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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분위기의 건물과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배경으로 나무에 매달린 다양한 조명들이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 눈 내린 덕유산 리조트 풍경 이국적 분위기의 건물과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배경으로 나무에 매달린 다양한 조명들이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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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뒷전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떠났던 여행길. 거기에서 내가 우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순위는 당연히 아이들 차지고, 2순위는 아내의 몫이었다.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나에게 떨어지는 역할은 바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지닌 운전사. 부산이든 고성이든 전국 어디든,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나는 졸음과 싸워가며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그랬던 주변인이 갑자기 눈꽃이 보고 싶어졌다. 흰머리가 희끗해진 나이에도 눈이라면 출근길 정체고 뭐고, 그저 넋 놓고 바라보며 좋아라하는 사람이다. 그런 감성의 소유자가 아직 눈꽃을 직접 보지 못했다니. 그건 내가 눈은 좋아하지만, 산을 타는 걸 싫어해서다. 그런데 힘들이지 않고 눈꽃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게 이틀 전에 결정하고, 하루 전에 방 잡고 떠난 여행길이 마당 쓸고, 돈 줍고, 칭찬까지 받는 '일타삼피'가 될 줄이야.

눈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그에 못지 않게 눈을 사랑하는 아빠
▲ 눈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눈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그에 못지 않게 눈을 사랑하는 아빠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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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급한 독자들을 위해 미리 '삼피'의 내용을 소개한다. 아이들과 함께한 겨울왕국 눈썰매, 죽기 전에 봐야 할 덕유산 눈꽃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운 좋게 만난 노근리 평화공원까지 꽉 들어찬 1박 2일의 여정이다. 설레발은 이정도로 해두고, 지금부터 한 가지씩 보따리를 풀어본다.

스키 타 본 적이 없는 내가 무주 택한 이유

겨울에 무주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스키? 아니면 보드? 그럴 때마다 멋적은 웃음 한번 지어주며 '뭐, 그렇지'라고 반응해 주지만, 고백컨대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스키나 보드를 타본 적이 없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이제 힘에 부치니, 지면을 이용하여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눈썰매를 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한시간 넘게 아이들을 끌고 다녔더니 온몸에 골병이 들었다
▲ 아빠는 병든 루돌프였다 눈썰매를 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한시간 넘게 아이들을 끌고 다녔더니 온몸에 골병이 들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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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 또래 사람들 중에 어릴 적 혹은 성인이 되어서도 직접 돈 벌기 전까지 스키를 탈수 있을 만큼 넉넉한 형편에서 자란 이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개울가 얼음 위에서 썰매 질을 해대거나 비료포대를 타고 경사진 논두렁을 오르내리는 수준이었다. (내 주변에는 가난한 친구들만 있었던 것인가?) 그때부터 뇌리에 박힌 '스키는 비싼 운동'이라는 개념은 커서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고, 여차저차 하다가 때를 놓치고 말았다. 불혹의 나이에 스키 배우려다 괜히 관절만 상한다.

둘째, 나에게는 여러 가지 공포증이 존재한다. 고소공포증과 속도공포증 등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큰머리가 인지하기 어려운 진폭의 상하 전후 이동은 심각한 공포감을 유발한다. 번지점프는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미련하고 무모한 행위라고 생각하며,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는 밑에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셋째, 스키나 보드를 즐기는 분에게 태클 걸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나는 다만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구들방형 인간이다. 겨울에는 그저 따뜻한 아랫목에서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는 걸 최고의 레저로 생각하는 그런 종족이다. 그 추운데 꽁꽁 싸매고 이고지고 스키장엘 왜 가느냐 말이다. 물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기에 겉으로 드러내놓고 욕하지는 않는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스키 혹은 보드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까지 몹쓸 유전자를 물려줄 생각도 없다. 높은 데는 벌써부터 싫어하는 여섯 살 첫째 녀석에게 용기와 배포를 길러주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눈과 친해지는 눈썰매장을 택했다.

덕유산 리조트의 야간 눈썰매장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다. 개장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많지 않다.
▲ 눈썰매장 야간풍경 덕유산 리조트의 야간 눈썰매장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다. 개장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많지 않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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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눈꽃을 보고 싶다는 나의 개인적 욕망을 위해 영하 10도의 오지로 처자식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여섯 살, 다섯 살 아이들을 앉혀놓고, "덕유산 정상에 핀 눈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나 하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과연 떠오르는가?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겨울왕국을 찾아 떠나는 눈썰매 탐험이었다.

무주는 말 그대로 눈의 나라

다행히도 금요일 무주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토요일 오후에 도착한 전북 무주는 말 그대로 '눈의 나라'였다. 곳곳에 쌓여진 눈과 눈 덮인 덕유산 자락 그리고 보드를 짊어진 젊은이들의 경쾌한 발걸음까지 바야흐로 축제 분위기였다. 아귀가 맞아 떨어지려고 그랬는지,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눈썰매장도 개장했다.

눈썰매장의 이용시간은 주간(오전 9시~오후 5시), 야간(저녁 6시~9시)으로 나뉘는데, 무주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였고, 뽕을 뽑을 요량으로 야간을 타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용요금이 어른 1만 천 원, 아이 1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눈썰매를 열 번쯤 타다가 지친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스키장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면서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

시간을 아끼려고 이른 저녁을 먹고, 여섯시에 맞추어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요금이 아까우니 한 번이라도 더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올라가서 첫 하강을 했다. 내가 다섯 살 둘째를 안고 탔는데, 계획은 거기에서부터 일그러졌다. 성인용과 어린이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어린이용은 아직 개장을 안 한 상태여서, 한 놈씩 안고 타기로 한 것이다.

길이가 비교적 긴 편인 눈썰매장은 하강과 함께 꽤나 속도가 붙었다. 아이의 안전만큼 나의 신변보호도 중요했기에 막바지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급제동을 걸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눈썰매 브레이크는 발바닥 전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기초상식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뒷발로 브레이크를 거니 엄청난 눈가루가 날렸다. 어른인 내가 얼굴이 얼얼하고 앞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 막내는 오죽했겠는가?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면 굳이 비싼 돈 주고 눈썰매장에 갈 필요가 없다. 약간의 경사와 눈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간이 눈썰매장이 될 수 있다.
▲ 숙소앞 계단 간이 썰매장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면 굳이 비싼 돈 주고 눈썰매장에 갈 필요가 없다. 약간의 경사와 눈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간이 눈썰매장이 될 수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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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번을 끝으로 "고얀 눈보라!"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린 막내는 더 이상의 눈썰매를 거부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큰 아이를 꼬드겨 두어 번 더 타긴 했지만, 이미 김은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간 썰매에 아들 둘을 태우고 눈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둘을 합친 몸무게 36kg를 끌고 하염없이 눈밭을 왕복한 아비는 슬프게도 아이들보다 먼저 쓰러지고 만다. 끝으로 하나의 팁을 공개한다. 집에서 썰매를 가져가면 굳이 돈 내고 썰매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놀 만한 곳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눈과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이 눈썰매장이 된다. 더구나 아이들이 아직 어려 눈썰매를 겁낸다면 아주 딱이다. 아비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다음 회에 계속)


태그:#덕유산리조트, #눈썰매장, #야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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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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