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땅콩리턴' 논란 이후 일주일 만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직접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사건 당시 기내에서 쫒겨난 박창진 사무장은 <KBS>와의 인터뷰 중 "회사 측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 '거짓 진술 강요' 빨간불 켜진 대한항공 '땅콩리턴' 논란 이후 일주일 만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직접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사건 당시 기내에서 쫒겨난 박창진 사무장은 <KBS>와의 인터뷰 중 "회사 측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8일 밤, 기자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돌렸다. 대한항공에서 15년 넘게 비행기를 탔던 기장 A씨였다. 그는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 "(기장으로서) 서글픈 일"이라고 했던 터였다. 그와의 전화 인터뷰를 중심으로 기사를 마감하기 직전에 대한항공 쪽에서 사과문을 보내왔다. 기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었다.

그에게 사과문을 읽어줬다. 그는 "그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해왔다"면서 "힘없는 기장이나 사무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마 회사에서 그 사람들(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 입단속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그렇게 해왔다"고 토로했다(관련기사: "조현아 부사장, 원래 횡포로 유명"...밤 늦은 사과문, 오히려 '후폭풍' 됐다).

조 전 부사장의 일탈이 알려졌던 8일 회사 쪽은 말그대로 '무대응'이었다. 기자에게 오히려 "큰일 아니다, 일부 직원이 오버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승무원의 자세에 문제가 있으며, 기내 서비스를 책임지는 조 전 부사장이 지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거들었다.

기자가 '그렇게 끝낼 일이 아닐 것 같다', '공식 사과나 (조 전 부사장의) 입장 발표가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그정도 일이 아니다"였다.

"괜히 오버해가지고" vs. "그 사람들은 원래 그래왔다"

지난 9일 대한항공 사과문의 후폭풍은 거셌다. 기자에게 조씨 일가의 과거 행적을 제보하는 메일과 내부 승무원들의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전날 취재 때는 조용했던 조종사 노조도 거들었다. 회사 사과문에 대한 노조 조합원의 반박글은 전날 기자와 통화한 A씨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다(관련기사 : "자신의 지위 이용해 항공법 위반"...참여연대, '땅콩 회항' 조현아 부사장 검찰 고발).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에 대한 누리꾼의 성토는 더 높아졌다. 오후 들어 언론들도 사과문에 대해 비판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IOC 총회를 마치고 뒤늦게 귀국한 조양호 회장은 "미안하다"는 간단한 사과 한 마디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온 것이 조 전 부사장의 보직사퇴였다. 대한항공 부사장직과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관련기사: "기장한테 후진하라 하고, 너 내려"...'땅콩 회항' 조현아 부사장직 사표 제출).

대한항공은 이때까지도 국민들이 왜 분노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대한항공 관계자는 "회장님도 사과했고, 조 부사장도 보직에서 물러났으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검찰 고발 소식이 알려지고, 내부직원과 승객의 새로운 증언이 터져 나오자, 조 부사장은 10일에 회사에 부사장직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3개 계열사 대표이사는 유지했다.

11일 검찰이 대한항공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사측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듯했다. 조 전 부사장의 국토부 조사와 함께 대국민 사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2일 조양호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조 전 부사장의 국토부 출두현장은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 역부족이었다(관련기사 : 오너의 빗나간 자존심... 대한항공 창사이래 최대위기).

무대응→눈치보기→거짓과 꼼수 해명→진정성 없는 사과→은폐·조작

'땅콩 리턴'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정문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고 조사실을 가기 위해 돌아서고 있다.
 '땅콩 리턴'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정문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고 조사실을 가기 위해 돌아서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히려 대한항공의 헛발질만 도드라졌다. 조 회장은 연거푸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조 전 부사장의 국토부 출두 과정에선 더 가관이었다. 수십여 명의 대한항공 임직원이 동원됐고, 여자화장실을 재차 청소해달라는 기막힌 일들도 전해졌다.

국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한 것은 조씨 일가의 거짓 해명과 진정성 없는 사과였다. 조 전 부사장은 국토부 조사 때 기내에서의 폭언과 폭행 사실을 철저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그렇게 부인하고 있을 때 항공기에서 내쫓긴 사무장이 한국방송(KBS) 인터뷰에서 폭언과 일부 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모욕감과 인간적인 치욕을 겪어보지 않은 분은 모를 것"이라며 울먹였던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기자들이 조 전 부사장에게 들은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말이었다(관련기사 : 사무장 "폭행하고 거짓진술 강요"...조현아 "저는 지금 처음 듣는 얘기").

이 뿐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과 함께 일등석에 탔던 박아무개씨를 상대로 거짓 진술을 강요하거나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박아무개 사무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회사차원의 증거인멸과 조작을 조직적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쪽에선 "더이상 노 코멘트하겠다"고 했다. 

누가 대한항공을 위기에 빠뜨리나

그리고 회사 쪽 또 다른 관계자는 기자에게 "대한항공을 더 이상 벼랑으로 내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순간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누가 대한항공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기자가 되물었다. '누가 회사를 벼랑으로 내몰았는가'라고. 그는 "우리도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 하도 (여론이) 안 좋아서 해본 소리"라고 덧붙였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이 지난 12일 KBS와 인터뷰를 했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이 지난 12일 KBS와 인터뷰를 했다.
ⓒ 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대한항공은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 1호 국적항공사는 '땅콩 항공'으로 희화화되고, 미국 한인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까지 일고있다. 국민들은 '코리언 에어(Korean Air)'에서 '코리언'을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사의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는 추락하고, 주주들은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다시 지난 8일 밤 이야기를 나눴던 기장 A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서글프다"고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조씨일가의 제왕적 오너 중심 문화는 권위적이고 패쇄적인 조직을 만들어왔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원들은 '주종관계'에 충실했다. 조씨 오너일가의 일탈행동이라도 나오면 왜곡과 조작이 서슴지 않고 이뤄졌다.

이제 조현아 사태는 검찰로 넘어갔다. 지난 5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항공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는 얼추 드러났다. 검찰은 오는 17일 조 전 부사장을 소환한다. 법조계에선 조 전 부사장의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조 전 부사장의 사법처리와 별개로 대한항공은 또 다른 큰 숙제를 안게 됐다.

주어진 숙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한항공이 다시 날갯짓을 하기 위해선 국민적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조씨 일가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오너 경영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패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를 없애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태그:#조현아, #대한항공, #조양호, #땅콩회항
댓글2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