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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치분교를 찾아가다가 검은 멍이 든 동백꽃을 만났다.
 옛 사치분교를 찾아가다가 검은 멍이 든 동백꽃을 만났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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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께 안좌도 북지선착장에서 사치도 가는 도선을 탔다. 사치도는 모래가 많고 섬의 모양이 꿩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치도 선착장에 내린 여객도 나 혼자였고, 섬을 걷는 여행자도 나 혼자였다. 옛 사치분교를 물어 찾아가야 하는데 차고 흐린 날씨 탓에 주민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운 좋게 전복 양식장 뒷정리를 하는 50대 후반의 사내를 만났다. 그는 대뜸 "뭣 하러 왔소?" 하고 물었다. 시비 거는 듯 짧고 굵게 툭 던지는 말, 영락없는 전라도 서남권 말투였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옛 사치분교를 찾아가는 길이라 했더니 "쭈욱 가서 왼쪽"이란다.

일러준 대로 '쭈욱' 가다가 고갯길 고랑에 핀 검은 멍이 든 동백꽃을 보았다. 동백꽃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늘 누군가를 검은 멍이 들 정도로 사랑했다. 사랑하는 동안만큼은 행복한 맹목(盲目)의 물고기가 되었다. 

동백꽃의 꽃말 중엔 '허세 부리지 않다'라는 뜻도 있다. 피어서 질 때까지 동백꽃은 검은 피멍이 들지언정 꽃잎 한 장 먼저 내려놓는 법이 없다. 통으로 피었다가 통으로 진다. 맹목의 물고기가 되어 저지른 사랑의 끝은, 홀연히 떠나는 것이다. 미련 없이 결연하게 이별할 줄 아는 법을 동백꽃은 가르쳐 준다.

동백꽃에 취해 잠시 길을 잃었다. 사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습관처럼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낮은 섬담을 따라 바닷가를 향해 20여 미터 쯤 내려갔다.

뻘밭에서 농구 연습한 아이들

옛 사치분교 찾아가는 고갯길에 마을정자가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다.
 옛 사치분교 찾아가는 고갯길에 마을정자가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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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을 노인회관으로 바뀐 옛 사치분교.
 이제는 마을 노인회관으로 바뀐 옛 사치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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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몇 그루 사이에 숨은 '책 읽는 소녀상'을 발견해내지 못했다면 이곳이 옛 사치분교였음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운동장은 경운기며 트럭의 주차장이 되었고, 섬마을 어린이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노인당이 되었다. 

사치도가 유명해진 것은 사치분교 영향이 컸다. 사치분교로 부임한 권갑윤·김선희 부부 교사는 섬마을 아이들 기를 살려주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농구단을 만들었다. 1970년대 당시 사치분교의 전교생은 약 60여 명 정도였다.

이렇게 창단한 사치분교 농구단은 1970년 전라남도 소년체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짚으로 엮은 농구공으로 뻘밭에서 농구 연습을 한 섬마을 어린이들이 도회지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치분교 농구단은 그 여세를 몰아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농구 남자부 준우승을 차지했다. 파란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육영수 여사는 사치분교 어린이들과 지도교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리고 선착장도 없던 사치도엔 선착장을 만들어주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육영수 여사는 평소 낙도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컸다. 1965년엔 서남해 외딴 섬 흑산도 어린이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고 싶어도 거센 풍랑 때문에 자유롭게 못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해군 함정을 보내 낙도 어린이들의 서울 방문을 도왔다. 물론 이때도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다과를 베풀고 선물까지 나눠줬다.

1968년엔 전남 완도군 청산면 장도 어린이들이 "통학선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고 편지를 보내자 사재 100만 원을 내어 통학선을 만드는 데 보탰다. 섬마을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은 고마운 마음에 배 이름을 '청와호'로 지었다.

신화가 된 말... '가난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

사치분교 어린이들은 학교 앞 뻘밭에서 농구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사치분교 어린이들은 학교 앞 뻘밭에서 농구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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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보리밭은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섬마을 보리밭은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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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치분교 농구단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실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73년 4월 18일에 개봉한 <섬개구리 만세>가 바로 그 영화다. 배우 신일룡, 김영애와 함께 사치분교 농구 선수들이 실제로 출연했던 정진우 감독의 이 영화는 제10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조연상, 신인연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섬마을 어린이들에게 농구를 통해 꿈을 가르쳤던 부부 교사가 육지로 떠난 지 오래다. 섬개구리라 불렸던 그때의 어린이들도 장성한 지 오래다. 40년이 훨씬 지난 옛 이야기를 마치 어제일 마냥 요란스럽게 떠드는 까닭은 갈수록 꿈같은 이야기, 기적 같은 일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전설보다 버거운 신화로 취급받는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사는 집의 평수가 정해지고, 그 평수는 사회적 존엄의 크기로 악용된다. 부모의 자본으로 사회적 존엄을 난자하는 천박한 '갑질남녀'들에게 사치분교 어린이들의 '점프'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사치도엔 고양이가 많다. 한 주민은 고무통을 길냥이의 집으로 개조해주었다.
 사치도엔 고양이가 많다. 한 주민은 고무통을 길냥이의 집으로 개조해주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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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작은섬, #육영수, #농구, #고양이,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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