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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판결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해산 결정 난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판결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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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포했다. 무려 8대1의 결정으로 말이다. 이로써 이 나라는 죽었다. 헌재의 이 판결은 가난한 사람,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은 앞으로 꿈도 꾸지 말라는 위협으로 들린다. 기득권 세력의 부정과 불의, 부패와 독재에 감히 도전하지 말고 복종하며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운운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제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부정선거를 저지른 정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이나 고려도 없이 당내 부정경선 등을 근거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판결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오늘로서 확실히 깨달았다. 법은 일방의 편이며, 세력의 역학에 의해 구성되고 해석된다는 사실을. 법은 그 자체로는 아무 역할도 못한다. 법치주의는 헛말일 뿐이다. 법은 그것을 전유하는 지배자들의 몫일 뿐이다. 법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일견 좋은 법도 나쁜 자들이 나쁘게 활용하면 나쁜 법일 뿐이다.

오늘 헌재는 스스로 자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북한과의 대치" 운운하며 북한과의 차별성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상 그들의 판결은 북한식 유일체제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북한과의 차별성은 사회를 사상, 신념에 대한 일체의 국가적 간섭 없이 아무나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떠들 수 있게 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를 보수 일색으로 재편하는 길을 택했다. 아무나 떠들지 못하게 만든 것. 이게 오늘 판결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무엇이겠는가? 단 하나, 오직 혁명뿐이다. 그런 점에서 헌재는 아주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진보세력 역시 성찰해야 할 점이 분명 있다. 그동안 한국 진보세력은 민중을 대변한다고 하였으나 민중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다. 만일 민중이 그것을 알아주었다면 오늘의 상황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적 '외벽' 사라진 새정치연합, 더 큰 시련 맞을 것

물론 억울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민중을 억압하여 대기업 재벌을 살찌웠다면 통합진보당은 분명 이 땅의 약자를 대변하려 했고 이를 당의 강령에 명확히 제시했다.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이 땅의 민중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이석기 사건이 나고서야 통합진보당 강령을 읽어보았다. 왜 이런 좋은 강령이 그동안 일반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 탓에 오히려 민중은 '종북' 같은 선정적 선전에 휩쓸리는 '대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진보세력이 새누리당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배한 것을 의미한다. 대중은 새누리당의 비합리성과 기득권주의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통합진보당에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동시에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그간의 행보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태도는 한마디로 '몸 사리기'였다. 그 점에서 1950년대 조봉암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제1야당 민주당의 태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이 한때 연대의 대상이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정당해산의 부당성을 설파하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겨우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정당 해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몸을 사리다 이제 더 큰 시련을 맞은 꼴이 되었다. 이제 새누리당은 여차하면 새정치연합마저도 '종북숙주당'으로 몰며 틈틈이 위협을 가할 것이며 새정치연합의 진보적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통합진보당식의 정책발상'이라며 공격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자신의 외벽(外壁)을 상실함으로써 더욱 그 입지가 좁아졌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이 소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중이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도 새정치연합의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늘 헌재는 이 사회 기득권의 수호자, 대변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따라서 이제 지배-피지배의 전선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보수-진보의 이념 대결 전선이 아니라 바야흐로 지배-피지배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아무나 자유롭게 떠들 수 있고 새 세상을 염원할 수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국 이 땅의 일하는 사람, 땀 흘리는 사람, 억압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그리고 정직한 지식인들에게 달렸다. 지배받는 자들이 그 지배를 거부할 때 다시 역사는 회생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파시즘이 도래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태그:#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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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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