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악어컴퍼니


뮤지컬 <라카지>에서 김호영이 연기하는 자코브의 롤 모델은 조지의 아내 앨빈이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무대에 서는 앨빈을 자코브는 동경한다. 조지에게 집사로 채용된 자코브는 스스로를 '하녀'라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코브는 자코'비'라는 여자 이름을 선호하기까지 한다. '영철'이라는 남자 이름보다 '영미는 여자 이름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이가 자코브다.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옷도 무대에서 입을 법한 마리 앙투아네트나 모차르트, 클레오파트라의 옷이다. 뮤지컬계에서 내로라하는 옷 맵시를 자랑하는 김호영에게 있어서 자코브처럼 등장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배역은 금상첨화같은 역할이 아닐 수 없다.

- 뮤지컬 <프리실라> 때만큼 옷 갈아입기 바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등장할 때마다 옷이 바뀐다.
"<프리실라>만큼 옷으로 바쁜 작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무대 뒤로 들어갈 때마다 가발을 챙기고, 바쁘게 갈아입는다. 다행히 옷 입는 걸 워낙 좋아한다. 자코브가 클레오파트라 복장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가발과 의상뿐이었지만 목걸이로 써야 하는 걸 머리 장식으로 쓰고, 귀고리 같은 소품을 실제 제가 사용하던 소품으로 가지고 왔다. 즐기면서 공연하고 있다."

- 캐릭터 비중이 좀 작아 보이는 건 아닌가.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 주연을 맡는 중에 <라카지> 자코브 제의가 들어왔다. 저보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가 많았다. 초연 때 이지나 연출가로터 작품 제의를 받았을 때 당연히 앨빈 역할인 줄로만 알았다. 자코브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이지나 연출가가  '그 역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있어야 해' 하면서 '네가 원하는 옷은 다 입혀줄게'라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넘어갔다.

지금의 자코브는 초연하기 전보다 대사가 많이 늘었다. 원래는 대사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난 집사가 아니에요. 하녀에요' 하는 대사가 입에 착착 붙었다. 당시는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막바지 연습 때였다. <라카지>의 자코브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자코브라는 캐릭터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공연에 접근하는 제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다. <라카지>는 암전이 없다. 다른 뮤지컬이라면 암전이 있을 타이밍에 자코브가 등장한다. 자코브가 등장할 때마다 '막간극'처럼 활용되다 보니 자코브라는 제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자코브가 없어도 장미셀은 결혼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관객이 쉬어가는 타이밍에 저를 활용하는 연출을 통해 공연의 큰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악어컴퍼니


- 자코브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이 웃지 않은 적이 없다.
"이태원만 가 보아도 펍에서 일하는 이들의 입담은 장난이 아니다. 여자같이 말한다고 해서 예쁜 척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표현이 우악스럽다. 그런데 그 스타일 자체가 듣는 이에게 재밌게 들린다. 라카지 걸과 자코브가 대사를 주고받을 때 관객이 대놓고 웃게 만든다. 대놓고 웃기려하면 막상 웃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라카지 걸과 자코브가 주고받는 대사는 대놓고 웃겨주어야 한다. 초연부터 라카지 걸과 자코브가 주고받는 대사에서 객석이 빵빵 터졌다. 코미디 타이밍에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 토요일이나 휴일에는 공연이 두 번 있다. 자코브는 수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캐릭터이다 보니 공연과 공연 사이에 수염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재미있는 질문이다. <라카지> 배우들은 별안간 들리는 '윙'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제가 전기면도기를 사용하는 소리다. 다른 사람보다 수염이 너무 잘 자란다. 코 아래만 수염이 자라는 게 아니라 목덜미 전체에 수염이 자란다.

사흘 동안 수염을 깎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많이 난다. 다리 전체에도 털이 많다. 하지만 이제껏 수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뮤지컬 공연할 때 두 장면만 지나면 면도를 해야만 한다. 물론 무대에서는 제 수염이 안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여장을 하는 가운데 수염이 자라는 걸 제가 못 견딘다. 여장 연기를 할 때마다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 게 수염 깎는 일이다. 수염을 깎아도 잠깐이다. 금방 자란다. 전기면도기로 하루에 몇 번씩 밀면 얼굴 피부에 독이 오른다.

어떤 배우는 제게 '생전 면도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보이는 네가 전기면도기를 사용하는 장면을 삽입하면 대박일 것'이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다. 면도기를 사용하는 저와, 말끔한 자코브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 경악할 것이라는 거다. <라카지>는 2시간 50분짜리 공연이다. 공연하는 동안 면도를 네 번이나 한다."
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라카지 자코브를 연기하는 김호영 ⓒ 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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