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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上)은 어떤 기준선보다 높은 곳에 점을 표시해 추상적인 개념인 위를 나타낸 글자다.
▲ 上 위 상(上)은 어떤 기준선보다 높은 곳에 점을 표시해 추상적인 개념인 위를 나타낸 글자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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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초나라 영왕(襄王) 때 장수 천봉술(穿封戌)이 정나라를 공격해 황힐(皇頡)을 포로로 잡았다. 그런데 초나라의 위(圍)공자가 그 공을 가로채기 위해 자신이 포로를 잡았다고 주장한다. 포로에게 누구한테 잡혔는지를 물어 판결을 하는데, 판사 백주리(伯州犁)가 손을 아래로 가리키며 천봉술에게 잡혔는지를 묻고, 손을 위로 높게 쳐들며 위공자에게 잡혔는지를 묻자, 황힐은 천봉술에게 잡힌 억울한 마음과 손동작으로 보아 위공자가 지위가 높은 것을 알아채고 위공자에게 잡혔다고 거짓으로 대답한다. 여기에서 나온 성어가 바로 '상하기수(上下其水)'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장면은 서로 짜고 농간을 부려 사실을 거짓으로 은폐하는 것을 가리킨다. 권모술수와 온갖 부정이 난무하는 우리 정치판이 고쳐지지 않는 한, 언젠가 한번 올해의 사자성어에 뽑힐 만한 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어에서는 위 마룻대가 바르지 않으면 아래 들보가 비뚤어진다(上梁不正, 下梁歪)고 표현한다. 사회 고위층의 병역 기피, 탈세, 불법 재산 증식 등의 뉴스를 접하노라면, 윗물이 흐려도 너무 흐림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서 증자는 "위에 있는 지도자가 도를 잃어, 민심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다(上失其道, 民散久矣)"고 개탄한다. 그런 때일수록 백성의 잘못을 밝히는데 기뻐하기보다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게 된 백성을 측은하게 여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의 탁함이 아래까지 흘러간 것(上行下效)일 수 있음을 정치하는 윗분들은 귀담아 듣고,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원시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어 상하의 개념도 없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면서 역할에 따른 계급이 생겨나고 상하개념도 생겨났다. 아마 그 무렵에 위 상(上)과 아래 하(下)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위 상(上, shàng)은 어떤 기준선보다 높은 곳에 점을 표시해 추상적인 개념인 위를 나타낸 글자다. 상형자가 사물의 형태를 그대로 그린 구상화라면, 지사자는 도형적인 개념을 통해 의미를 추론하는 추상화인 셈이다. 아래 하(下, xià)도 마찬가지 원리로 기준점보다 낮은 곳에 점을 찍어 아래의 의미를 나타낸다. 상은 위로 올라가고, 하는 아래로 내려온다는 동사적 의미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상(上)의 쓰임은 사라지고, 하(下)만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하산, 하교, 하차는 쓰지만 상산, 상교, 상차는 사용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위로 간다는 방향성 보다는 위에 올라선다는 동작의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 득세하면서 등산, 등교, 승차로 대체된 것이다.

<손자병법>에 "위와 아래의 바람이 같아야 승리한다(上下同欲者勝)"고 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살필 필요가 있다. 위에서 아래가 잘 보이지, 아래에서 위를 보고 맞추기는 어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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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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