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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낸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대전 사낸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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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고통스런 표정을 한 유해가 나왔어요..."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김영환 실무 운영위원이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반쯤 드러난 유해의 얼굴에는 하얀 치아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유해는 큼지막한 돌덩이 아래에서 발굴됐다. 때문일까? 머리뼈 한쪽은 움푹 꺼져 있다. 총알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듯 턱뼈가 벌어져 있다. 고통을 못 이겨 한껏 찡그리고 일그러진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일부 유해발굴 자원봉사단원들마저 고개를 돌리거나 얼굴을 가렸다.

아래쪽으로 또 다른 머리뼈가 보였다. 시신 위에 시신을 포개 놓은 것이다. 골반 뼈는 뒤틀린 채 삭아 있고, 다리뼈는 뒤틀려 있다. 

골령골 찾은 태평양전쟁피해자들 "어떻게 숨 쉬고 살았나.." 눈물

대전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대전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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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골령골 구덩이에서 유해발굴조사단이 조심스럽게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대전 산내 골령골 구덩이에서 유해발굴조사단이 조심스럽게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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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돌덩이는 일부러 시신위에 얹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전쟁 당시 총살집행에 참여한 한 경찰은 "초기에는 시신을 차곡차곡 구덩이에 쌓았지만 점차 시신이 늘어나 나중에는 거꾸로 쑤셔 넣었다"고 증언했다. 또 "헌병대 중위의 명령에 따라 큰 돌로 시신들을 눌러 버렸다"고 밝혔었다.

드러난 구덩이 속은 당시 증언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쯤에는 금니도 발견됐다. 유해발굴조사단은 금니를 단서로 희생자 유가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장(74)과 회원 4명도 이날 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유해를 본 이 회장은 "부모형제를 이렇게 구덩이 속에 묻어 둔 희생자 유가족들이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았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중국의 난징학살 희생자 유해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처럼 이곳의 유해도 후손들의 인권 평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경제발전 못지않게 과거사를 잘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오는 삼일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태평양 전쟁피해자 문제 등 과거사 정리 방안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일 오전 11시 30분..현장설명회

시신을 누르고 있는 큼지막한 돌덩이. 돌덩이 아래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을 누르고 있는 큼지막한 돌덩이. 돌덩이 아래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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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산내 고령골 유해발굴 현장을 찾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가족들. 왼쪽부터 최낙훈(76), 이휘자 회장(74), 신명옥(70), 남영주(77),정윤현(63)
 대전산내 고령골 유해발굴 현장을 찾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가족들. 왼쪽부터 최낙훈(76), 이휘자 회장(74), 신명옥(70), 남영주(77),정윤현(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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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가족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또는 동남아 지역 전쟁터로 끌려갔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대전 산내 희생자 유가족들은 "유해는 고사하고 자료조차 찾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손을 맞잡았다.

발굴 마감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해발굴조사단의 손놀림은 바빠지고 있다. 하지만 발굴 중인 구덩이 단면으로 계속 유해가 계속 드러나자 이날 오전 긴급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회의를 통해 "남아 있는 유해는 대전시와 관할 동구청이 수습해야 한다"며 해당 자치단체에 이를 위한 현장보존과 유해발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했다(관련기사 : "드러난 유해 다시 묻어야만 합니까").

이 날까지 전체 발굴 유해는 15-20 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 유해발굴 현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은 오는 1일 오전 11시 30분, 현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수습한 유해를 정돈하고 있다.
 한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수습한 유해를 정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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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대전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부터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7일 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하지만 유해 대부분이 방치돼 훼손되고 있다.




태그:#대전 골령골, #대전형무소, #유해발굴, #대전시, #대전 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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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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