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류인간>에서 소연 역을 맡은 소이.

영화 <조류인간>에서 소연 역을 맡은 소이. ⓒ 마카롱컴퍼니


그녀가 웃는다. 데뷔 21주년이란 말에 재빠르게 "(VJ로 입문한 1994년이 아닌) 그룹 티티마 활동 때부터 쳐서 16년 이라고 하죠!"라고 눙치며 취재진을 맞는다. 가수이자 배우로 알려진 소이(김소연)는 26일 개봉한 영화 <조류인간>을 통해 한창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었다.

"다들 제가 중견 연예인에 속한다고들 하는데, 배우로서 전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소이가 강조했다. 그 증거로 매번 촬영할 때마다 드는 신기한 느낌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표현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건 데뷔 직후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설렘과도 같다"는 그는 "연기하면서 현장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날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타성에 젖기를 두려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연식 감독, 무대 위에서 립싱크하는 모습에 반했다?

<조류인간>은 소이가 8년 만에 경험하는 장편영화다. 그간 <오하이오 삿포로>나 본인이 연출까지 맡은 <검지손가락> 등의 단편에 주로 출연했기에 또 다른 의미에서 도전이었다. 배우 발굴에 남다른 안목을 지닌 신연식 감독이 일찌감치 소이를 알아보고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부터 이번 영화에 캐스팅했다. 소이 역시 이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큰 영광이었다"고 회상했다.

"2013년 초 감독님이 자세한 말씀은 안하고, 이런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회사 쪽으로 연락했어요. 그 말을 듣고 오디션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만난 자리에서 절 염두에 두면서 시나리오를 쓸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웬일인가 싶었죠. 동시에 하늘이 주신 몇 안 되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신연식 감독이 직접 지난 언론 시사회 때 소이를 두고 "티티마 시절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좀 더 정확한 시점을 꼽자면 신 감독이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고 있을 당시였다. 무대 위 소이를 보고 '연기할 친구가 노래를 하고 있다'며 언젠가 함께 작업하겠다는 결심을 그때 했단다.

 영화 <조류인간>의 한 장면.

영화 <조류인간>의 한 장면. ⓒ 루스이소니도스


"공포 영화에도 출연했고, <오하이오 삿포로>라는 작품에서 주연을 했다지만 이 작품이  정확히 첫 주연이라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조류인간> 대본을 받고 단번에 읽었는데 제 대사에 공감이 돼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다 이뤄서 꿈인 줄 알았어요'라는 대사인데 저도 정확히 그 지점에 있었거든요.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희망을 놓지 못하는 과정이었기에 어떻게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사실 새가 돼야하는 제3 부류의 이야기. <조류인간>은 진짜 행복을 위해 투쟁하는 이 부류를 묘사하며 행복과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이 역시 이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연기하면서 '나는 새'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정의하는 내 모습이 아닌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괴로움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혹독했던 20대 시기의 성장기..."음악, 글 모두 나의 쉼터"

1억 원이 채 안 되는 저예산에 한 겨울 산 속을 몇 시간이고 헤매야 했던 촬영이었지만 소이에겐 즐거웠다. 작품 자체가 그녀의 삶 일부분을 담아낸 듯해서였다. "<조류인간>은 곧 자아와의 끊임없는 싸움"이라며 소이 역시 자신이 밟아왔던 과거의 일부를 회상했다.

"티티마 시절을 거치며 나도 내가 누군지 몰랐던 기간이 길었어요. 20대 초반에 '난 누구지?'라는 질문을 처음 하기 시작해 혹독한 성장기를 겪었죠. 일부러 어두운 작품에 출연했고, 복장도 어둡게 하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제게 밝은 모습만 원했거든요. 반항이었죠. 이제 겨우 제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방향은 찾은 거 같아요. 분명한 목표라기보다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걸 잡은 거죠."  

'끊임없이 창작하는 삶' 이게 소이가 찾은 자기 인생의 참 방향성이었다. "글이든 영화든 뭐든 나를 끄집어내고 싶다"며 소이는 "늙어서 쪼글쪼글한 손으로 손녀를 위한 동화책을 쓰든, 메모지에 어떤 글을 쓰든 내 인생 가장 밑바탕이 바로 창작이고 싶다"며 눈빛을 밝혔다.

"음악 역시 제 일부분이에요. 아이돌 출신? 제가 한창 방황할 때는 티티마의 '티'자만 꺼내도 진짜 싫었어요. 난 당신들이 아는 그런 사람이 아냐! 난 그냥 김소연(소이의 본명)이야! 이러고 속으로 외쳤죠. 음악은 좋아했지만 음악 활동이 싫어졌어요. 아니 가수인 내가 싫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런데 지금은 자랑스럽고 제가 기특해요. 어두웠던 시기를 거치고 서른을 맞이했을 때 '어느 정도는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인 밴드인) 라즈베리필드 활동은 그래서 제게 하나의 놀이터, 쉼터와 같아요. 티티마 활동을 부정하던 때 교회 동생이 무작정 기타를 사라고 권해서 산 이후부터 제 음악을 하기 시작했죠. 음악 행위를 다시 사랑하게 된 거예요. 밴드가 엄두 안 나서 친구들을 불러서 작게 하던 게 이렇게 이어지고 있어요.

음악으로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물론 대중성을 무시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골방 아티스트는 아니니까요! 돈을 벌기 위한 마음으로 안 하겠다는 거예요. 곧 앨범이 나올 텐데 형부(가수 조규찬)와도 많이 얘기 중이고, 못의 이이언 오빠, 그리고 예전부터 함께 했던 장준선과도 함께 하고 있어요."

루저 중에 루저..."진짜 행복 찾아가려 한다"

 소이.

소이. ⓒ 마카롱컴퍼니


버스 타며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소이였다. 스스로를 '트잉여'(트위터 잉여)로 칭하며 "정말 마음 가는대로 체계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며 "진짜 찌질한 인간"이라고 웃어보였지만 소이가 지닌 진짜 힘은 바로 강한 내면에 있었다. 끊임없이 연기와 음악, 글로 표현하며 또 다른 절망한 이들과 소통하는 게 그녀의 즐거움으로 보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제 인생의 책인데 주인공이 루저 중에 루저잖아요. 그게 제겐 큰 빛이었어요. '아 나만 루저가 아니구나!' 어느 날 제 글발이 늘어서 작가라 칭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글도 쓰고 싶어요. 노래와 글은 정말 제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예요. 그걸 읽어주고 들리게 된다면 참 행복한 거죠."

연기 면에서도 소이는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전했다. 스스로도 대중과 소통을 고대하는 만큼 "선입견을 뚫고 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소이는 "한국영화에 숨은 보석이 많다"며 "영화제든 독립영화든 관객 분들이 그 안에서 즐거운 보물찾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이는 차기작 <프랑스 영화처럼>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본인의 단상을 모은 책 출판도 준비 중이다. 서른을 넘기며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가는 소이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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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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