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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동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당집에 풍물패들이 모여있다
▲ 당집 고색동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당집에 풍물패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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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에 보면 '충청도 풍속에 횃불싸움이 있다. 또 동네별로 편을 갈라 동아줄을 서로 힘껏 잡아당기는데 이것을 줄싸움이라고 하며, 경기지방 풍속도 이와 같다'고 적고 있다. 줄다리기는 색전(索戰), 발하희(拔河戱), 혈하희(絜河戱), 색희조리희(索戱照里戱), 갈전(葛戰) 등의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기는 쪽이 풍년을 차지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 풍속편 인색(引索 : 줄다리기)에는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의 정월 15일  풍속에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 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양쪽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이 들로 갈라 서로 잡아당기어 승부를 가른다. 이기는 편이 풍년이 든다고 말하는데, 이를 줄다리기라고 한다'고 했다.

<형초세시기>에는 한식의 행사로 타구(打毬), 추천(鞦韆 : 그네뛰기) 시구지희를 들었는데, 주(注)에 시구지희는 대나무껍질 등으로 동아줄을 꼬아 수리에 걸쳐놓고, 북을 치고 떠들면서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견문록에도 발하(拔河)라고 하여 정월 15일에 대나무껍질로 만든 큰 줄을 사용하였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줄다리기를 말하는 것이다.    
 
제관들이 당집 안에서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고사를 올린다
▲ 당고사 제관들이 당집 안에서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고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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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동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과 잡색들
▲ 줄 고색동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과 잡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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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와도 줄다리기는 그치지 못해

고색동의 줄다리기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해졌으나, 요즈음은 보름 전후의 날을 잡아 일요일에 줄을 당긴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1900년대만 해도 근동 30여 개 마을에서 풍장패를 끌고 나와 참여를 하는 큰 줄다리기였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 때는 줄을 다리지 못하자 마을에 흉사가 끼고 평안하지가 않아, 몰래 줄을 당기고는 했다고 한다.

1987년까지도 고색동의 줄다리기는 연이어져 왔다. 그 후 줄이 불에 타서 소실이 되고 마을이 급격히 도시화하면서 줄다리기가 중단이 되었다가, 고색동 청년회가 전통문화의 승계를 위해 1995년 줄을 새로 제작하고 복원하여 보름을 전후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타지의 풍물패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기와 북잽이가 나가 영접을 하는 북을 울리고 있다
▲ 정고 타지의 풍물패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기와 북잽이가 나가 영접을 하는 북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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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동 줄다리기는 마을에 있는 당집에서 당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1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고색동 당집에 풍물패들이 당도를 했다. 제관들이 당안에 들어가 술을 따라 올린 후 줄다리기를 한다고 고하는 당고사를 지낸 후 그 자리에서 제물을 나누어 음복을 한다.

당집 앞에서 만난 사단법인 고색개발위원회 신호정 위원장은 "우리 고색동 줄다리기는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반드시 당깁니다. 줄을 당기지 않으면 마을이 편치가 않기 때문이죠"라고 한다. 그만큼 고색동 줄다리기는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타지의 풍물패들을 인도하여 들어오고 있다
▲ 영접 타지의 풍물패들을 인도하여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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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으로 풍물패를 불러들이는 '정고'

10시 30분쯤에는 풍물패가 줄을 다릴 장소로 길놀이를 하고, 이어서 이날 줄다리기에 합류하는 대유평농악대와 수원농협 주부대학의 고향소리패 농악대가 줄을 늘여놓은 곳에 당도를 했다. 이들은 바로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외지의 농악대가 마을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는데 이를 '정고(旌鼓)'라 한다.

정고란 기(旗)와 북(=鼓)을 이르는데, 마을에 있는 고색농악대의 영기를 양편에 앞세운 고수가 북을 매고 이들을 맞으러 나간다. 먼저 마을을 방문한 농악대에서 북을 울려 신호를 보내면, 마을의 고수가 함께 북을 쳐 답례를 하고 이들을 마을 안으로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렇게 이곳을 찾은 농악대마다 정고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제관들이 줄을 당겨도 탈이 없기를 기원하는 줄고사를 올리고 있다
▲ 줄고사 제관들이 줄을 당겨도 탈이 없기를 기원하는 줄고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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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고사를 지낸 후 이어진 마당놀이

풍물패들이 줄을 늘여놓은 안으로 들어오자 암줄과 수줄을 마주대고 그 위에 북어 한 마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큰 그릇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제관들이 줄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줄고사는 줄을 당기기 전에 먼저 마을에 우환이 없고, 줄을 당겨도 다치는 이들이 없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줄고사를 마치고 각종 공연으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줄고사를 마치면 바로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주민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놀이마당을 연 것이다. 먼저 고색동농악대가 판굿을 펼친 후 고향소리패 농악공연, 춤이랑의 소고춤, 삶터의 비나리, 대유평 농악공연, 모듬북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색동 줄다리기에는 줄 위에 냠녀복색을 한 편장이 올라탄다
▲ 신랑신부 고색동 줄다리기에는 줄 위에 냠녀복색을 한 편장이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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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장을 올라타고 줄놀이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 줄놀이 편장을 올라타고 줄놀이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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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동 줄다리기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잔치국수를 제공한다. 고색개발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이 잔치국수는 부녀회에서 준비를 했다. 이런 과정을 다 마치고나면 개회선언을 하고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줄에는 각각 남녀가 편장으로 분해 올라타게 되며 암줄과 수줄을 결합한 후 사이에 비녀를 질러 줄이 빠지지 않게 한다.

마을에서 신랑·신부라고 하는 올해 줄 위에 오른 편장은 신랑은 김대민(남, 21, 동남보건대) 이 신부는 조동현(남, 21, 용인대)등이 맡았다. 징소리가 나면 양편이 서로 줄을 당기는데 암줄에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수줄에는 남자들이 붙어 당기게 된다. 줄은 모두 세 번을 당기면 여자 쪽인 암줄이 승리하게 된다.

암줄과 수줄을 결합한 후 줄이 빠지지 않게 비녀(장목)를 끼운다(자료사진)
▲ 비녀끼우기 암줄과 수줄을 결합한 후 줄이 빠지지 않게 비녀(장목)를 끼운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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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모두 세 번을 다리는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자료사진)
▲ 줄다리기 줄은 모두 세 번을 다리는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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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다리기에서 여자가 이기는 까닭은 여자는 생산을 하기 때문에,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 때문이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전해져 온 고색동 줄다리기.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주민들에게 온 한 해도 무사태평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네이버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색동, #줄다리기, #당고사, #줄고사, #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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