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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우리 역사에서 12·19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아마 두 차례의 '총성 없는 쿠데타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첫 번째 12·19쿠데타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사이버 여론공작을 벌였다.

이 쿠데타 음모는 대선 직전 야당에 의해 전모가 탄로 날 뻔했으나 경찰의 비호로 유야무야되었고, 결국 성공하였다. 이후 사태의 진상이 하나씩 밝혀졌지만, 이 음모에 직접 가담한 원세훈·김용판 등 핵심 인사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단적으로 이범균 판사는 "선거개입과 관련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원세훈을 구제하였다. 이로써 주권자인 국민도 모르는 사이 민주주의를 유린한 쿠데타가 법적 승인을 받으며 완벽히 성공하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법에 의해, 정권의 힘에 의해 단죄 받지 않았다.

두 번째 12·19쿠데타는 2014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골간으로 한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결정해버렸다. 그 결정 사유의 허위성과 기만성은 이미 홀로 기각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설명에 명철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은 논리나 사실관계를 들어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사유들이다.

이미 이명박 정권시기부터 한국사회는 상식과 이성, 증거와 진실, 논리와 합리가 정치 및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 사회였다. 법치는 권력의 입맛을 기준으로 삼았다. 명예와 재물, 보신(保身)에 눈이 먼 법관들이 스스로 법을 배반하고 법을 '자의성의 영역'으로 추락시켰으니 법의 권위는 이제 이 땅에서 소멸되었다. 그야말로 법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지금 우리는 1961년의 5·16쿠데타와 1972년의 유신쿠데타를 압축적으로 겪고 있다. '첫 번째12·19'가 '제2의 5·16'이었다면, '두 번째 12·19'는 '제2의 유신쿠데타'다. 박정희는 5·16 이후 유신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을 소요하였으나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불과 1년이라는 잠깐 사이, 부지불식간에 이 모든 쿠데타를 일으키며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였다. 4월 혁명, 한일회담반대투쟁, 부마항쟁,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의 장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째서 21세기 대명천지에 총 한 방 맞지 않은 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는가?

헌재의 이번 결정은, 헌재와 공안과 우파와 기득권세력들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헌법재판소 8인의 재판관은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자주파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전제한 뒤 자주파는 우리나라를 "구조적 불평등사회"로 인식하여 "민중이 주권을 가지는 민중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였고, 이것이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유사"하므로 이들의 노선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헌재가 문제 삼은 것은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 노릇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땀 흘리는 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로 바꾸려는 의지를 지녔다는 점 그 자체였다. 그러나 김이수 재판관의 지적처럼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내포하는 강령을 내세우고 있고, 북한도 적어도 대외적·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피청구인이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유사성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일 뿐이다.

이처럼 지금 저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은 북이 아닌, 우파 정권의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불평등구조 속에서 불만을 품고 있는 이 땅의 민중, 즉 땀 흘리며 직장과 집값 걱정에 앞날의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저 결정 사유만 놓고 보면, 저들은 지금 민중의 경제적, 사회적 불만이 분출되는 것을 틀어막기 위해, 이 땅에서 기득권을 지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런 판결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저들은 불만 속에 있는 민중이 혹시나 현재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열망에 젖을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18대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현상'과 '여야의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분출되었던 민중의 변화 열망은 저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단지 저들은 자신들의 이런 속내를 감추기 위해 '북한'이라는 타자를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사회적 열망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이 땅 우파 기득권 네트워크의 의사표시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체화(體化)하지 못한 자들이 민주화의 혜택을 받으며 주권자인양 행세하는 볼성사나운 꼴 그 자체다.

새누리당은 전부터 '영구집권'의 의사를 공공연히 표방하였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던 홍문종은 7월 8일 당 사무처 월례조회에서 2014년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을 강조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도 우리가 최소 10년은 더 집권해야 대한민국이 반석에 올라간다", "민주당은 믿을 수 없으며 이들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다"라고 발언했다.

또 이로부터 석 달 뒤인 10월 8일에도 그는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우리가 20년은 더 해야 된다",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보니까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느냐. NLL을 포기하고도 안 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발언했다. 이와 더불어 '권영세 녹취록'에 등장하는 '비상계획'이 영구집권 계획이라는 의혹이 야당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지금 새누리당은 얼마든지 선거 과정을 조작할 수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은 10·26재보궐선거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통해 사실상의 부정선거를 감행하였고, 18대 대선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듯 명실상부한 관권부정선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선거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그들은 다방면의 정치적 이념적 공세를 통해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 현재 지니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호도하고, 그것의 분출을 원천 봉쇄하여 대대손손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우리의 역사가 새누리당이 원하는 대로 나아간다면, 지금 우리가 TV에서 비웃고 있는 북한 민중의 모습이 훗날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동상 앞에 서서 절하며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만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말하고 쓸 수 없는 끔찍한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미 지금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비선 실세 논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들먹이며 안으로는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한 진리는 있다. 국가는 폭력을 무기로 삼더라도 구성원의 동의가 없으면 절대 존립할 수 없다.

저 잘난 청와대와 새누리당, 재판관, 검사 나리들도 우리가 세금을 내지 않고 법과 질서 지키기를 거부한다면 단 하루도 존립할 수 없다. 구성원을 물로 보는 국가는 스스로 국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서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반국가행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국가 기밀문서인 남북정상회담록을 무단으로 유출해 전세계 앞에 공개해버리고, 무고한 국가 구성원을 수장(水葬)시켜놓고도 아무런 죄책감과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행위이다. 이야말로 국가 구성원의 안보와 안전을 극히 위협한 중대한 반국가행위다.

또한 물욕과 명예욕과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법치주의를 포기한 채 지배 권력의 반국가행위를 암묵해주는 사법부 자신들이다. 과연 누가 내란범인가? 이제 한국사회의 법은 그 자체 권위가 소멸되었으니 누가 누구를 내란죄로 얽어매는 것도 참으로 우습게 됐다.

물론 사태가 이에 이른 데는 우리 자신의 책임도 분명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방관하고 있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정치를 외면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망각했다. 물론 먹고 살기 바쁜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우리 자신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낭비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필요하다.

어린 아이에게서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빨려 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무한경쟁 체제를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이 체제에서 가장 큰 수혜자인지 생각해보자. 그 의문의 해결을 위해 정치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권 시기 종편을 출현케 한 미디어법의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다. 결사 저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편의 출현은 한국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었음에도 야당 의원 중 단 한 사람도 이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아울러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에서 내리 패했다는 점에서도 책임이 있다. 특히 지난 7.30재보궐선거는 정국주도권의 향배가 달린 중대한 선거로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였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자기의 전통적 지지기반 조차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세간의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지금 이 시각도 제1야당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정국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이 족벌 언론들은 백색테러를 유발할 정도의 광기로 이 사회를 휘몰아갔다.

무서워하지 말자. 공포에 떨지 말자. 자기 할 말들을 하자. 정당해산이 왜 납득할 수 없는 것인지, 지금 우리가 어떤 생존 조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저마다 떠들자. 지금 떠들지 않으면 조만간 암흑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저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 무슨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넋을 놓고 있다 정작 우리 자신의 인권이 모두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세상에 말 한마디, 글 한 줄 마음 놓고 생각대로 표명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절실한 문제이며, '우리 전부의 나의 문제'이다. 그런 절박함 없이 역사는 회생할 수 없다. 역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이 땅 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일이다.


태그:#민주주의, #민중, #평등, #인권,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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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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