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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아~ 엄마야. 이제 3학년이니까, 동생들도 많이 생겼을 텐데 기분이 어때? 엄마는 아침마다 옆 동 1학년 동생 손잡고 학교에 가는 네 모습을 보면서 유진이가 부쩍 자란 느낌이 들어. 방학 동안 엄마랑 떨어져 지낸 탓일까?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엄마 오늘 나 올 때 집에 있어? 없어?"하고 묻는 너에게 있을 거라고 약속해 놓고 거의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줄까하는데 들어볼래?

유진이 하고 열두 살 차이나는 언니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면 엄마 아빠가 학교에 점심값을 냈어. 그런데 유진이가 입학하고 이번 달까지는 엄마 아빠가 낸 세금으로 급식을 했기 때문에 따로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되었지.

홍준표 경남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 경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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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이 경상남도 안에 있는 건 알지? 경상남도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하는 곳이 경상남도청이라는 곳인데, 그곳엔 홍준표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셔. 그분은 경남도청에서 제일 높은 분이시지. 사람들은 홍준표 할아버지를 경남도시자라고 부른단다. 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있고, 대통령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도지사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을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모두 엄마나 아빠 같은 평범한 국민들이 뽑는 거란다. 그냥 하고 싶다고 손을 들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나 도민들에게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어떤 일들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해. 어른들은 그걸 '공약'이라고 불러. 유진이가 봉사위원 될 때 했던 걸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 될 거야.

무상급식 약속 믿고 홍준표 도지사 뽑아준 건데...

지난해 도지사가 되고 싶다고 나온 홍준표 할아버지도 엄마 아빠가 낸 세금으로 유진이 또래 아이들에게 계속 밥을 주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지금은 돈을 내고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언니들도 돈 안 내고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었어. 엄마나 아빠, 다른 도민들은 그 약속을 믿고 도지사로 뽑아주었지.

그런데 홍준표 도지사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말했어. 4월부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 빼고는 모두 돈을 내야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하겠단 거였어. 지난주에 유진이 네가 받아온 안내장 기억나니? 거기엔 '무상급식이 4월부터 유상급식으로 전환됩니다'라고 적혀 있었지.

엄마랑 아빠가 '세금'이란 이름으로 이미 돈을 냈는데, 다시 돈을 내라니... 유진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미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샀는데, 다시 돈을 내라는 과연 이건 정당한 걸까? 엄마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어. 어른이 돼가지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한 약속을 어기다니, 그건 어른이 아이들을 상대로 할 일이 아니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볼게. 유진이 친구 모두 엄마 아빠가 계시는 건 아닐 거야. 할머니나 할아버지랑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유진이보다 가정형편이 조금 더 나은 친구도 있고 안 좋은 친구들도 있어.

자, 생각해보자. 친구들이랑 급식시간을 떠올려봐. 형편이 다 다른 친구들이라도 급식 시간엔 똑같은 밥과 반찬을 먹어. 그런데 돈을 또 받게 되면 컴퓨터로나 읍사무소 같은데 가서 "우리 집은 급식비 낼 형편이 안 됩니다"라고 하며 엄마나 아빠가 서류를 내야 해. 또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구분하는 일도 생길 수 있어.

엄마가 집에 못 있는 이유, 무상급식 철회 때문이야

홍준표 경남지사가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한 가운데,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무상급식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며 지난달 5일 오전 경남도청 민원실에 '경남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신청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한 가운데,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무상급식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며 지난달 5일 오전 경남도청 민원실에 '경남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신청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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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집은 그럴 형편은 아니지만 입장을 바꿔서 한 번 생각해보자. 어떨 것 같아? 엄마 생각엔 우리 집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속상하고 엄마의 친한 친구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속상할 것 같아. 더 속상한 건 도지사 할아버지가 유진이와 친구들 급식비로 쓰려고 만들어 둔 돈을 형편이 안 좋은 친구들이 EBS를 볼 수 있게 하는 데 쓸 거라고 한 점이야. 홍준표 도지사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학교 가지, 밥 먹으러 학교 가나"라고 한 것도 엄마는 너무 속상했어.

유진이가 엄마에게 "공부 잘 하는 게 좋아? 건강한 게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가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 당연히 건강이지. 어떤 엄마들은 유진이보다 어린 동생들조차 학원을 몇 개씩 보내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시키기도 하지만, 대다수 엄마들은 아이들이 마음 따뜻하고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

그런 엄마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서 지금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있어. 무상급식의 중요성을 알리려 매체들과 인터뷰도 하고 도청에 항의하러 가기도 하고 말이야. 물론 상황을 잘 모르는 엄마들을 위해 학교 앞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른 엄마들에게 알리는 일도 하고 있어.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이유는 유진이랑 친구들이 계속 차별 받지 않고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야.

집에서 유진이 기다리며 쿠키도 만들고 고구마를 굽는 것도 좋겠지만, 엄마는 유진이와 친구들의 급식을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하고 그게 더 너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엄마가 요즘은 좀 바빠.

그렇다고 유진일 덜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지? 유진인 이마에 빛나는 보석을 가진 특별한 아이라고 설명해 주었잖아. 사실은 집에서 엄마 노릇을 하기도 벅찬데 밖에 나가서까지 활동을 하려니, 요즘 좀 힘드네. 오늘은 유진이가 엄마를 꼬옥 안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사랑해 이유진.


태그:#홍준표, #무상금식,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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