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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두문포구의 새벽, 저 멀리 포구 뒤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해가 구름에 가려 가로등 불빛이 오히려 더 붉게 빛난다.
▲ 종달리 두문포구에서 종달리 두문포구의 새벽, 저 멀리 포구 뒤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해가 구름에 가려 가로등 불빛이 오히려 더 붉게 빛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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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에 종달리 두문포구에 섰다. 성산항을 둘러보고 일출을 보겠다 생각했는데, 7시 경에 일출을 보고 성산항으로 갔어야 순서였다. 성산항도 너무 일러 항구로 들어오는 만선의 배를 만날 수 없었고, 구름이 가득하여 해맞이도 할 수 없었다.

해는 구름 속에서 그냥 사멸한 것인가? 아니, 여전히 구름 속에서도 새벽에만 만날 수 있는 오묘한 빛, 매직아워(Magic Hour)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종달리 바다의 새벽, 잠자던 바람도 깨어났는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니 봄이지만 쌀쌀하다.
▲ 종달리 바다 종달리 바다의 새벽, 잠자던 바람도 깨어났는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니 봄이지만 쌀쌀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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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아워, 그 빛은 그리 길지 않다. 사람들은 아주 짧은 순간 존재하는 것들을 열광적으로 사랑한다. 그 사이의 긴 시간, 과정들도 그만큼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삶은 더 진지해질지도 모르겠다.

흔히 일상이라고 하는 시간의 고마움을 종종 잊고 살아가는 까닭에 삶이 무미건조할 때가 있다. 그 삶에 긴장감을 준다는 의미는 어쩌면 이제 곧 사멸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종달리 올레 1코스에 자리한 팽나무, 이곳에서부터 제주의 올레길 여행이 시작된다. 동쪽 끝마을에서 시작되는 올레길 여행은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깊다.
▲ 팽나무 종달리 올레 1코스에 자리한 팽나무, 이곳에서부터 제주의 올레길 여행이 시작된다. 동쪽 끝마을에서 시작되는 올레길 여행은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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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는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거반 15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의젓해 보이긴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태풍에 부러져버린 가지들의 흔적을 빼면 그대로인 듯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 올레 1코스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에서 하나의 표식이 된 것이다. 표식이 되었으므로 아주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거나 사진을 보는 이들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고 해가 뜨자 또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제주의 풍광은 매일매일, 시간시간 다르게 다가온다.
▲ 종달리 두문포구 아침이 밝아오고 해가 뜨자 또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제주의 풍광은 매일매일, 시간시간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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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다시 두문포구를 찾았다. 제주의 하늘, 아침엔 아무것도 보여줄 것 같지 않더니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다른 풍광을 선물한다.

궂은 날에는 궂은 대로 맑은 날에는 맑은 대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리고 그 변화도 빠르다. 아마도 바람 때문일 터이다.

종달리 해안도로에 있는 전형적인 해신당으로 어부와 해녀들의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있는 당이다. 우묵사스레피나무에 걸린 울긋불긋한 천들이 바람에 흣날리며 봄꽃을 연상시킨다.
▲ 생개납 돈짓당 종달리 해안도로에 있는 전형적인 해신당으로 어부와 해녀들의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있는 당이다. 우묵사스레피나무에 걸린 울긋불긋한 천들이 바람에 흣날리며 봄꽃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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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바닷가 갯바위에 있는 해신당 '생개납 돈짓당'을 찾았다. 전형적인 해신당으로 우묵사스레피나무에는 울긋불긋한 천들이 묶여 바람에 휘날린다. 어부와 해녀가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당이다. 단지, 미신으로 치부할 수 없는 바람과 기원이 들어있다.

