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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96주년을 맞았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한 것에 항거한 민족독립운동은 이제 4년 뒤면 100주년을 맞게 되는데 일제가 물러간 한반도는 둘로 쪼개져 남북이 대치하는 통한의 분단을 청산치 못하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일본은 과거 청산이나 사과 등은커녕 과거사 왜곡을 자행하면서 주변국들과의 마찰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역사 교과서와 외교 행각을 통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파렴치한 짓을 갖가지 방식으로 벌이고 있으며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오늘날의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는 최강 변수의 하나인 미국은 한반도 분단 문제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모습이다. 이런 미국이 일제에 한민족이 항거한 3.1운동과 조선의 독립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를 보면 충격적이다.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평화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대 사건이다. 3·1운동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18년 1월 발표한 비밀외교의 폐지와 민족자결주의가 포함된 '14개조평화원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1919년 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열린 파리강화조약 회의에서 일본 등 강국들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특히 미국은 당시 일본이 전승국의 하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일본에 강점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 아니다. 미국이 3.1운동에 보인 태도는 상식과는 거리가 먼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3.1운동에 대한 엄청난 탄압에 침묵하면서 일본의 야만적 탄압을 외면하는 적극적 조치까지 취했다.

미국무부는 1919년 4월 주일 미 대사에게 보낸 공문에서 '서울의 미국 영사관은 미국이 조선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 수행을 지원한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무부는 이어 '서울의 미 영사관은 일본 당국이 미국 정부가 조선의 민족주의 운동에 동정적이라고 의심할만한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된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은 파리강화조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민족의 대표로 선출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참가에도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하와이 대표로 선출된 이승만, 미서부 지역 대표 민호찬, 중서부 대표 헨리 한경청 등은 비자 문제와 미국 재입국이 불허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회의에 참석치 못했다. 미 정부 당국이 이들의 출국을 실질적으로 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대표로 파리강화조약 회의에 참석키 위해 파리 회의장까지 같지만 조선의 정식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미국 외교관들에게 조선 독립 문제를 의제로 삼을 것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은 조선 대표 등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파리강화조약 이후 조선의 독립문제는 2차 대전 종전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구 진영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이 3.1운동과 조선의 독립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일반적인 국제 관행에 비춰 이례적인 것으로 그 배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미국의 조선 독립에 대한 비상식적 태도는 미국과 일본이 지난 1905년 동경에서일본의 한국 강점,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 비밀협약으로 알려진 카스라 데프트 협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근거의 하나가 된 것은 미국이 1951년 일본 등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문제를 누락했기 때문인데 이 또한 카스라 데프트 밀약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1951년 9월 맺은 조약으로 한반도의 독립을 승인하고 대만과 사할린 남부 등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강의 전승국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이 1905년 강탈한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언급치 않아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한반도 전쟁이 발생하면서 미군이 참전했고 정전협정으로 총성은 멎었다. 하지만 평화협정 추진이 60년 넘게 미뤄지면서 오늘날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 상태가 연중무휴로 지속되고 있다. 평화통일의 주장은 높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이런 애매한 태도 또한 카스라 데프트 밀약에 담긴 내용을 여전히 중시하는 태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면서도 한일 두 나라의 역사문제 등을 둘러싼 대립을 멈추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패권전략에 한일 두 나라의 공동 참여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해군은 3.1절 다음날인 2일부터 시작되는 독수리 연습의 일환으로 한국 남해와 서해, 동해상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연이어 실시할 예정이고 북한은 침략전쟁 연습이라고 연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세계는 불안한 시선으로 한반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지는 않지만 관계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깊은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3.1독립운동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성찰이 절실히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에 실렸습니다.



태그:#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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