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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춘자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3주기를 맞아 지난 12월 12일, 카페 봄봄에서 '노동과 지역의 만남!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주제로 포장마차 대화가 열렸다.
 고 이춘자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3주기를 맞아 지난 12월 12일, 카페 봄봄에서 '노동과 지역의 만남!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주제로 포장마차 대화가 열렸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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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7일에 한 여성 노동운동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교육단체인 서울노동광장의 고 이춘자 대표다. 그는 노동전문종합지인 월간 <노동세상>의 발행인이기도 했다. 그가 세상과 작별한 지 3년, 그를 따르던 후배와 동료들은 그의 유지를 잇기 위해 많은 실험들을 해왔다.

가장 큰 변화는 영등포역 뒤편에 있는 서울노동광장의 사무실을 지역 주민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카페 봄봄'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봄봄'의 모토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과 마을의 합체! 함께 꿈꾸는 마을카페'이다. 이 대표는 세상을 뜨기 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는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카페 봄봄'은 바쁘다. 회원들 누구나 강사가 돼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 '누구나 강좌'를 통해 양말인형 만들기, 재봉틀 강좌, 하우스 맥주 만들기, 발효식품 만들기 등 다양한 강좌를 열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동네 벽화도 그리고 텃밭도 일군다.

카페 주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 1인 가구, 자취생들을 위한 요리클래스도 진행했다. 서울노동광장이 이미 3년 전 청년노동자학교 때부터 고민했던 청년 비정규직, 알바, 사무계약직 등 청년노동문제를 계속 이어와 '달려라 전태일, 웃어라 장그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고 이춘자 대표 3주기 추모기간(12. 10~13)을 통해 3년 간의 실험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일에는 봄꽃(이춘자 대표의 애칭)이 사랑한 청년토크, '노동과 정치에 던지는 <미생>들의 한수'를, 11일에는 봄꽃이 사랑한 음악, 봄꽃가요 도전 100곡을 나눴다.

또, 12일에는 지금은 폐간된 월간 <노동세상>의 인기 코너였던 '포장마차 대화'를 차용한 '2014 포장마차 대화'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노동과 지역의 만남! 세상을 바꿀 수 있나?'였다.

'2014 포장마차 대화' 나눠... 노동과 지역의 만남! 세상 바꿀 수 있나?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데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데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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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김일영 서울시마을기업사업단 단장은 "노동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을 개량으로 몰지만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지역에 안착하는데 협동조합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퇴직금을 모아서 현재 민달팽이유니온이 하는 것처럼 민간임대주택사업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노동조합운동이 개량주의운동인데 협동조합을 개량으로 모는 것 자체가 개량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올해 10년 만에 다시 철도노조위원장이 됐는데 선거 슬로건이 '우리 공동체 흔들리지 않게'였다. 그를 위해 청년미래위원회와 생활협동국을 신설하기로 했다. 조합원들이 퇴직을 하고서도 노동조합이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데 협동조합이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은 "조합원들의 재생산 공간인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이 바로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하면서 지역에서 취약계층 아이들 돌보기, 희망의 집수리 등 생활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한 여러 경험들을 전했다.

김성섭 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준) 좌장은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이 만나야 한다는 전제를 깔기보다 노동운동은 지역운동이, 지역운동은 노동운동이 필요한 지를 자기 필요를 만드는 게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동규 '카페 봄봄' 매니저는 사회자와 토론자가 김씨 성을 가진 남성들로만 구성된 데 대해 사과하면서 "오늘 대화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황산테러를 하거나 안주에 땅콩이 없다고 문제제기 하는 것만 빼고는 어떤 의견을 말하든 괜찮다"는 말로 대화를 열었다. 객석의 참가자들은 술잔을 든 채, 토론자들은 술잔 옆 찻잔을 홀짝이면서 나눈 포장마차 대화는 여느 토론회와 달리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토론자들 사이의 '디스'도 허용됐다.

다음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포장마차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사회자와 토론자의 성은 뺀 채 이날의 대화를 전한다.

협동조합은 개량 아니야?

