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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 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정당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 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정당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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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발표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절차를 밟게 되었다. 헌재는 이날 오전에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모두 박탈했다. 2011년 12월에 창당했던 통합진보당은 이로써 3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강령을 가진 정당의 창당도 금지된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인 2013년 11월 5일, 정부가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법무부가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한 지 약 1년 1개월 만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정당 해산, 의아하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은 여러가지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먼저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9명 중 8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합진보당의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다. 해산에 찬성한 인용 판결은 "당 강령은 지극히 추상적이므로 내용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문장에 이어서 "그 강령을 주장한 주체들에 입각해 그 취지를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석하자면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통합진보당이 정당 강령으로 정했기에 의도가 의심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아서 납득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논리적인 판단보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관련 발언에 무게를 둔 '직관'에 의한 결론이라고 해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문제가 된 이석기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고, 2심에서는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결이 나왔다. 선고문에서 그의 내란선동죄만 인정되었고, RO는 실체가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정당 해산으로, 대법원 선고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석기는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아직 법원에서 인정되지 못한 내란음모 혐의가 해산 심판의 근거가 된 셈이기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에서 무력을 사용한 혁명을 실제로 시도한 정황도 없기에 '긴급상황'이라는 표현은 어색해 보인다. 이석기가 정치인으로서 문제될 언행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점이 정당 해산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직접적인 근거라고 하기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시기적으로도 현 시점에서 나온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이석기 사건의 대법원 선고를 기다린 뒤에 같은 맥락으로 헌재의 결정이 나왔더라면, 시민사회가 수긍할 여지가 조금은 더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4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4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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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종북몰이, 추락한 지지율과 연관 있나

'콘크리트 산성'으로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하락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청와대를 둘러싼 잡음이 커진 와중에, 여파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40%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박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37%에 그친 반면, '잘못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52%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도 취임 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17일 전후로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도 "청와대가 쇄신해야" 한다며 입을 모아서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언론과 야당의 집중포화가 이어졌고, 뿐만 아니라 지지층마저 이탈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이쯤 되면 정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럽게 다시 '종북' 카드가 등장했다. 신은미씨가 북한을 다녀온 후 여행경험담을 토크콘서트로 공유하는 와중에, 지난 10일 A군이 인화물질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불씨를 당겼다. 어버이연합 등의 단체가 반발했고,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보수언론의 비판도 커져가던 중 벌어진 일이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편향된 경험을 북한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종북' 논란에 가세하면서, 극우 커뮤니티에 예고된 후 결국 실제로 나타난 테러행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선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지지율도 쉽게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결국 불붙은 종북몰이의 마지막 카드로 등장한 것이 '정당 해산'으로 보인다. 북한과 관련하여 문제발언을 한 정치인과 그의 소속정당을, '정윤회 문건 유출' 정국 돌파를 위한 효과적이고도 극단적인 처방으로 삼은 것이다.

임기말 MB와 닮은 2년차 박근혜 정권

2012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당시 일본은 한 달 앞선 7월에 방위백서를 발표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했기에, 한일 양국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직접 독도에 깜짝방문을 시도했다. 이를 국내 언론에는 보도자제 요청을 한 상태였기에 일본언론 <아사히 신문>이 먼저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사면초가 MB, 뜬금없이 독도 간 이유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배경으로는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저축은행 비리혐의 구속 등 측근비리 문제, 인천공항매각과 4대강 사업 등 정책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으로 가속화된 레임덕이 거론되었다.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서,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감수한 행보라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일 감정 자극을 택한 것처럼, 박 대통령은 연이은 지지율 하락에 반전을 주고자 '종북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서글프게도 MB가 임기 마지막 해에 걸었던 길을, 박 대통령은 때통령 임기 2년차에 따라걷고 있다.

헌재 소장은 "오늘 판결이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종식시키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정작 정당 해산이 가져온 것은 자기검열과 북한 혐오세력의 정당화 뿐이다. 이념논쟁은 끝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무기가 되어 계속될 기세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다른 잣대를 허용하지 않는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북한 관련 담론은 발전없이 제자리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보수진영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뚜렷한 철학을 고수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공포에 기대며 정치적 반대세력을 상대로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 '통일은 대박'을 말하던 박 대통령이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거듭된 종북몰이의 결과가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으로 나타난 2014년의 겨울, 과거 군사독재 시절 권력에 굴복했던 과거를 대법원장이 사과했던 2008년의 일이 무색해졌다. 불통과 권위주의가 만난 자리에서 싹튼종북 광풍이 사회를 휩쓸고 있으며, 이대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태그:#진보통합당, #정당 해산,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종북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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