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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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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편향된 경험을 북한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통일 토크콘서트에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한 말이다.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이 '신호'를 보내자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나섰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정윤회씨가 신은미·황선·이석기보다 더 잘못했다는 것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싸워야 할 사람은 정윤회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이라면서 야권을 향해 종북 공세를 퍼부었다.

다시 고개 내민 '종북 색깔론'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여파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균열될 조짐이 보이자 어김없이 '종북몰이'가 시작됐다. 청와대와 여당이 보조를 맞추는 것을 보니 정권에 위기가 닥치긴 닥친 모양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다소 뜬금없었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가장 주목됐던 것은 박 대통령이 정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파문에 대해서 추가로 입장을 내놓을지였다.

검찰 조사를 받던 최아무개 경위가 억울함을 호소한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함께 조사받던 한아무개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였다. 또 수석비서관회의 당일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검찰 조사까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전에는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하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대신 '종북공세'를 폈다.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이긴 했지만 그 의도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씨의 토크콘서트에 대한 보수세력과 종합편성채널의 '종북몰이'는 박 대통령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p)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8일 39.7%로 40%대가 무너진 뒤 9일 39.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10일 이후 지지율 하락세는 멈추고 약간의 회복세를 보였는데 이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과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를 둘러싼 논란 등에 따른 '여론 분산 효과'로 분석됐다.

'종북몰이'로 지지율 땜질 나선 박 대통령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발자 신분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발자 신분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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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유출 과정을 둘러싼 청와내 내부의 진실공방, 특정인을 표적으로 한 강압 감찰 논란까지 불거져 돌파구가 마땅치 않은 상황. 결국 박 대통령은 종북 몰이에 발을 담갔다. 해묵은 방식이지만 효과가 쏠쏠한 색깔론으로 지지율 땜질에 나선 것이다.

이런 식의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종북몰이와 반북 정서 자극은 그동안 여권이 손쉽게 동원했던 지지층 결집 수단이었다. 지난해 국가정보원과 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국면 전환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물론 박 대통령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종북공세와 색깔론이 저급하긴 하지만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에 박 대통령도 자유롭게 의견을 밝힐 수는 있다. 문제는 최소한의 균형감도 없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평화통일 지향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대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활동 중인 한 고등학생이 지난 10일 열린 신씨의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사제폭발물 테러를 가한 '사건'은 외면했다.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라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명백한 범죄인 테러 시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신씨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도 다분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국회에서는 '박근혜 지킴이'를 자처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종북주의자에게는 관대하고 이를 보다 못한 청년에 대해 법 집행하는 게 정상인가"라며 테러를 옹호했다.  

테러를 사회적 갈등으로 치부한 국정 최고책임자... 자격 있나

한 고3 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인화물질을 터트려 2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3명이 부상당했다. 사진은 인화물질 폭발 당시의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
 한 고3 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인화물질을 터트려 2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3명이 부상당했다. 사진은 인화물질 폭발 당시의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
ⓒ 주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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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들먹이며 신씨의 토크콘서트를 비판했지만 오히려 헌법적 가치를 위협하는 것은 '백색테러'까지 불사하는 극우세력의 광기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폭력으로 상대를 제거하려는 행위는 박 대통령이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 자유민주주의를 밑동부터 허무는 심각한 범죄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백색테러'가 실제 부활했음에도 박 대통령은 이를 '사회적 갈등' 정도로 치부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이런 인식 속에 종편의 마녀사냥을 등에 업고 끔찍한 '테러'를 가한 범죄자를 '열사'로 칭송하는 역사적 퇴행은 현실이 됐다.

박 대통령이 신씨의 여행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국정책임자라면 폭력과 이를 찬양하는 극우의 광기에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이런 광기에 편승해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고 한다면 대통령 자격은 없다.


태그:#박근혜, #백색테러,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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