김일영 서울시마을기업사업단 단장 "노동조합의 역량과 자산을 모은다면 협동조합을 통해 세대간 갈등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김일영 서울시마을기업사업단 단장 "노동조합의 역량과 자산을 모은다면 협동조합을 통해 세대간 갈등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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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규: 지난 3년 동안 카페 봄봄은 지역과 만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쉽지는 않았다. 노동과 지역이 만나는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

일영: 내가 쓴소리를 하는 악역을 담당하겠다. 서울시 마을기업사업단에서 일하면서 노동쪽과 두 차례 토론회를 가졌다. 두 토론회에서 느낀 건 하나는 노동진영이 협동조합을 너무 모른다는 거다. 또 다른 하나는 협동조합을 개량주의로 몰아세우거나 노동운동을 교조주의로 규정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선배들이 그런 논쟁을 하는 걸 보면서 노동운동에 있어 협동조합은 뭘까 궁금했다.

서구에서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정당을 세상을 바꾸는 3주체로 인식하는데 협동조합을 개량운동노선으로 매도하는 걸 보면서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꿀 의사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영훈: 앞서 노동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을 개량주의운동으로 매도한다고 했는데 노동조합운동 역시 개량주의 운동이다. 그리고 개량은 나쁜 게 아니다. 레닌 역시 개량의 시기에 개량을 못하면 혁명의 시기에 혁명을 못한다고 말했다. 변혁적 기운으로 갈 수 있는 양적토대가 노동조합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을 개량주의로 욕하는 거 자체가 상당히 개량적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정국에서 원산총파업, 46년 9월총파업을 주도했던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 노동자들을 아우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상호부조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돈이 없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노동조합이 나서서 함께 장례를 치러준 거다. 노동조합 가입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또 과거 유럽에서도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노동조합, 협동조합, 교회가 나서서 해결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이 대립적이거나 뭐가 우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개량으로 모는 건 조합운동에 대한 오해다. 이번 토론이 조합운동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희망연대노조는 조합원들이 삶을 영위하는 지역을 바꾸는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한다. 지역에서 취약계층 아들들도 돕고, 희망의 집수리 사업도 하고 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희망연대노조는 조합원들이 삶을 영위하는 지역을 바꾸는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한다. 지역에서 취약계층 아들들도 돕고, 희망의 집수리 사업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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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억: 우선 희망연대노동조합의 문제의식을 먼저 이야기하겠다. 희망연대노조는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한다. 작업장 투쟁은 기본이고, 조합원들의 재생산 공간인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이 바로 지역사회운동노조이다. 노동운동은 조합원의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먹고 마시고 영위하는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80만 명이다. 이들이 머리띠를 묶고 노동조건 개선, 고용보장 투쟁을 하면 임금이 올라간다. 그런데 그렇게 오른 임금을 아이들 사교육비나 재테크에 쏟아 붓는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 중심의 삶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노동조합만으로는 힘들고 지역사회와 함께 모색할 때 가능하다. 그런 시도들 중 하나로 협동조합도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김성섭 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준) 좌장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은 서로 각자의 필요를 먼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또, 노동이 지역으로 갈 때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갖고서 가라."
 김성섭 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준) 좌장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은 서로 각자의 필요를 먼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또, 노동이 지역으로 갈 때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갖고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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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섭: 노동과 지역이 만나는 게 좋다면 누군가 만나러 가야 한다. 이렇게 무언가를 전제하면 과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재미가 없다. 이렇게 만나는 게 맞나, 저렇게 만나야 하지 않나 하는 재미없는 말만 나온다.

부부관계는 서로 계속 매력을 느껴야 유지되지, 결혼서약서가 지켜주지 않는다. 노동운동과 지역사업 역시 의무감으로는 함께 할 수 없다. 지역운동은 노동운동이 같이하면 좋은 것들을 충분하게 생각해 자기 필요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초딩에게 패한 사연

동규: 노동운동이 협동조합운동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

일영: 농담 삼아 마을공동체 사업은 진짜 이기적인 놈과 진짜 이타적은 놈은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진짜 이기적인 놈은 갈등만 부추기고, 진짜 이타적인 놈은 힘쓰다가 먼저 지쳐나가기 때문이다. 세상에 진짜 이기적인 사람과 진짜 이타적인 사람이 많겠나. 그 사이의 사람들이 많겠나. 이게 바로 다수화 전략이다. 자기 혼자 못하는 일을 옆 사람 꼬드겨서 하는 게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김영훈 위원장의 말에 딴지를 걸자면 아까 하신 말씀을 들으니 "노동조합 없이 협동조합 뉘들 잘 되나 보자, 노동조합으로부터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훈: "잘 되나 보자"가 맞다. 일본 좌익운동이 한참 잘 나가다가 망해서 활동가들이 지역운동으로 많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들이 노동조합이 우경화돼서 많이 힘들다고 한다. 협동조합, 노동조합의 공통점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에 대해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들 한다. 그런데 인문학적 소양이 3개월 특강을 듣는다고 생기지는 않는다.