해신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때, 누군가 개인이 그렇게 당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가 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염원이 아닌 공동체의 염원을 담은 것임을 안 뒤로는 그 공동체의 염원을 미신이라고 경시하는 무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주에는 봄이 완연하다. 땅만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도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 돌담과 유채꽃 제주에는 봄이 완연하다. 땅만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도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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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한 상개납 돈짓당의 천들이 꽃처럼 느껴졌고, 다닥다닥 아래쪽을 향해서 수도없이 피어날 우묵사스레피나무의 작은 꽃망울들은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미 봄이 왔음은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이 검은 제주의 돌담과 어우러져 더 분명하게 알려준다.

봄은 육지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도 온다. 봄은 자유의 땅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도 오는 것처럼,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것처럼, 봄은 바다에도 온다.

봄이라곤 하지만 쌀쌀한 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녀, 망에는 바다에서 딴 봄이 가득하다.
▲ 제주 해녀 봄이라곤 하지만 쌀쌀한 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녀, 망에는 바다에서 딴 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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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오일장이 열린다 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세화장으로 향하다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는 해녀를 만났다. 저 꼿꼿한 제주 할망, 바다에서 봄을 캐고 따고 잡아 오고 있는 것이다.

제주를 떠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제주도를 떠나면서 내가 알고있던 제주의 할망들 중 많은 이들은 그 기간 동안 서로 다른 땅에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명의 할망도 이 땅과 이별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들보다 연하인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제주 할망들은 강하다. 그 강함은 독립심이 강한 제주여성의 특질에서 기인할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기력만 있으면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데에 장수의 섬 제주의 저력이 숨어있을 것이다.

세화오일장, 조금 한산하여도 오일장만이 가진 넉넉함이 장 안에 그득하다. 오일장에서도 봄내음이 진동하는 듯하다.
▲ 세화오일장 세화오일장, 조금 한산하여도 오일장만이 가진 넉넉함이 장 안에 그득하다. 오일장에서도 봄내음이 진동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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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는 이제 생소할 옛것이 되었으나 아직도 카세트가 고장나 소멸되지 않는 한 여전히 카세트 테잎을 찾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 카세트 테잎 젊은이들에게는 이제 생소할 옛것이 되었으나 아직도 카세트가 고장나 소멸되지 않는 한 여전히 카세트 테잎을 찾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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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 오일장, 오랜만이라 많이 설렜다. 설 이후라서 그런지 조금은 썰렁했지만, 오일장만이 가진 맛은 좌판마다 가득하다. 오일장은 추억을 파는 곳이다. 이제 곧 사라질 것들도 그곳에서 만나고, 이제 막 도시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물건들도 그곳에서 만난다.

어쩌면 정품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짝퉁, 굳이 메이커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익숙한 짝퉁 메이커, 저작권을 살짝 넘어선 그 무엇, 세련되지 않은 소박한 그 어떤 매력, 이런 것들이 오일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정이 아닐까 싶다.

세화방파제의 등대와 에메랄드빛 바다, 바다에도 봄이 온듯 에메랄드빛 바다가 잔잔하다. 이렇게 봄이 왔다.
▲ 세화방파제 세화방파제의 등대와 에메랄드빛 바다, 바다에도 봄이 온듯 에메랄드빛 바다가 잔잔하다. 이렇게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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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봄이 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앙칼지게 차갑지 않다. 세화오일장에서 바라본 에메랄드빛 세화바다, 저 바다 속에도 꽃이 피었겠다. 미역이며 톳이며 파래는 물론이고, 그들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들의 걸음걸이도 빨라지겠다. 그리고 또 그들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들이 모이고 모여 북적거리고, 그렇게 봄은 저 바다 밑에서도 분주하게 솟아오를 것이다.

봄이다. 육지에는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기 시작하고, 저 바다에도 해녀들의 물질, 숨비소리 힘차게 해줄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생개납돈짓당의 석신, 목신이여, 올 봄에는 이 나라 가난하고 힘없고 빽없는 백성들 피어나게 하소서.

덧붙이는 글 | 2월 25일 제주도 종달리와 세화 해안도로, 세화오일장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제주도, #종달리, #돈짓당, #해신, #두문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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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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