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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을 둘러싼 오해

"공정무역은 경제적 여력이 넉넉한 중산층 이상의 운동인 줄 알았어요."

얼마 전 술자리에서 노동운동가 한 분이 던진 이야기다. 오해를 가져온 이유는 첫째 가격이 비싸서고, 둘째 부르주아적 운동으로 보여서다.

비싸다는 인식엔 반문이 필요하다. 대량생산이나 규모의 경제가 강조되고 대형유통기업 등이 제공하는 낮은 가격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계절마다 유행을 바꾸며 싼 옷을 무더기로 판매하는 이른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시장을 보자. 5000원짜리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기 위해 이름 모를 아시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혹사된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가 밀집한 라나 플라자 붕괴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자 1135명이 사망했고 2500여 명이 다쳤다. 유족들은 현재까지 제대로 된 배상을 못 받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계의 투쟁이 시작됐고 월 4만 원 정도였던 최저임금이 7만 원으로 인상된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알 만한 한국 의류기업은 이조차도 채산성 악화로 평가하며 우는 소리를 낸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싼 옷은 '득템'일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은 그만큼의 위험과 고통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운동이 아니냐는 오해는 소비국에 설정된 상품 포지션과 세련된 마케팅 전략의 영향으로 보인다. 공정무역 상품판매가 곧 생산자 이익과 직결되는 만큼 시장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해 그 폭을 넓혀야 할 때기도 하다. 반면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생산국에서 공정무역운동은 목숨을 건 투쟁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와도 닮았다.

정부의 사찰과 감시가 이어지고 조작과 모략으로 투옥되고 심지어 생명도 잃는다. 실제 작년 3월 필리핀에선 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 로메오 카팔라 의장이 괴한들이 쏜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권단체와 공정무역단체들은 "사회정의와 노동자, 농민들의 빈곤문제를 공정무역으로 해결해 온 로메오 의장이 군부와 경찰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며 정치적 암살로 규정한다. 

세월호 참사 1년 전인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밀집건물인 라나플라자가 붕괴돼 현지 노동자 1135명이 목숨을 잃었고, 2500여명이 다쳤다.
 세월호 참사 1년 전인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밀집건물인 라나플라자가 붕괴돼 현지 노동자 1135명이 목숨을 잃었고, 2500여명이 다쳤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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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적 한계는 있다

공정무역은 최근 10년간 매해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 최악의 금융위기였던 2008년과 그 다음해에도 약 15%가 신장됐다. 그러나 세계무역시장 전체를 놓고 볼 때 0.01%도 채 되지 않는 미약한 수치다. 2013년 공정무역이 걷어 들인 소매매출은 약 6조6500억 원(FLO), 같은 기간 미국계 유통기업 월마트 매출이 500조 원 규모니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약 110억 원을 기록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사는 울산의 웬만한 중견기업 매출에도 아직 미치지 못한다.

성장 방식을 두고 업계 내부 논쟁도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은 대기업들의 공정무역 마케팅 도입에 있다. 1980년대 후반 공정무역시장 확대를 위해 인증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부 다국적기업들의 참여도 늘어났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 대기업들의 참여 요건을 완화하자는 쪽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 마찰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미국(Fairtrade USA)이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도 인증을 시작하면서 유럽과 갈라선다. 공정무역은 바나나와 면화 등 플랜테이션 농업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기존 산업을 제외하고 소규모 재배 중심인 커피 같은 부문에서 소농 중심으로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계지점들이 몇몇 존재하지만 공정무역은 여전히 불공평한 무역에 맞선 주효한 대항이다. 소비와 자본 중심의 시장에서 생산자와 노동자들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제기되는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지속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근 기후변화대책에 생산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생활임금 도입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높이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2014년 3월 필리핀 공정무역운동가인 로메오 카팔로 PFTC 의장은 시장에서 괴한이 쏜 총격에 사망했다. 군부와 경찰을 배후로 한 정치암살로 추정된다.
 2014년 3월 필리핀 공정무역운동가인 로메오 카팔로 PFTC 의장은 시장에서 괴한이 쏜 총격에 사망했다. 군부와 경찰을 배후로 한 정치암살로 추정된다.
ⓒ 아이쿱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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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악순환을 끊기 위한 경제투표, 소비

공정무역이 홀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정치권이 동참하는 것이다. 무역조건과 협상의 주요 행위자인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유럽의회의 경우 시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설국열차가 순환하는 국제정치경제 구조에서 강도 높은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앞서 소개한 지극히 낮은 수치와 규모에서 확인되듯, 신자유주의자들이 공정무역을 가만히 두는 이유는 공감해서가 아니라 전혀 두렵지 않아서다. 

다양한 사회운동과 다수 시민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소비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생태환경운동가들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제3세계 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영역은 공정무역단체들과 협업을 통해 시장을 넓혀야 한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부터 당장 살펴봐야 하고, 윤리적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착취를 멈추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자유분방한 시장에서 소비는 시민이 민주적 경제구조를 선택하는 가장 큰 투표방식이다.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무역 악순환을 끊는 투쟁을 가난한 이들에게만 맡길 순 없다. 함께 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공정무역, #소비, #노동,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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