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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이사장의 친인척이 교육청 승인 없이 교장으로 재직하는 것은 불법이며, 그들이 세금으로 받은 임금을 반환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11일, 이사장의 친인척들이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사학법인들이 서울교육감(당시 곽노현 교육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봉덕학원·동명학원·문영학원·광영학원·영신학원·득양학원·오산학원·삼산학원·송민학원 등에서 교육청 승인 없이 재임하고 있는 학교장들의 해임을 요구했다. 아울러, 임금으로 지원했던 수십억 원의 재정결함보조금을 환수하도록 했다. 이에 사학법인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족벌사학의 불법 친인척교장들에게 철퇴를 내린 것이다.

만연한 족벌사학, 불법-편법 친인척교장 제어장치 없다

지난 2006년 1월 11일 수원시에서 열린 사학법 개정 반대 한나라당 장외 촛불집회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 이재오 의원, 나경원 의원.
 지난 2006년 1월 11일 수원시에서 열린 사학법 개정 반대 한나라당 장외 촛불집회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 이재오 의원, 나경원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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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17대 국회 시절,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학법은 족벌사학의 폐쇄적 경영에 의한 비리와 비민주성을 방지할 목적으로 개정됐으며, 이사장의 친인척이 학교장이 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박근혜 대표)과 사학법인들의 반발에 2007년 재개정되면서, 이사장의 친인척이라도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거치면 학교장에 임명될 수 있게 바뀌었다.

그런데 일부 사학들은 이사장의 친인척을 학교장으로 임명하면서 최소한의 절차로 규정된 관할청 승인도 받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다. 그렇게 임명된 교장들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학교마다 받은 수천만~수억 원에 이르는 학교장 임금을 곽노현 교육감이 환수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해당 사학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소송이 시작됐고, 1심에서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서울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학법이 개정된 된 것이 2005년이고, 재개정이 2007년인데 당시 교육청들은 이사장의 친인척이 불법으로 교장에 임명됐는지조차 챙기지 않았다. 심지어 승인 기준을 만든 교육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곽노현 교육감과 김상곤 경기교육감만 뒤늦게 불법 친인척교장 임용을 확인하고, 이들에 지급된 임금의 환수 조치를 했을 뿐이다.

서울과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불법 친인척 교장들이 만연해 왔다. 이사장과 학교장의 친인척 관계도 다양하다. 남편과 아내가 이사장과 학교장으로 재임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사장의 아들이나 딸이 학교장인 경우도 많았다. 이사장의 사위, 심지어는 손자사위가 학교장으로 불법 임용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 조항은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만 얻어서 승인 신청을 하면 이사장과 어떤 관계라도 학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친인척 교장에 의한 족벌운영의 폐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제어 장치는 되지 못한다.

그나마 배우자나 직계 친인척만 아니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사각지대도 많이 있다. 이사장의 직계가 아니라 방계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승인 대상에서 제외되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학교장으로 임용되는 경우도 상당했다. 이사장의 형-동생, 누나, 매제, 4촌, 조카, 심지어 처조카까지 학교장으로 임용됐다.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을 제한함으로써, 사학의 족벌운영의 폐해를 막는다는 사학법 개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또 있었다. 현행 사학법은 이사장의 친인척만 학교장 임명을 제약하고, 이사장이 아닌 (평)이사의 친인척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를 악용하여 이사장을 다른 사람을 세워두고, 공식적으로는 평이사인 사람의 친인척을 학교장으로 임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행법으로는 이처럼 '실질적 이사장' 행세를 하는 이들을 전혀 제어할 수 없다. 이런 사례들은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또, 이사장이 아닌 학교장끼리의 친인척 관계도 전혀 제한하고 있지 않은 맹점이 있다. 하나의 사학법인 아래에 여러 개의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명목상의 이사장을 따로 세워두고, 자신이 학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친인척을 다른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하는 '꼼수'를 쓴다. 이처럼 학교 전체를 좌지우지하며 족벌로 운영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런 현행법의 맹점 때문에 3개의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A사학법인의 경우, 4형제가 돌아가면서 학교장을 하고 있다. B사학법인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 딸들이 산하 학교의 교장을 하는 것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학의 족벌 운영에 의한 비리와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을 제한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학들이 학생들의 등록금과 국민 혈세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회계와 재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행정실장 등 학교회계를 담당하는 직책에 대한 친인척 임명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사학법에는, 학교의 모든 돈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행정실장의 임명에 대해서 아무런 제한 조항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학에는 이사장-학교장-행정실장의 친인척 임명이 가능하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형 구조, 예컨대 아버지 이사장-아들 학교장-어머니 행정실장과 같은 경우가 발견된다. 실제로 이렇게 운영하는 사학들도 꽤 있지만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족벌경영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인 현행 사학법

2005년과 2007년 개정된 사학법에 대해서 당시 한나라당과 사학법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장외투쟁에 나서는가 하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법정 기한인 180일의 10배가 넘는 6년이 걸렸다. 헌법재판소는 사학법 위헌소송에 대해서 2013년 12월, 이사장 친인척 학교장 금지 조항을 포함하여 모든 조항에 대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개정 사학법이 위헌이라며 색깔론까지 들먹였던 당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대통령도, 투쟁을 이끌었던 새누리당 지도부도, 사학법인 대표자들은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다.

그런데, 이 때 개정된 내용만으로는 사학의 족벌운영의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수많은 불법과 편법이 벌어지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가 너무나 커 보인다. 본래 사학법 개정안의 목적은 족벌운영에 의한 사학비리와 폐해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 교육 당국의 지도감독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

먼저, 불법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불법 교장의 경우 서울교육청처럼 지원된 재정결함보조금 환수와 재정적·행정적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또한 이 사학법 조항이 실질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할청(시도교육청)이 이사장 친인척 학교장 승인의 기준을 제정하는 게 필수적이다.

나아가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는 현행법의 한계로 드러난 '편법' 친인척 교장을 제어할 수 있도록, 사학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이사장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뿐 아니라) 형제자매, 숙질(삼촌 조카) 등 방계 친인척이 교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허수아비 이사장을 내세워 실질적으로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편법을 막기 위해서는 이사장뿐만 아니라 평이사의 친인척 학교장 임명도 제한해야 한다. 여러 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의 경우, 이사장이 아닌 학교장 간의 친인척 임명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사장의 친인척 학교장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이사장과 학교장의 친인척이 행정실장으로 임명되는 것에 대한 제한도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등 사립학교 대부분의 재단전입금 비율이 0~2% 정도이다. 학생납입금과 국민혈세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 회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행정실장의 친인척 임용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우리 공교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의 오랜 병폐를 치료해야 한다. 족벌운영을 제어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에 대한 교육당국과 우리 사회의 고민과 적극적 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무엇보다 국회와 정부의 노력이 사학법 개정 보완 노력이 절실하다.

곽노현 교육감이 불법 친인척 교장을 해임 요구하고, 임금 환수를 지시하던 당시 서울의 친인척 학교장 현황. 이 중에는 현행법 상 불법도 있고, 현행법의 맹점을 이용한 편법도 있어 시급한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곽노현 교육감이 불법 친인척 교장을 해임 요구하고, 임금 환수를 지시하던 당시 서울의 친인척 학교장 현황. 이 중에는 현행법 상 불법도 있고, 현행법의 맹점을 이용한 편법도 있어 시급한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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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족벌사학, #친인척교장, #곽노현, #노무현,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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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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