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와 줄리안

키미와 줄리안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모든 게 설레이는 계절, 겨울이다. 일주일 뒤면 크리스마스까지 있으니 겨울이야말로 진정 연인들을 위한 계절이 아닐까.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즐겨 찾는 영화 장르는 단연 로맨틱 코미디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만큼 뻔하고 진부한 장르가 있을까 싶다. 남녀 주인공들은 영화 속에서 때론 서로에게 상처주며 이별까지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저들은 분명 마지막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맞을 것임을. 그 밑에는 어쩌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조금은 특별하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으니까.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줄리안 로버츠 주연의 영화이다. 그녀가 연기한 줄리안 포터는 사랑에 있어 냉소적이고, 결혼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커리어우먼이다.
 
어느 날, 그녀는 9년 전 대학시절 사귄 남자친구 마이클과의 마지막 약속을 회상한다. 그 약속은 다름아닌 28살까지 서로 연인이 없을 경우엔 결혼을 하자는 것. 그러나 야속하게도 줄리안의 생일 날 마이클은 전화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다음 주에 열리는 내 결혼식에 꼭 와 줘."

 

그녀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이별 후 9년 동안 친구로 지내긴 했지만, 마이클은 아직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새 거만해졌던 것일까. 마이클의 결혼 소식에 그녀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마이클을 사랑해 오고 있었음을.

 

이제부터 그녀의 귀여운 반란이 시작된다. 마이클의 결혼식을 막기 위해, 마이클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시카고로 향한다. 그의 신부 키미는 어린 나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재력까지 갖춘 한 마디로 완벽한 여성이다. 줄리안은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마이클과 그녀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남모를 질투를 느낀다.

 

사랑을 다룬 영화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맹목적으로 여주인공을 응원한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줄리아의 모습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다들 알 것이다. 이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도 분명 마이클의 사랑이 온전히 자신을 향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땐 모를까.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인생의 한 페이지임을. 그래서 줄리안이 가엾지 않았다. 그녀 또한 마이클의 진심을 알고도 모른 척 한 못된 여자였으니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키미와의 경쟁에서 줄리안이 이기길 바랐다. 이기적이지만 원래 '내사람'이었으니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랑에도 정석은 있다. 그러나 진정 사랑을 하다보면 알면서도 절대 지켜지지 않는 것이 그 정석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줄리안이었던 적이 있기에,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줄리안과 키미

줄리안과 키미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영화로 다시 돌아가, 키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키미 역시 마이클의 전 여자친구인 줄리안을 견제하면서 때때로 둘만의 추억에 젖어있는 두 사람을 보며 소외감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웨딩 크레셔가 돼 달라는 키미의 부탁에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줄리안.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고맙다고 환하게 웃는 키미. 그 때 알았다. 지금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세 사람 모두 이런저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드디어 결혼식 날 아침이 밝아온다. 마음이 다급해진 줄리안은 마이클에게 갑작스레 키스를 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자신에게 와줄 수 없겠냐고 묻는다. 당황한 마이클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있지만, 그 모습을 키미가 보고 만다.

 

상처받은 키미는 둘을 외면한 채 도망간다. 깜짝 놀란 마이클은 그녀의 뒤를 쫓고, 줄리안 역시 키미를 쫓는 마이클을 뒤쫓는다. 모든 게 엉망이 된 이 상황. 줄리안은 자신의 게이친구인 조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다.

 

"마이클에게 사랑한다 하고 키스를 했어. 근데 그 모습을 키미가 봤고, 모든 게 엉망이 됐어!"

"마이클은 그럼 뭘 하고 있어?"

"키미를 쫓아가고 있어."

"그럼 너를 쫓는 사람은 없는거네?"

 

누구나 이 상황의 답을 안다. 마이클이 뒤쫓는 사람은 키미이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키미인 것이다. 줄리안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멀리서 볼 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막상 그 상황 속에 자신이 들어가면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변모하기 마련이니깐. 줄리안 또한 뒤늦게야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결심을 돌리기로 한다.

 

울고 있는 키미에게 다가가 자신의 원래 계획을 고백하고, 아직 지니고 있었던 마이클에 대한 감정을 거짓 없이 털어놓는다. 그러나 자신은 이제서야 답을 알게 됐다고, 그가 사랑하는 건 키미 바로 너니까,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역시 용서를 구한다.

 

 마이클과 줄리안

마이클과 줄리안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로맨틱 코미디 치고는 드문 결말이다. 원래 연인이었던 그 둘이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될까 궁금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랑 대신 우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새드엔딩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 영화의 제목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줄리안에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그녀가 이 일을 계기로 변하지 않을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이제 당당히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젠가 변한다. 그 변함을 늦출 수 있느냐, 아니면 오히려 앞당기냐는 당신에게 달렸다. 또한 혹여나 사랑이 어따나갔다 하더라도 너무 연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랑 아니겠는가. 당신의 사랑도 그런 자연의 섭리를 따랐을 뿐이라고, 그렇게 가볍게 넘겼으면 한다. 이 아름다운 계절, 하얀 눈처럼 당신의 사랑도 조금 더 성장하며 밝게 빛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2014.12.18 15:43 ⓒ 2014 OhmyNews
줄리안 로버츠 로맨틱 코미디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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