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편('솔직함'이 무기었던 이종석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이어집니다.

 배우 이종석

SBS <피노키오>에 출연한 배우 이종석 ⓒ 웰메이드이엔티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그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낯선 사람들의 주목을 견디지 못해 달아오르는 귀를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카메라 앞에선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며칠씩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가도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뜨거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서는 사람이다. 지금 그는 모든 것이 뒤엉킨 기이한 나라를 탐험했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와 같다. 배우이자 대중 스타인 이종석으로선 이렇게 양 극단을 오가며 스스로를 종잡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더없는 매력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동화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앨리스가 결국 꿈에서 깨어 집으로 돌아갔듯, 이종석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 양 극단 사이에서 발을 붙이고 균형을 잡는 일이다. 다행인 건, 이 말에 이종석 또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이다. "아직 덜 큰 것 같다"고 웃음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이종석은 천천히 어른이 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바라는 일밖엔 없다. 지금의 이 고민들이 이종석의 성장에 좋은 거름이 되어 주기를.

"연기로 감정소모하다 보니 '늙는다'는 느낌 들기도"

- 지금까지의 말을 들어보니 그 엄청나다는 애교의 이유도 짐작이 간다. 누군가에게 오해 받기 싫어서, 사랑받고 싶어서였겠구나 싶다.
"'세상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애교를 익혔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애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무엇 때문에 터득한 건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팬들에게도 그렇다. 진짜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고맙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데, 그런 나를 좋아해주니 얼마나 고맙나. 그런데 (수가) 많아지면서 한 명 한 명 눈 못 맞춰 추고 기억 못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분명 봤는데도 지나치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 그러면 다음번에 그 팬들에게 '그때 서운했다'는 말을 듣고. 그럼 딜레마가 온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선을 받는 배우라는 직업을 택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지금도 또 귀가 빨개졌잖나. (웃음)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는 신경 쓰인다. 그런데 연기를 할 땐 또 괜찮다. 연기가 지금 유일하게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고. 특히 나도 기억도 안 나는데, (연기하며) 엄청 몰입할 때가 있다. <학교 2013>이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때만 해도 항상 연기의 기술적인 부분만 생각했는데, <닥터 이방인> 때부터는 온전히 그 캐릭터의 감정으로써 인물을 다루게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모니터도 별 생각 없이 편하게 본다. 예전엔 악착같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모니터를 했다면 이젠 '앗, 저건 좀 이상했네' 하는 정도다."

 배우 이종석

ⓒ 웰메이드이엔티


 배우 이종석

"작품에서 옷을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입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에도 며칠씩 집에 못 가는 '마와리' 도는 기자라 조금만 예쁜 걸 입어도 감독님께서 '너무 예쁜 거 아니냐'고 하셨다. 워낙 현실성 있는 모습을 원하셔서…. 재벌 역할을 하면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을 텐데. (웃음) 아니면 과거사가 복잡하지 않은 캐릭터! 연기하기엔 더 어려울 수도 있고 더 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더 편할 수 있겠다 싶다. 옷도 마음껏 입고." ⓒ 웰메이드이엔티


- 잠깐 <피노키오> 얘길 다시 꺼내자면, '어른 남자' 기하명과 실제 이종석은 확실히 거리가 좀 있는 것 같다.
"맞다. (웃음) 하명이는 나랑 되게 다른 인물이었다. 지극히 동화 같은 인물이잖나.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이상적인 복수를 했지. 어떤 리뷰를 보니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도 하더라. 그런데 실제 나였다면 박로사 회장(김해숙 분)에게 어떤 질문을 했을까 싶다. 아직도 (스스로) 이기적이고 치졸한 면이 있는 인간이라 생각하는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나와 다르다는 점이 내가 연기했던 인물들을 사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참, 그래서 촬영하며 어려웠던 장면은 있었나.
"형(기재명, 윤균상 분)과의 장면이었다. '형이 살인자라는 걸 보도하려 해', 이 대사가 안 나오더라. 춥기도 했고, 이 대사를 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방송을 보면 되게 짧게 느껴지는데 실제론 그 순간이 되게 길게 느껴졌다. '울음을 삼킨다'는 걸 처음 경험한 것 같다. (웅얼거리는 모습을 재현해 보이며) 바로 울어 버리면 다음 대사를 이렇게 막 웅얼웅얼 울면서 할 것 같아서 눈물이 컥컥 올라오는데도 꾹 삼켰다. 이래서 하면 할수록 연기가 재밌다."

- 실제 이종석이었다면 박로사 회장에게 다른 질문을 했을 거라고 얘기했다. 비슷한 질문인데, 실제 이종석이라면 가까운 사람의 부정을 고발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으며) 지금의 나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거든."