조 전 부사장이 화가 난 이유는 땅콩을 봉지째 갖고 와서다. 봉지를 뜯는 노동을 하기 싫다는 뜻이다. 천한 아래껏들이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없다는 거지. 봉지를 뜯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기 때문에 사과도 그런 식으로 하는 거다.

유럽 남성들이 가정적이어서 DIY를 잘 하는 것 같나. 노동력이 비싸서 그런 거다. 노동의 가치를 서로 공유해야 한다. 자꾸 만나라고만 하면 재미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영: 노동조합, 협동조합은 산업자본에 대항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협동조합형 공장이 확장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협은 상업자본과, 신협은 금융자본과 싸우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이 노동조합을 일차적으로 통과해야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성섭: 예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역운동에서 제일 많이 한 일이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애도 없는 사람들이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는데 그중 살아남은 도서관이 몇 군데 없다.

나는 성미산마을 초대 멤버였다가 마포의 다른 지역으로 터를 옮겨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다. 혹자들이 성미산마을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중산층 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구성원들이 중산층일 수는 있어도 중산층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혼자보다는 공동체를 만드니까 많은 문제가 쉬워진다는 걸 경험하고서 여러 일을 시도하는 것이지 운동은 아니다. 그냥 필요가 있으니까 하는 거다.

우리동네에 '우리동네 나무그늘'이라는 카페가 있다. 준비한 사람들이 공간을 마련하기는 했는데 여기서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현수막을 두 달을 걸었다. 공간 이름 공모도 함께 했다. 몇 개의 후보명이 나와서 골목에 대자보를 붙여놓고 마음에 드는 이름에 스티커 붙이기를 했다. 처음에는 20~30개씩 붙던 스티커가 두 개 후보가 각축을 벌이자 달라졌다.

어느 날 밤을 지나고 나서 한쪽은 300개, 다른 쪽은 400개가 붙었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사람은 민주노총 조합원이고 다른 사람은 초등학생이었다. '소금꽃마을'이 되길 바랐던 금속노조 조합원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밤에 스티커를 붙인 거였다. 주최한 사람들도 예전에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인 염리동이어서 소금꽃마을이 되길 은근히 바랐지만 결국 초등학생이 이겨서 '나무그늘'이 됐다. 그런데 그 사건 하나로 조용하던 동네가 들썩였다.

조만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이 CMS 파티를 한다. 요즘 후원주점을 가니 술, 안주 가격이 많이 올랐더라. 우리는 술, 안주는 무료로 제공하고 대신 '나무그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CMS자동이체에 가입해달라고 할거다. 그래서 CMS파티의 제목도 '당신에게 나무그늘이 필요합니까'이다. 나무그늘은 대표, 이사회가 끌고 가지 말자고 우리 스스로를 계속 견제하고 있다. 내가 하려는 노동조합, 협동조합이 왜 필요한지를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수동적이 될 것이다.

진억: 예전부터 민주노조운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들이 나왔지만 변화, 혁신은 되지 않고 계속 밑바닥으로 가고 있다. 말만 무성하고 "구체적으로 혁신의 모습은 뭐지?" 하면 알 수가 없다. 논객만 많고 실제로 혁신을 만들어낼 사람은 많지 않은 형국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사회운동을 얘기해 오다가 5년 전에 희망연대노조를 만들었다. 희망연대노조도 큰 그림의 문제의식은 있지만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들어가면 막막하다. 노동조합에서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받는다. 그럴 때면 '더불어 사는 삶, 생활문화공동체, 아래로 향하는 운동'이라는 희망연대노조의 모토를 이야기한다.

지역으로 눈을 돌리니까 지역의 취약계층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보였다. 그건 우리만으로는 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는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 노조는 사회연대기금을 확보해 그 네트워크에 재정을 지원한다.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노동인권교육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하고 있다. 

또 왕따 문제를 보면 주로 목욕을 제대로 못해 위생상태가 나쁜 아이들이 주로 왕따의 대상이 된다. 그건 주거환경 문제와 연결된다. 그래서 '희망의 집수리'라는 주거환경 개선활동을 해왔다. 하다 보니 생활문화적 연대활동이 여럿 보인다. 조합원들이 주체로서 지역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직은 거북이 걸음으로 천천히 가고 있다. 머리로 생각하면 할 게 없다. 낮은 수위라도 실천해 가야 한다.

