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복조리 만들기. 화순 송단마을 사람들이 지난 28일 마을회관에서 조리를 만들고 있다.
 복조리 만들기. 화순 송단마을 사람들이 지난 28일 마을회관에서 조리를 만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이다. 나라 밖 사정도 어수선하다. 우리네 일상이 버거운 건 당연한 일. 하루하루 생활도 고달프다. 좋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걸러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으로 설날을 맞아 복조리 한 쌍을 걸어두고 싶었다.

복조리를 만드는 마을로 간다. 지난 28일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있는 송단 1구 마을이다. 백아산 차일봉 기슭에 들어 앉은 작은 마을이다. 22가구 35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60대에서 80대 사이 어르신들이다. 마을 회관에서 이 어르신들 몇몇이 조리를 만들고 있다.

"노느니 허요. 예전엔 농한기 벌이로 최고였는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지금은 노인들뿐이어서 못 만들고, 만들어도 안 팔리고 그래라."

복 짓는 어르신들

'복조리마을'로 알려진 송단마을 표지석. 전남 화순의 백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복조리마을'로 알려진 송단마을 표지석. 전남 화순의 백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송단마을 회관. 마을주민들이 모여 복조리를 만드는 곳이다.
 송단마을 회관. 마을주민들이 모여 복조리를 만드는 곳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정덕균(60) 아주머니의 말이다. 정씨 아주머니는 아들 4형제를 둔 이 마을 최기현(66) 이장의 부인이다.

실제 어르신들은 곧 설날인데, 조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복을 짓고 다른 사람들한테 복을 나눠준다는 생각에서다. 또 미리 만들어두면 주문이 들어왔을 때 바로 납품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다. 이번 설에는 주문이 몇 저리(한 저리에 50개)나 들어올 지 아직 알 수 없다.

"옛날에 우리 마을의 벼와 보리 수매 수익이 3500만 원에서 4000만 원 정도 했어요. 그때 조리 수익이 7000만 원 정도 했죠. 쌀과 보리보다 조리 수익이 두 배 정도 됐어요."

송단마을 최기현 이장. 최 이장이 복조리 한 쌍을 들어보이고 있다.
 송단마을 최기현 이장. 최 이장이 복조리 한 쌍을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최기현 이장의 말이다. 최 이장이 말하는 옛날은 80년대 초반을 가리킨다. 논이 많지 않은 산골인 탓이 크지만, 그 만큼 조리 수익이 컸다는 얘기다.

"그 때만 해도 돈을 갖다 깔았어. 선금을 먼저 줌서 만들어달라고 했단 말이여. 그 돈으로 애기들도 갈쳤제."

부들댁 신남임(75) 할머니의 말이다. 신씨 할머니는 조리를 만들어서 2남 4녀를 다 가르쳤다고 했다. 그때는 어른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조리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고. 하여,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조리를 만들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땐 조릿대만 손대믄 왜 잠이 왔능가 몰라. 하여튼 일 할라믄 잠이 왔어. 그래서 졸면서 짜고, 자면서 짜고 그랬제."

산죽을 네 가닥으로 쪼갠 댓살과 칼. 산죽을 쪼개고 말리고 물에 불렸다가 물기를 뺀 것이다.
 산죽을 네 가닥으로 쪼갠 댓살과 칼. 산죽을 쪼개고 말리고 물에 불렸다가 물기를 뺀 것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서동댁 구순자(71) 할머니의 얘기다. 구씨 할머니는 아들만 6형제를 뒀다. 그때는 아들들이 큰 일꾼이었다고 했다. 송단마을 사람들이 언제부터 복조리를 만들었는지 정확히 전해지는 건 없다. 다만 어르신들은 위 어르신들한테, 또 위 어르신들은 그 부모한테 배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렇게 복조리가 잘 나갈 때는 집집마다 만들었다. 마을에서 한 해에 10만 개를 만들어 팔 때도 있었다. 기업이나 중간상인들이 선금을 주고 기다렸다. 아이들까지 나서서 밤새 만들어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였다. 조리는 따로 밑천 들이지 않고도 쏠쏠한 소득을 가져다주는 복덩이였다.

