을 팀을 떠나며 후임으로 하필 김기태 감독이 KIA 지휘봉을 잡게 됐으니 이대형 입장에서는 '절이 싫어 중이 떠났는데 절이 따라온 꼴'이 되어버렸다.

1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여론의 반응이다. 당시 김기태 감독은 LG를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끌며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대형에 대해서도 개인 성적만 신경 쓰고 영양가는 떨어지는 톱 타자라는 이미지가 강했기에, 크게 아쉬워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KIA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KIA 팬들은 지난 시즌 무너진 팀에서 그나마 제 역할을 다해준 이대형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구단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대형의 제외로 다음 시즌 KIA는 안치홍, 김선빈(군 입대), 차일목(FA)에 이어 센터 라인이 붕괴되며 전력누수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감독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보호 선수 명단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김기태 감독이 개인적인 선입견으로 이대형을 내보낸 것이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아직까지 이대형을 제외한 이유를 해명하지 않고 있다. 자칫하면 김기태 감독이 KIA 지휘봉을 잡고 처음 시작하는 단계부터 지도력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결국 함께하기엔 너무 멀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악연으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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