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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밟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명심하라.'

서산대사의 시다. 그렇지만 눈길을 어지럽게 밟은 이들이 있는 까닭에 길을 잃고 헤맸다. 심지어 내가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고 있음을 알려준 이가 있다. 바로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일깨워주었다. 경남 함양군 상림, 1100년 전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인공림으로 알았다. 아니다. 자연림이라고 했다. 

김종원 계명대 교수가 쓴 <한국식물생태보감>.
 김종원 계명대 교수가 쓴 <한국식물생태보감>.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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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의 밤 근무를 마친 12월 13일, 아내는 피곤하다며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경남 함양 상림으로 향했다.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주최한 '열린 숲 생태 강좌 – 김종원 교수가 들려주는 식물을 통해 본 세상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원 교수는 최근 펴낸<한국식물생태보감>이란 책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식물도감과 나무 관련 책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식물학계의 잘못을 꾸짖었기 때문이다.

상림공원 들머리에서부터 김 교수는 "한 명이라도 생을 걸고 상림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자기가 여기서 한 강연은 성공" 말부터 먼저 시작했다.

인공림으로 잘못 알고 있는 상림은 원래 있던 자연림으로 신라 시대 대학자인 최치원 선생이 숲의 가치를 깨닫고 지키고 가꾼 것이라고 했다. 이 숲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 홍수를 막고 마을을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경남 함양 상림이 인공림이라는 오해 풀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 들머리에서부터 김 교수는 “한 명이라도 생을 걸고 상림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자기가 여기서 한 강연은 성공” 말부터 먼저 시작했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 들머리에서부터 김 교수는 “한 명이라도 생을 걸고 상림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자기가 여기서 한 강연은 성공” 말부터 먼저 시작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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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떨구지 않은 나무 잎사귀가 끊임없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눈 내린 경남 함양 상림에는 바람이 지나가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아직 다 떨구지 않은 나무 잎사귀가 끊임없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눈 내린 경남 함양 상림에는 바람이 지나가자 다시 바람이 불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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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떨구지 않은 나무 잎사귀가 끊임없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눈 내린 상림에는 바람이 지나가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잠바 뒤에 있는 모자를 머리에 쓰고도 손이 시려 호주머니에서 뺄 수 없었다. 코도 얼얼했다. 오직 눈과 귀만은 김 교수의 목소리와 손짓을 따라다녔다. 나무껍질 부패하면 우리는 나무를 이롭게 한다고 껍질 부패부를 제거하고 살균, 살충 처리를 마친 뒤 시멘트 또는 인공 나무껍질로 나무의 겉을 처치한다.

나무 외과수술이라 한다. 오히려 다람쥐의 보금자리가 잃지 않느냐고 한다. 가을이면 상림공원에는 상사화라고 불리는 꽃무릇이 한창 불탄 듯 눈을 즐겁게 한다. 꽃무릇을 심고 풀도 뽑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가 작업하는 일들로 상림의 지층이 변한다고 했다. 천 년 숲에 천 년 나무가 없단다. 사람의 손을 타기 시작하면서 훼손되었기 때문인 셈이다.

상림 내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상림 내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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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 옆에는 위천이 흐른다. 위천의 범람은 상림에 좋은 토양을 제공했지만, 시멘트 둑은 홍수를 막을지 몰라도 식물 생태에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셈이다. 다행히 상림 밑의 흙들에 위천의 물이 스며들어 가고 있단다. 더 이상의 훼손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냥 두지 않는다. 여기서 나고 자란 목숨 하나하나가 이 숲의 원래 주인인데도 우리가 마치 주인인 양 행세했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밑씻개로 잔가시가 많은 넓은 풀 잎사귀로 주었다는 ‘며느리밑씻개’로 둔갑한 ‘사광이아재비’.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밑씻개로 잔가시가 많은 넓은 풀 잎사귀로 주었다는 ‘며느리밑씻개’로 둔갑한 ‘사광이아재비’.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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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상림에서 단순히 식물의 형태와 생태 분류에 관한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 식물도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회와 환경을 이야기했다. 또한, 이름의 의미와 유래를 풀어주었다. 세모꼴 모양의 넓적한 잎보다 작은 꽃이 둥글게 뭉쳐 핀 모양새가 귀엽고 예뻐 '며느리밑씻개'.