씨줄 날줄로 엮은 복조리

송단마을이 '복조리마을'로 명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건 백아산의 산죽(山竹) 덕분이다. 당시 백아산엔 산죽이 무성했다. 조리는 이 산죽으로 만든다. 그 해에 새로 돋아난 것을 재료로 쓴다. 지금은 숲 가꾸기 탓에 많이 줄었다. 마을 뒤 산속으로 10리 정도 들어가서 베어온다.

산죽으로 조리를 만드는 과정은 며칠이 걸린다. 먼저 칼로 길게 네 조각을 내야 한다. 가는 산죽을 하나하나 일일이 쪼개는 작업이다. 그 다음 껍질을 다 제거한다. 이렇게 네 조각을 낸 댓살을 햇볕에 말린다. 볕이 좋으면 사나흘로 충분하다.

복조리 만들기. 무릎을 세운 채 엮은 댓살을 두 발로 누르며 해야 한다.
 복조리 만들기. 무릎을 세운 채 엮은 댓살을 두 발로 누르며 해야 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복조리 만들기. 마을주민이 준비된 댓살을 한 가닥씩 씨줄 날줄로 엮고 있다.
 복조리 만들기. 마을주민이 준비된 댓살을 한 가닥씩 씨줄 날줄로 엮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복조리 만들기. 댓살을 씨줄 날줄로 엮어 조리 모양을 만들고 있다.
 복조리 만들기. 댓살을 씨줄 날줄로 엮어 조리 모양을 만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복조리 만들기. 씨줄 날줄로 엮은 댓살로 조리 모양을 만들고 이를 고정시키고 있다.
 복조리 만들기. 씨줄 날줄로 엮은 댓살로 조리 모양을 만들고 이를 고정시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햇볕에 말린 댓살을 10시간 정도 물에 담가 둔다. 댓살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래야 댓살이 쉽게 휘어져 작업이 수월하다. 지금은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담그지만, 예전엔 계곡물이나 냇물에 담갔다. 댓살이 금세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그 댓살을 작업장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도 고역이었다.

물에 불린 댓살의 물기를 빼야 비로소 엮기 작업을 시작한다. 댓살을 한 줄씩 씨줄 날줄로 꿰어 엮는다. 무릎을 반쯤 세운 채 앉아서 하는 작업이다. 댓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양쪽 발로 눌러주면서 한다. 몸이 비틀어지기 십상이다. 금세 옆구리가 결리고 목이 뻣뻣해진다. 손끝이 까칠해지고 손바닥에 '깡'도 박힌다.

복조리 만들기. 최기현 이장과 구순자 할머니가 마을회관에서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
 복조리 만들기. 최기현 이장과 구순자 할머니가 마을회관에서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복조리 완성품. 씨줄 날줄로 엮은 댓살이 촘촘하다.
 복조리 완성품. 씨줄 날줄로 엮은 댓살이 촘촘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조리의 가격은 2개 한 쌍에 3000원. 인건비도 안 나오는 값이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조리를 만든다. 예전처럼 조리를 돈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렇게라도 복을 짓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복을 보내준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산골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만든 복조리다. 다가오는 설날엔 복조리 하나 사서 집안에 걸어보면 어떨까. 1년 내내 복을 받고 재물이 불어나길 바라던 옛사람들의 그 마음으로.

복조리. 오래 전엔 쌀을 일구는 도구로 쓰였지만 지금은 복을 담아두는 복조리로 애용되고 있다.
 복조리. 오래 전엔 쌀을 일구는 도구로 쓰였지만 지금은 복을 담아두는 복조리로 애용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복조리, #송단마을, #복조리마을, #최기현, #화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