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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生)

화자가 어린 아이인 책이 좋다.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독특한 생각을 마음껏 펼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것에 대해 낯설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너무나 많이 알아버린 모모의 슬프지만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전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 만한 것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이 책 역시 상처가 많은 어린 아이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만난 후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이야기이다. 두 책의 주인공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다는 제제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없다는 모모는 상처가 많은 어린 시절, 자신들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을 아무런 편견없이 믿어주고 걱정해줄 누군가를 만났으나 너무 이르게 보내주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린 나이에 떠나 보내면서 그들이 느끼게 된 인생의 무게감은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제 마음 속에서 죽이는 거에요. 사랑하기를 그만 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그런데 넌 나도 죽이겠다고 했잖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엔 반대로 죽였어요. 내 마음에 당신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그렇게 죽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뿌르뚜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中-

큰 키워드 "사랑"

이 책에서 모모의 오랜 친구인 하밀 할아버지는 말한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소설의 내용은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고.

이 한 마디로 <자기 앞의 생>이 전하고자 하는 키워드가 설명된다. 모모는 어려서 부모님없이 로자 아줌마네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말썽꾸러기로 자란다. 당연히 받아야하는 부모님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로자 아줌마에게도 항상 혼나기 일쑤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맹목적인 사랑이 없다는 것이 그를 어른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사랑에 목 말라하던 모모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스러움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어쩌면 좋은 집안에 입양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배신으로 바뀌었을 때도 그랬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아랍인인 모모가 유태인 집안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사실에 실망한 아버지에게 "그렇다고 해도 당신 아들"이라며 내쫒은 로자 아줌마를 보며 모모는 생각한다.

'나는 조금 울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도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이제 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나를 기쁘게 했다.'

결국 그를 진정으로 안타까워하고 아껴주던 사람은 로자 아줌마였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치매로 행복했던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는 로자 아줌마 곁에서 떠나지 않은 것도 모모이다. 심지어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안락사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에서도 모모의 사랑이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가 더이상 고통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이란

각자 자신 앞에 놓여진 개별적인 인생이 있다. 로자 아줌마를 태어나게 한 것도 생이고,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생이듯 인생은 항상 우리에게 행복한 일만 전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왕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삶의 목표 하나쯤은 있는 것이 좋다. 그저 대학, 취업, 결혼처럼 추구할 수록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느껴지는 것 말고.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자 목표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소하다고 느껴질 친구와의 우정, 가족간의 사랑, 어머니의 모성애처럼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 각박해진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려 사소한 사랑에도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2014년은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차갑게 시렸던 해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생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2015년은 되돌아 보는 생이 아니라 앞을 향해 나아갈 생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앞으로 내 앞에 놓이게 될 생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차길 상상해본다. 그리고 나중에 되돌아 봤을 때 후회가 없도록 순간 순간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2003)


태그:#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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