퇴직자들 퇴직금 모으면 민달팽이유니온보다 나을 것

동규:
협동조합운동에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일영: 지금 비정규직으로 천대받는 청년 세대와 명예퇴직을 강요받는 장년 세대간의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도 협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들의 보증금을 모아서 청년공동임대주택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이 간신히 1억을 모았는데 퇴직하신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모아서 저렴하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민간 임대주택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보니 노동조합이 없으면 안 되겠다.

남성 노동자들이 퇴직하고 나서 지역사회에 안착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다. 그런데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특히 주거문제가 그렇다. 관악구 같은 경우는 청년 1인 주거가 빡빡하다. 이들의 원룸 월세가 대부분 40~50만원이다. 월급 100만원 조금 넘게 받아서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이런 부분에서 노동조합의 자산, 역량을 모은다면 세대간 연대활동이 가능하다.

지역사회에서 기금형성 등 자산형성전략도 필요하다. 마을기업에서 젠더문제가 심각하다. 마을기업들이 급여가 높지 않아서 대부분 여성을 고용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해 그 정도 받으면 괜찮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을 하는 거라면 그 역시 나쁜 일자리다. 노동운동과 이런 문제도 같이 풀 수 있으면 좋겠다.

영훈: 민주노총에 희망이 있나. 조직노동운동이 우리의 미래인가, 는 논쟁적 주제다.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과오가 많더라도 아직은 민주노총을 버릴 때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중심인 건 맞다. 그래도 우리 조합원들이 이렇게 말한다. "50대 후반에 진보정당을 찍는 사람은 자기들뿐"이라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돼서 첫 번째 기자 간담회에 잠바가 아니라 재킷을 입고 갔다. 그랬더니 멋 부리냐고 말들이 많더라. 노동운동이 그렇게 보수적이다. 재킷도 교사, 사무직 노동자들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투쟁 조끼만 입으라고 하는 것처럼. 집회에서 오와 열 맞춰서 구호 외치는 것도 청춘들이 볼 때는 상당히 '구릴' 것이다.

조직노동운동이 마지막 할 일이 있을까, 고민 중이다. 10년 만에 철도노조 위원장을 다시 맡게 됐다. 안 맡는다고 했더니 "너는 조합원 평균연령보다 낮으니 또 해도 된다"고 하더라. 조직운동은 이렇게 고령화됐고 격차가 엄청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위원장이 돼서 뭘 할지 고민하다가 두 개의 공약을 내걸었다. 청년미래위원회와 생활협동국을 만들겠다는 거다.

10년 전에 위원장을 하면서 신협을 하다가 망해버렸다. 아이쿱생협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남성 사업장은 집에서 뭘 쓰는지 모른다고. 그때의 아픈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평생의 동반자로서의 노동조합을 꿈꾼다. 퇴직하고 직장을 떠나서도 노동조합의 멤버십을 유지하는 데 협동조합이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번 선거의 슬로건이 '우리 공동체 흔들리지 않게'였다. 선배들이 예비 지역주민으로서 지역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지 않게 할 것이다.
또 철도노조에서 제일 작은 지방본부인 호남지방본부 사무실 옆에 '기적소리'라는 마을카페가 있다. 각종 문화 강좌도 하고, '기적소리'를 중심이 돼 '철도 문화마을만들기'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기적소리와 같은 모범 사례들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다.  

"노동자가 잘 하는 것을 갖고 지역으로 가라"

동규: 이제 객석의 의견도 들어보자. 토론자들이 덧붙일 말씀들도 해 달라.

웅전: 철도노동자다. 공공운수연맹에서 주관하는 협동조합학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도시철도노조 상근간부가 12명이나 왔었다. 복수노조로 소수노조가 돼 버린 곳인데 그 간부들이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망해버려서 마지막 희망은 협동조합이라고 이야기하더라.

또 지난 지자체선거 때 지역에서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진보정당 선거운동을 하려니 '쪽'팔렸다. 이제부터 모든 노동자들은 동네에서 술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지역사업을 고민하면서 빌라 총무라도 나가려고 했더니 빌라 총무는 세입자는 못 한다고 하더라. 마을에 대한 고민을 가지려면 내가 집을 사야 되는 거다.

