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순신 장군에 푹 빠져 사는 노기욱 선임연구원. 그는 문화재학박사로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 푹 빠져 사는 노기욱 선임연구원. 그는 문화재학박사로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그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평소 말수가 적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움도 탄다. 순수파에 속한다. 그런 그가 돌변할 때가 있다. 말문이 열리면 끝이 없다. 금세 열변을 토한다.

문화재학박사 노기욱(58)씨 이야기다. 노씨는 현재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를 이렇게 돌변시키는 소재가 바로 이순신이다. 노씨는 이순신 얘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순신과 관련된 연대와 날짜, 장소, 주변 인물의 이름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다.

어디서 그런 지식이 다 나오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이순신 연구 논총을 수십 번 봤다"고 했다. 이순신 연구 논총은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에서 펴낸 이순신 연구 서적이다. 모두 20권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1월과 2월에 걸쳐 다섯 차례 노씨를 만났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보고 있는 이순신 관련 옛 책들. 먼지 자욱한 고서는 물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사가 족보까지도 다 훑고 있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보고 있는 이순신 관련 옛 책들. 먼지 자욱한 고서는 물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사가 족보까지도 다 훑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보려고 연구실에 쌓아둔 책들. 그는 지금 전남 보성의 이순신 관련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보려고 연구실에 쌓아둔 책들. 그는 지금 전남 보성의 이순신 관련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노씨는 이순신이 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와 정조가 편찬한 <이충무공전서>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이순신의 어떤 점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순신을 좋아했어요. 할아버지한테 이순신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고요. 할아버지는 이봉상의 '리슌신뎐(이순신전)'을 읽어 주셨어요. 이봉상은 이순신의 현손(玄孫)이에요. 늘 이순신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인물이잖아요."

노씨의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더 자세한 이유를 물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데요. 전라도와 이순신이 겹치더라고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요. 이순신을 들여다 보니 지역의 과거를 알게 되고, 미래도 짐작할 수 있고요."

노씨가 이순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관련 논문이 많지 않았다. 학구열과 호기심이 동시에 발동했다.

1597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기용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위해 조선수군을 재건하면서 들른 보성 양산원의 집 터.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박실마을에 있다.
 1597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기용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위해 조선수군을 재건하면서 들른 보성 양산원의 집 터.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박실마을에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알면 알수록 재밌었어요. 태어나고, 전사한 곳만 달랐지. 이순신의 삶이 곧 전라도의 역사더라고요. 백의종군 끝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기용돼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노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순신은 1597년 8월 구례에서 곡성, 순천을 거쳐 보성, 장흥으로 가면서 군사를 모으고 병참물자를 확보했다. 그것도 왜군이 뒤쫓아 오고, 조정에선 조선수군 철폐령까지 내린 상황이었다.

"수군 철폐령에 맞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장계를 올린 곳이 보성이었어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고요. 배설이 이끌던 함대 12척을 인수하려고 기다린 곳이 보성 군영구미였고요."

노씨의 열변이 이어진다. 이순신은 이렇게 조선수군을 재건해서 우수영 앞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 백성들이 열렬히 참여했고, 목숨까지도 내놓았다는 것이 노씨의 얘기였다.

1597년 8월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확보했던 조양창의 터.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고내마을에 있다.
 1597년 8월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확보했던 조양창의 터.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고내마을에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갔던 군학마을의 모습.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그날의 현장을 증거하고 있다. 전라남도 보성군 회진면에 속한다.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내륙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갔던 군학마을의 모습.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그날의 현장을 증거하고 있다. 전라남도 보성군 회진면에 속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장정들은 병사로, 의병으로 전쟁에 참가했어요. 백성들은 자신과 식솔들이 굶는 상황에서도 식량을 모았고요. 지역을 아는 백성들은 이순신의 눈과 귀가 되어 앞길을 열었고요. 어선을 가진 고흥과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진도 사람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해 후방에서 수군의 방패막이를 자청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요. 이 사람들이 전라도 백성들이었습니다."

