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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통합진보당(아래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사건에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함께 결정했다. 헌재는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주문을 낭독하면서, "엄격한 요건 아래 정당 해산을 명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비롯됐다"며 "이러한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을 부득이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의 근거를 명시했다.

일단 여기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북한보다는 훨씬 풍족하게 먹고 살고,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도록 하자. 헌법재판소는 아시다시피 6월 항쟁의 산물로 태어난 소중한 곳으로, 우리나라의 최상위 법인 헌법에 의거해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다.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법정에서 일갈했던 장면은, 헌법의 조항을 그대로 읊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대사가 <변호인>을 상징하는 명대사로 꼽히는 이유는, 헌법이라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를 담은 조항을 말하는 것 자체로 독재정권의 압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사라져버린 정의에 대한 무력감을 통째로 씻어버리게 하는, 관객들에게 폭발력있게 다가온 진언(盡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우리를 한국인으로서 존재케 하는 근원적 법임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또한 나는 '진실'을 존중하려 한다. 진실이라는 가치도 헌법과 유리되어 생각할 수 없을 뿐더러, 신뢰의 근거는 진실에서 나오고, 인간의 본원적인 궁금증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다 할 것을 권유한다면, 난 국민도 국가에게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뭉스러운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관계에선 서로에게 마음을 주려하지 않을 것이다. 차치하고,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을 낭독하며 말한 근거들을 좀 살펴보고 싶다.

 #1.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북한을 추종하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2.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에 따라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도 게양하지 않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석기 등 내란 관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1. 진보적 민주주의는 '대중 계층이 폭넓게 경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이론'이며, 자본주의 체제 내의 불평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의 민주주의이다. 이것을 광의의 개념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대남혁명전략을 동일시 해버리는게 헌재가 내린 근거라고 보기엔 너무 미약하다.

진보의 레퍼런스로 언급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언급 자체를 빨갱이로 여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마르크스와 궤를 같이한다는 근원은 없으며, 남한을 사회주의식으로 개량하여 적화통일을 이루어낸다는 '대남혁명전략'과 자본주의의 성격을 인정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치고 사회적 연대를 더욱 강화하자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하는가? 개가 먹는 것이 개밥이니, 그 개밥을 먹은 사람은 개가 되는 건가?

폭력을 썼다는 부분에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를 예로 드는데, 폭력 수단을 통해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것의 예가 당 내부에서 일어난 그 사태라는 것이고, 그것이 주요한 근거라는 건 논리의 비약 아닌가?

물론 그것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통진당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 자체로 통진당의 '폭력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가? 또한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폭력이라는 단어는 일절 등장하지 않았으며, 여야 신사적으로 소통하며 서로의 고견을 여쭙고 정치를 발전시켰는가? 난 과반수의 폭력을 막는 국회 선진화법에 문제 있다면서 개악하려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봤다. 또한 어떤 당은 공천과정에서 전략공천으로 온갖 파열을 일으키는 걸 봐왔다. 그런 모습들에 비견하여 헌재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2. 민중민주주의 부분은 통합진보당 내의 'NL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통성을 부정하는 헌재의 근거는 "애국가를 안 불렀고 태극기를 게양 안한다"는 것인데, 난 이 부분에선 반대의 의견을 낼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한다는 결론까지 거슬러가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학교 다닐 때 배운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는 부분도 매우 '종북적인 느낌'을 주는 시 아닌가.

난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면 아나키스트처럼 체제를 부정하며 폭탄 투척 정도는 하는 등 민주주의에 대해 물리적인 수단으로 위협할 때 비로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폭탄 투척한 고등학생이 어디에서 활동했는지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NL파의 수장을 '이석기'로 상정하고 그 이석기의 '종북성'을 통합진보당 전체로 환원한다. 그리하여 '통합진보당=이석기'가 되었고, 통합진보당의 대다수(피청구인 주도세력)도 이석기이고, 이석기가 내란 음모로 지금 감옥에 가있듯이 너희도 그런 경향을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 정서로 보면 이석기는 매우 의심스러운 인물이고, 나 또한 물증 혹은 증언 등의 수사의 근거가 있다면 더욱 조사하여 그의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 하지만, 난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의 근거에서 매우 큰 위화감을 느낀다. 이석기가 실세라고 하는 것은 경기동부연합까지 거슬러 가야 하는 것인데, 배경까지 말하기엔 지면이 부족하고, 확실한 팩트로만 이야기하자면, 이석기를 필두로 한 'RO 재판'의 2심에서는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지 않는가?

헌재 결정문에서 RO와 통진당을 직접 연결 지을 만한 논리는 어디 있는가? 또한 통합진보당의 대표는 이정희 전 대표였고 그에게 대표의 권한이 있었는데, 아직 최종심까지 판결도 안 난 재판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이석기를 주도세력으로 인정해 헌재에서 당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근거로 썼다는 부분에서 많은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만약 그 재판이 이석기를 총체적 수장으로 인정해도, 그 전에 헌재가 결정을 내리는 게, 순서가 뒤바뀐 게 아닌가?

요 몇 년 동안, 통진당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기보다 심려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안보'에 대한 이슈는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또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선 그들의 발언은 대다수의 통념과는 맞지 않았기에 낮은 지지율을 얻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대외적인 발언으로 그들이 '종북' 정당 소리를 듣는 것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 노동자, 농민, 서민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5석의 의석을 가졌고, 1~3% 남짓한 지지율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끔 한 배경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메시지는 그 지지자들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상호작용이다.

하지만, 그것이 '통념'에 어긋난다고 해서 상대의 존재를 절멸하려고 하면 사회적 담론 자체가 형성되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어떤 의견을 강하게 표출한다고 해도, 그 의견을 들음으로써 상대 집단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한다, 이것을 원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의견은 들을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목소리를 표방하는 주체가 모여서 어떤 의견은 발전하고 부적절한 의견은 도태되고, 상호소통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대신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을 부강하게 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보수, 진보가 건강하게 양립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결정에서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통진당의 해체 그 자체보다, 무엇보다도 진실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할 헌재가 법리의 근거를 '짜맞춘 듯한' 논리로 군데군데 기워놓고, 그것을 8명이라는 압도적인 수로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투표로써 선택된 정당 또한 그 운명도 국민 투표로 끝내야 바람직 할 것인데, '종북'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당을 한순간에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통진당의 굴레는 '진보'에게 묶이게 되어 진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진보라는 가치가 사라지게 되고 극우가 세를 얻는 파시즘의 전조 현상은 아닐까.


태그:#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해산, #파시즘,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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