김 교수는 <한국식물생태보감>이라는 책에서 '일본말 '의붓자식의 밑씻개(ママコノシリヌグイ)'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서 1937년부터 책에 실렸다. 1921년에 나온 책에는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다른 풀에 '사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37년에 갑작스레 엉뚱한 이름이 실렸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밑씻개로 잔가시가 많은 넓은 풀 잎사귀로 주었다는 '며느리밑씻개'로 둔갑한 '사광이아재비'. 이제 알았으니 제대로 불러줘야겠다.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식물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식물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처럼 식물도 일제 유산을 지금껏 베껴 잘못이 넘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식물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식물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처럼 식물도 일제 유산을 지금껏 베껴 잘못이 넘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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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식물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처럼 식물도 일제 유산을 지금껏 베껴 잘못이 넘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잘못된 지식을 사실인 양 받아들인 경솔함, 집요하게 근원을 추적하지 않은 게으름, 생물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은 거만함,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은 불친절함에 민망해지기도 한다. 일부는 연구자나 학자의 몫이고 일부는 모두의 몫이다"이라는 말씀에 나도 공감했다. 제대로 식물 이름을 알기 위해 공부할 참이다.

‘새포아풀’을 뽑아 설명하는 김종원 계명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잡초가 없어요. 그저 풀이었죠.”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들은 살기 위해 어떤 풀이든 먹지 않은 게 없었다. 생존을 위해 많은 ‘나물’을 만들어 먹어왔단다.
 ‘새포아풀’을 뽑아 설명하는 김종원 계명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잡초가 없어요. 그저 풀이었죠.”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들은 살기 위해 어떤 풀이든 먹지 않은 게 없었다. 생존을 위해 많은 ‘나물’을 만들어 먹어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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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나무줄기에 내려앉은 풍경 속에 바람이 또 쌩하고 지나갔다. 숲 한가운데를 지났다. 연꽃밭 주위에 이르렀다. '새포아풀'을 뽑은 김 교수. 모두가 다시 귀를 쫑긋하며 모였다.

"우리나라에는 잡초가 없어요. 그저 풀이었죠."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들은 살기 위해 어떤 풀이든 먹지 않은 게 없었다. 생존을 위해 많은 '나물'을 만들어 먹어왔단다.

연리목은 수종 같은 나무가 만나 수액을 비롯해 영양분을 함께하는 것이지만 상림의 연리목은 개서어나무와 느티나무가 합쳐진 모양새만 하고 있어 연리목이 아니란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혼인목’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함께한 최세현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말했다.
 연리목은 수종 같은 나무가 만나 수액을 비롯해 영양분을 함께하는 것이지만 상림의 연리목은 개서어나무와 느티나무가 합쳐진 모양새만 하고 있어 연리목이 아니란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혼인목’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함께한 최세현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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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내린 상림의 겨울 속에서도 굵은 콩알 같은 열매들이 눈길을 끌었다. 추운 겨울이라 붉은빛이 더 도드라진 셈이다. 강좌가 끝날 무렵 '천 년 사랑, 사랑 나무'라는 소개 글과 함께한 상림 연리목에 이르렀다.

연리목은 수종 같은 나무가 만나 수액을 비롯해 영양분을 함께하는 것이지만 상림의 연리목은 개서어나무와 느티나무가 합쳐진 모양새만 하고 있어 연리목이 아니란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혼인목'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함께한 최세현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말했다.

‘열린 숲’ 강좌를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은 참가자들.(왼쪽 다섯 번째가 김종원 계명대 교수)
 ‘열린 숲’ 강좌를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은 참가자들.(왼쪽 다섯 번째가 김종원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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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여 강좌는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식물을 우리 동반자로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상림은 갈 때마다 특별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식물을 동반자로 여기고 느껴질수록 더욱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바라보고 오래 바라보면 모든 생명체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올 들어 가장 추운 하루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하루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저물어갔다. 1000년이 흐르는 동안 상림은 변함없이 숨 가쁜 여행자들의 조용한 안식처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



태그:#함양 상림, #김종원, #한국생태식물보감, #진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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