노씨는 이 사실을 당시 이순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이순신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고 했다.

그가 본 이순신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요. 전장에선 담대한 장수, 지략과 결단력을 갖춘 장수요. 달빛을 보면서 감상에도 젖는 감수성 짙은 성격의 소유자였고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이죠.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지도자였고요. 그 생각으로 부하들을 대했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왜적과 싸웠고요. 이순신이 죽기로 싸우자고 했을 때 군사들이 동의한 것도 그런 이유였겠죠."

노씨가 인간 이순신을 좋아하는 이유다. 누구나 이순신을 알면 그 매력에 빠져들 것이라는 게 노씨의 얘기였다. 그가 지금도 이순신 관련 사료를 뒤적이며 밤을 지새우는 이유다.

노씨는 이순신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이순신의 수군 재건과 명량해전(역사문화학회, 2013), 전남의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그 정신(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4), 이순신의 상유십이 장계의 현장 보성군 고찰(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5) 등이 대표적이다. 전라남도의 백의종군로,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사업의 고증과 해군본부의 백의종군로 연구 등에도 참여했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참여한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 재건로의 고증 자료집. 1597년 4월 의금부에서 풀려난 이순신의 백의종군 노정과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후 조선수군 재건에 나서던 길과 전후 사정이 다 담겨 있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참여한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 재건로의 고증 자료집. 1597년 4월 의금부에서 풀려난 이순신의 백의종군 노정과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후 조선수군 재건에 나서던 길과 전후 사정이 다 담겨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1597년 당시 구례현청에 있었던 명협정. 현청 터인 현재의 구례읍사무소 앞에 최근 복원됐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고증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1597년 당시 구례현청에 있었던 명협정. 현청 터인 현재의 구례읍사무소 앞에 최근 복원됐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고증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이순신으로 지역통합 이뤄야 해요. 국민통합도 이루고요. 우리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인물이잖아요. 지역의 관광과 개발도 이순신과 연관 지어서 이뤄져야 해요. 그게 지역이 살 길입니다."

노씨의 말이다. 그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과 조선수군 재건 길, 민정시찰 길 등을 역사관광 코스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와 연관된 음식을 개발하고 이순신 캠프를 운영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했다.

노씨가 최근 책 <명량 이순신>을 펴낸 것도 이의 일환이다.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304쪽 분량으로 전남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냈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최근 펴낸 '명량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모든 것을 알기쉽게 정리해 놓았다.
 노기욱 선임연구원이 최근 펴낸 '명량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모든 것을 알기쉽게 정리해 놓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난중일기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남도의 이순신 길을 찾고 있어요. 이 분들을 보면서 이순신과 관련된 고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연계 자원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이순신을 알리는 것이 우리 지역을 살리는 길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씨의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위해 보성지역 연해민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병참물자를 준비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보성현청의 열선루가 '상유십이' 장계를 쓴 곳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열선루의 옛 모습과 주춧돌, 활주석, 외벌대도 찾아냈다. 이순신의 민정 시찰과 백의종군, 수군 재건, 명량대첩 등의 과정도 고증을 통해 밝히고 있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했어요. 그 동안 발굴되지 않은 유적과 인물을 찾기 위해 관련 읍지나 군지도 다 살폈고요. 관련 한문문집도 140여 권 봤습니다. 또 자료에 언급된 곳은 다 찾아 다녔고요. 당시 이순신의 마음으로요."

<명량 이순신>에 대해 신뢰가 가는 이유다. 뚜벅뚜벅 한길을 걸으며 이순신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서고 있는 노씨가 발로 만든 것이어서 더더욱 믿음이 간다.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이순신 흔적 찾기와 이순신길 밝히기에 관심이 모아진다.

노기욱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는 전라남도의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사업을 고증한데 이어 해군본부의 백의종군로 연구에도 참여했다.
 노기욱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는 전라남도의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사업을 고증한데 이어 해군본부의 백의종군로 연구에도 참여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노기욱, #호남학연구원, #명량 이순신, #조선수군재건로, #백의종군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