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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5일 10 : 52 AM.

장면이 어느새 다시 스튜디오로 바뀌고, 여성 앵커가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박 소장님. 과거에 간혹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보면요, 사각형의 까만색 007 서류가방을 들고 서있는 경호원들 모습이 자주 눈에 띄던데… 그 가방 안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요?"

"아… 경호원 가방! 하하하. 아마도 질문하신 앵커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 가운데도 평소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을 텐데요, 그 가방 안에 설마 무슨 서류 봉투같은 게 들어있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경호를 위한 무기, 즉 기관총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이 방아쇠 역할을 하게끔 제작이 되어 있지요 아마? 다시 말해서 그냥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특수 제작된 대통령 경호용 무기인 셈입니다."

"아! 그렇군요! 특수 제작된 대통령 경호용 무기! 하긴, 총 같은 걸 눈에 띄게 들고 다니면 행사장 분위기도 딱딱해질 테니,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편이 훨씬 낫겠네요. 어쨌거나, 경호원들의 그 까만색 가방, 실제 무기로 쓰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 되겠지요?"

여성 앵커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남성 앵커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박 소장님. 매번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마다 2월 25일에 행사가 이뤄지곤 하는데, 이게 혹시 법으로 정해진 날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대선이 끝난 다음 해 2월 25부터 시작되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은 헌법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아… 헌법에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드리자면 좀 길고 복잡한데… 우선 대통령 임기를 2월 25일부터 시작하도록 정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때의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하고, 신군부 세력을 기반으로 해서 정권을 잡았죠? 그리고 전임 최규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서 하야하도록 했구요. 그러고 나서 그때 당시…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간접 선거인단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소위 '체육관 선거'라고 불렀던 시절의 일이지요."

"아 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정했던 일이군요?"

"네, 이때가 1980년부터 81년까지의 제 11대 대통령 때고요, 마찬가지로 간접선거를 통해 곧바로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제 12대 대통령을 연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 12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7년 임기의 단임을 약속하는, 제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킵니다. 그런데 그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취임식 날짜가 1981년 2월 25일이었고, 임기 마지막 날은 1988년 2월 24일이었던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바로 그 제 5공화국 헌법에 그게 명시가 된 건가요?"

"아니죠.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로 인해 국민들의 민주화투쟁 열기가 높아지자, 정권 말기인 1987년 4월 13일,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개헌논의의 중지와 더불어 제 5공화국 헌법에 의해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5공화국 헌법대로 하면 대통령 선출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바 있죠? 체육관 선거….

즉, 간접선거에 의해서 또 다시 대통령을 뽑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을 아예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러자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전국을 뒤덮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에 가장 큰 획을 그었던 87년 6월 민주화항쟁이었던 것입니다."

"네… 소장님. 저는 당시에 나이가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그 당시 열기가 참으로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그럼요? 정말 엄청났었죠! 어쨌거나, 그 때 당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던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열망에 의해, 마침내 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드디어 통과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 6공화국 헌법인데요, 그 때 통과된 제 6공화국 헌법의 부칙 제 1조에 '이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부칙 제 2조 2항에는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개시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개헌을 하지 않는 한, 새 대통령의 취임식은 임기 시작일인 2월 25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정리를 하자면 대통령 취임식, 즉 대통령 임기 시작일이 2월 25일로 헌법에 명시가 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의 일이고, 그 헌법은 제 5공화국이 아니라 제 6공화국 헌법이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제 6공화국 헌법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 임기는, 대선이 치러 진 다음해의 2월 25일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순간, 여성 앵커가 갑자기 말을 끊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지금 막 새 대통령께서 행사장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현재 시각 오전 10시 58분. 현장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바뀌더니, 정문 입구 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자 곧바로, 행사장에 이제 막 도착한 대통령 전용차에서 새 대통령이 하차를 하고, 이를 국무총리를 비롯한 여러 정치권 인사들이 따뜻하게 환영한다. 새 대통령, 웃으면서 일일이 이들과 악수를 나눈 뒤, 축하객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순간, 현장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지금 새 대통령께서 이 곳 행사장에 방금 막 도착을 하셨습니다!"

"이제 대통령께서, 국민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입장을 하고 계십니다!"

