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이번 아시안컵은 한국축구에게 충분히 해피엔딩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31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결승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호주에 1-2로 석패했다.

한국은 대회 기간 내내 '팀'으로 뭉쳤을 때 한국축구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냈다. 특히 대표팀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혀 오던 골키퍼 포지션에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라는 훌륭한 대안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대회였다.

보기 드문 '해외파 골키퍼', 슈틸리케호에서 급부상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김진현은 지난 2008년 J리그에 진출해 꾸준히 활약해온 몇 안 되는 '해외파 골키퍼'다. 비록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지만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2012년 5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김진현은 4골을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여러 차례 선방을 선보이며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성룡(수원삼성), 김승규(울산 현대), 이범영(부산 아이파크)에 밀려 브라질 월드컵 출전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김진현은 '신태용코치'가 지휘했던 작년 9월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21분 상대 공격수에게 패스(?)해 선제골을 헌납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이동국의 멀티골 등으로 3-1로 승리했지만 김진현의 실수는 축구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말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김진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김진현은 10월 파라과이(2-0승), 11월 이란(0-1패)과의 평가전에서 나란히 주전 장갑을 끼며 정성룡과 김승규의 2파전이었던 주전 골키퍼 경쟁에 불을 지폈다.

김진현은 제주도 전지훈련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사로잡으며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평가전에서도 주전골키퍼로 나서 전반 27분 오버헤드킥을 막아내며 선전했다.

김진현이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많은 기회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시안컵 본무대에 돌입하면 경험이 많은 정성룡이나 연령별 대표팀을 고루 거친 김승규가 선발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오만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김진현 카드를 꺼내들었다.

'510분 2실점' 축구팬들을 들뜨게 한 김진현의 선방쇼

김진현은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전반 막판에 터진 조영철(카타르SC)의 골로 1-0으로 앞선 한국은 후반 오만의 파상공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오만의 결정적인 헤딩슛을 막아낸 김진현의 슈퍼 세이브 덕분에 귀중한 승점3점을 얻을 수 있었다.

쿠웨이트전에서 김승규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던 김진현은 호주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논쟁을 종식시켰다. 호주는 이날 14개의 슈팅과 7개의 유효슈팅으로 한국 골문을 끊임없이 공략했지만 끝내 김진현이라는 '최후의 벽'을 뚫어내진 못했다.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 김진현은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 이라크와의 4강에서도 한국의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슈틸리케 감독조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가 이런 골키퍼를 가져본 적이 있느냐'며 취재진에게 반문했을 정도로 김진현의 활약은 놀라웠다.

하지만 김진현의 신들린 무실점 행진은 31일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마감됐다. 김진현은 전반 45분과 연장 전반 15분 각각 마시모 루옹고와 제임스 트로이시에게 골을 허용했고 한국은 120분 간 혈전을 벌인 끝에 호주에게 1-2로 패하고 말았다.

사실 연장전에 터진 트로이시의 결승골은 토미 유리치의 측면돌파를 막지 못한 김진수(TSG1899 호펜하임)의 실수가 빌미가 된 골이었다. 하지만 김진현은 자신이 빠르게 도움 수비에 들어갔더라면 골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배의 실수를 감쌌다.

1987년생 김진현은 김승규(1990년), 이범영(1989년) 등 대표팀 경쟁자들에 비하면 나이가 다소 많은 편이다. 하지만 동갑내기 올리버 칸에 가려 오랜 기간 2인자에 머물렀던 옌스 레만은 만36세의 나이에 독일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차며 2006 월드컵에서 독일을 3위로 이끈 바 있다. 따라서 만27세에 불과한 김진현의 나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활약이다. 2009년 1부리그로 승격된 세레소 오사카는 작년 시즌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누구(?)처럼 '으리'로 선수 선발을 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팀에서 활약을 이어가지 못하면 주전 경쟁에 다시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

이제 아시안컵은 끝났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 충분히 많은 박수를 받아도 좋을 만큼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골키퍼고민을 해결해준 '슈틸리케호 최고의 수확' 김진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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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결승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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