- 방금 말한 '어른'이란 거, 정의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하나.
"글쎄,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한 인물을 3개월간 연기하고 작품을 끝내면, 그 경험치가 이종석으로서 그냥 살아가는 3개월의 경험치보다 확실히 많이 쌓인다. 그렇게 (연기로) 감정을 되게 많이 소모하게 되면서 '늙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늙는다'는 표현을 지금 내가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웃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노키오>가 불과 1년 차이인데, 얼굴이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선이 굵어진 느낌도 있고. 감독님은 아시더라. '얼굴이 변했다, 좀 남자 느낌이 난다'고."

"데뷔 전, 친구 따라 PC방 전전하던 시간이 아깝다"

 배우 이종석

"보통 드라마에는 남자 주인공이 우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닥터 이방인>이나 이번 <피노키오>나…내가 눈물을 안 흘린 회차가 없다. (웃음)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런 계산도 한다. '여자 주인공으로부터 돌아서기 전에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또 다시 돌아서기 전에 닦고'." ⓒ 웰메이드이엔티


- 어린 시절 유독 TV를 좋아했고, 영화 <늑대의 유혹>을 통해 연기의 꿈을 키웠다고 들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나.
"어디 PC방에 있지 않을까. (웃음) 예전에 소속사에 막 들어갔을 때…그때 같이 들어온 친구와 잠깐 같이 살았는데, 하도 일이 없어서 그 친구 따라 PC방 가는 게 일이었다. 사실 나는 휴대폰 업그레이드도 못하고, 컴퓨터도 잘 안 켠다. 문명과 친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때도 딱히 할 게 없는데도 그냥 게임을 했다. '재미는 없지만 이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

당시엔 발전적인 무언가를 할 생각을 못 했다. 그저 '데뷔를 언제 하지'만 고민했지, '데뷔하기 위해 나를 더 발전시키자'는 생각을 못했던 거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아깝다. 연기 선생님이라도 한 번 더 찾아갈 걸! (웃음) 그때 연기를 더 연습했다면 지금 더 나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사실 <피노키오> 들어가기 전에도 연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참이었다. 그래서 <시크릿 가든> 이후 처음으로 다시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 신인들과 같이 배웠다."

- 각오를 새롭게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에서 더욱 성장한 이종석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고 기대해도 좋을까.
"뭐든지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간단한 신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감정신은 뭐…쭉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가 집중해서 하면 된다.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폭발시키는 건 비교적 쉬운데 일상적인 연기가 어렵더라. 그냥 밥 먹으면서 대화하고, 양치하고 그러는 거. 그래도…지금보다는 나아 져야지. (웃음)"

- 연기적으로도 발전하길 바라지만, 집 밖으로도 좀 나와 봤으면 좋겠다. (웃음) 연기 외에 스스로를 충전할 방법도 좀 찾아보고.
"나도 나가보려고는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웃음) 예전에 <닥터 이방인>이 끝났을 땐 방전된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 소진한 것 같은 느낌? 그 뒤 공백기를 갖고 쉬었으면 오래 쉬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작품을 찍을 땐 '30분만 더 자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데, 또 쉬다 보면 그런 기억은 다 날아가 버린다. 좋았던 것들만 기억나는 거다."

"마냥 20대 초반일 줄 알았는데…어느새 스물일곱"

 배우 이종석

"인터뷰에서 '20대 배우들 중 어떤 배우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나는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20대 남자 배우들 모두 연기하는 모습이나 매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라이벌'이나 '경쟁'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웰메이드이엔티


- 아…. 아직 한창 즐겨야 할 청춘이다. 20대라고!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본다면 '어린 게 뭐 저런 소리를 해'라고 하겠지만, 문득 일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까 스물일곱이 됐더라. 나는 마냥 20대 초반일 줄 알았다. 지금도 내가 아기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하셨고. (웃음) 그런 생각을 해 보면, 나는 아직 덜 큰 것 같다."

- 이번 인터뷰로 <피노키오>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마지막이 됐다. 이제 정말 뭐할 건가.
"그러잖아도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끝나고 뭐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진짜 뭐하지?' 싶다. 할 게 없다. 그러다 보니 또 집에 있는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한 거다. (쉬는 걸) 못견뎌하는 거지. 그래도 행복하다! (웃음) 조금 지치긴 했지만, 연기하는 건 여전히 재밌고 <피노키오>를 통해 힐링도 받았다.

뭐든 몇 년 정도 하면 회의감이 들고, 슬럼프도 오는 것 같다. <피노키오> 전까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연기를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재밌다'는 생각으로 계속해 왔는데 흥미가 떨어졌다고 할까. 그런데 <피노키오>를 촬영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게 이 느낌이지' 싶었다. 특히 여러 가지 의미로 가장 좋았던 건 <너의 목소리가 들려> 팀과 함께 했다는 거다. 촬영하는 내내 '그래, 그랬지' '이거야'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석 피노키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학교2013 기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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