일영: 집 사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너무 크게 먹으려고 해서다. 민간이 관리하는 주거권을 만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하는 공간지원정책은 박원순 시장에서 권력이 바뀌면 다시 회수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적립 전략이 필요하다.

성섭: 강원도에서 공무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서 산 친구다. 이 친구가 다시 살아나서 그런지 예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던 방향으로 문제를 본다고 한다. 그 친구가 귀농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예전에는 귀농하는 사람들이 농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단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예전에 뭐 했지?" 봤더니 전부 농촌에 없는 일들이라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그 일을 하면서 농촌에 정착할 수 있게 돕게 됐다는 거다. 노동도 다 지역에 없는 거다. 여러분이 잘 하는 것을 갖고 지역으로 가라. 그런 재능으로 지역과 만난다면 할 일이 생길 것이다.

영훈: 예전에 어떤 활동가가 민주노총 간부들도 비례대표만 신경 쓰지 말고 지역구도 신경 써서 지역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축구도 나가고 산악회도 가입하라고. 노동조합활동에 그런 것까지 하면 과로사하고, 가정 파탄난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너무 많은 짐들을 짊어져왔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통일도 해야 하고, 변혁운동도 해야 하고, 환경운동도 해야 하고.

성섭: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 없다.

영훈: 자임해 왔던 건데 이제는 그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개량은 좋게 바꾸자는 거다. 지역과 만날 때는 노동조합에서 배웠던 훌륭한 것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때 박영선 의원이 유가족측과 소통 없이 두 번이나 여당과 합의하자 우리 조합원들은 "직권조인을 두 번이나 하네"라면서 그 문제를 꿰뚫어봤다.

그만큼 민주적 절차를 많이 경험했던 게 노동조합의 자산이다. 노조 너희들, 너희 것만 지키지 말고 노동조합에서 벗어나서 시민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차이를 차별만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진억: 어려워 보이지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발상을 전환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노동운동에 자원이 많다. 노동조합 전직 간부들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너무 상층에만 있으려고 한다.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우리 운동을 망치는 게 정파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출세주의, 욕망과 정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노동자원이 움직이지 않는다. 노동자이지만 지역주민으로서 이들이 생활문화근거지인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지 말고 하나씩 찾아서 하면 된다.

주현: 강동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지역에서 만난 노동운동 선배들 중에 전교조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있다. 이제 이분들이 퇴직을 앞두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5,60대도 아직 젊지 않나. 의료협동조합이나 교육서비스 관련 협동조합 등 그분들이 지역의 청년들과 유무형의 자산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민주노총은 좀 변했으면...

지난 17일 고 이춘자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3주기를 맞아 그를 따르던 후배와 동료들이 추모기간(12. 10~13) 동안 청년 토크, 포장마차 대화 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지난 17일 고 이춘자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3주기를 맞아 그를 따르던 후배와 동료들이 추모기간(12. 10~13) 동안 청년 토크, 포장마차 대화 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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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희망연대노조의 앞서 소개된 나눔활동들이 거론되지 않는다. 절차를 어겨서 어디 회의에 참석했다 등 민주노총 질서를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만 얘기된다. 산하 노조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소통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성섭: 모든 변화가 옳지는 않겠지만 민주노총은 많이 변했으면 좋겠다. 타잔이 넝쿨을 타고 갈 때 아까 타고 온 넝쿨을 놓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이전 넝쿨을 놓는 게 중요하다.

일영: 철도노조가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이걸 해보자고 제안이 올 때까지 망해도 우리끼리 할 것이다.

영훈: 철도노조 선거에 나가기 전 노동의 인문학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청년들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다. 노동이 왜 소중하냐면 철도노조 선거에서 조합비 인하공약을 내건 팀이 떨어졌다. 고참 선배들 같은 경우는 조합비만 한 달에 8~10만 원씩 내는 되도. 손해배상소송을 300억 원씩 받으니 그렇게 내지 않으면 노조 운영이 안 된다. 조합원들도 그걸 아는 것이다. 우리가 이만큼 내야 우리 노조가 유지되고 우리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운동 상급자들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충고는 깊이 새겨 더 아래로 내려가겠다.

동규: 다들 오랜 시간 좋은 말씀들 해줘서 감사합니다.


태그:#이춘자, #카페봄봄, #포차대화, #서울노동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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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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