새 대통령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차츰 단상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윽고 단상에 오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나머지 전직 대통령들 및 내빈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마침내 정면 중앙의 좌석에 대통령이 착석을 하자, TV에는 준비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동원한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배경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행사 엠블렘인 삼태극이 화려하게 불꽃을 뿜는 모양으로 회전을 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 삼태극이 각각 분리되어 세 가지 빛깔의 하늘을 나는 용 모양으로 변신하면서 지구위로 승천을 하더니, 갑자기 다시 합쳐져 거대한 3색의 원반형 빛 덩어리 모습이 된다. 회전을 하는 그 빛 덩어리 아래에, 마치 축복이라도 하듯 밝은 무지개가 한반도 위에 드리워지고, 수많은 꽃잎들이 하늘하늘 그 아래로 흩뿌려지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곧바로 이어지는, '제 19대 대통령 취임식', '새 시대! 새 희망! 국민화합과 미래로의 전진!'이라는 문구의 자막들.

이어서 또 다시 화면이 행사장으로 바뀌자, 3군 군악대의 우렁찬 연주와 더불어, "지금부터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개식선언이 이뤄진다. 이윽고 국무총리의 짧은 축하인사말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지는 대통령 취임선서 순서.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

새 대통령이 우렁찬 목소리로 선서를 끝내자, 여러 발의 예포가 차례차례 발사된다. 뒤를 이어, 수백 명에 이르는 3군 군악대 및 국군 의장대의 대통령에 대한 경례, 그리고 이어지는 행진. 새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이에 대해 화답을 하며, 엄숙한 표정으로 사열을 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대통령 취임사.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저는 대한민국의 제 19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에게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임 대통령,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제 19대 대통령으로서, 국민통합과 경제발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과 국가부흥의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저의 목숨을 걸고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바입니다.

정치적 이념과 지역갈등으로 인한 국민들 사이의 극심한 분열은, 이제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국민통합이야말로 경제발전과 평화통일, 그리고 국가부흥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통령에 취임을 하는 이 자리에서,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국론분열의 이슈가 되었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의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여·야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왔던 만큼, 이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의 문제는 반드시, 그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모쪼록, 국민들의 간절한 여망을 반영하여, 이 부분을 국회에서 가장 선결적인 과제로 진지하게 검토해 주실 것을, 감히 이 자리를 빌어서 정중히 요청 드리는 바입니다…"

취임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민혁은 당당하게 연설을 하고 있는 그가 그저 기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취임연설을 듣던 도중, 갑자기 울컥하며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 연설 첫머리…. 취임사 첫 부분부터,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언급하다니!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에게 가졌던 일말의 의구심마저 이제는 사라졌다. 그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나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했던 약속. 그리고 지난 대선 시기, 국민들에게 공약으로 내세운 바로 그 약속. 세월호 특별법의 개정.

'역시… 사람을… 제대로 보았군. 물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또 다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나섰는데, 이 문제를 정치권이 대충 소홀히 넘길 수는 없겠지. 만약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감격스러운 순간은 과연 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저 양반… 임기 시작하는 첫날부터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나? 그것 참….'

2014년 11월 7일,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간 합의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환영보다는 우려가 컸다. 세월호 유가족들 뜻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야합의 산물이었기에…. 그토록 요구했던 기소권과 수사권은 처음부터 아예 배제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누더기 야합안을 기어코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새누리당이 추천한 특위위원들은 온갖 구실을 동원하여 진상규명 작업을 처음부터 방해하려고 애썼다. 그건, 새누리당 몫의 위원들로, 극우인사와 부적격 인사들을 임명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일. 심지어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포함시킨 임명안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것은 아예, 대놓고 싸움질로만 시간을 보내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2015년 1월 1일부터 세월호 특별법은 이미 발효가 되었건만, 1년 임기의 조사특위는 2월이 넘도록 출범도 못하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여당 측 당사자였던 김재원 의원이, 세월호 특위 예산안을 '세금도둑'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새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들은 "설립준비단 존립의 법적 근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준비단 해체'까지 주장하면서, 여기에 가세했다. 그렇게 집요한 여당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세월호 조사특위는 시작부터 삐걱거렸고,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에는 결국 실패하고야 말았다.

때문에 반드시 수사권과 기소권을 전제로 한 조사특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다시 확산됐다. 국민들의 분노가 타오르는 가운데, 여당과 야당, 혹은 보수와 진보는 이 문제를 놓고 격렬히 맞부딪쳤다. 그 결과,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

10여 분 가량의 대통령 취임사가 끝나자, 곧바로 축하공연이 시작됐다.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혁은 괜히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대충 손등으로 훔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퍼걱퍼걱 세수를 하며 충혈이 된 눈자위를 달래고 나서, 또 다시 TV속으로 잠시 동안 시선을 고정한다.

문득 시계를 보니, 11시 56분. 이제, 스승님과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나서야 할 시간. 민혁은 대통령 취임사의 감격을 억지로 털어내며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에도 중복 게재가 되었습니다.



태그:#세월호 특별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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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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