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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열심히 봤는데
▲ 너덜너덜해진 모집공고 얼마나 열심히 봤는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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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세주택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 강동구의 집값과 비교하면 새 아파트에 그 가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혜택이었다. 더구나 이번 차수에 장기전세주택을 얻을 수 있다면, 입주 시기도 현재 우리 전세 조건과 맞았다. 굳이 한 번 더 이사를 할 필요 없이 새 아파트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처음 장기전세주택 제도를 떠올렸을 때 우리 부부는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잘 되겠거니 했었다. 강동구의 전세난을 체감한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장기전세는 그나마 그중에서도 확률이 높은 편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아이가 셋이고, 가계 수입도 내가 사회적경제 분야로 직장을 옮긴 뒤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제29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이라는 문건을 대충 훑어본 후, 공급현황에 나와 있는 아파트 중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입주 물량 중 양천구 목동의 푸르지오 61세대만이 신규 모집이었지만, 공가(空家·빈집)로도 229세대가 나온 터라 우리가 지원할 곳은 꽤 돼 보였다. 설마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가 들어갈 곳 하나 없을까?

빨간 펜을 들고 목동센트럴 푸르지오, 마곡지구, 상암월드컵파크, 세곡리엔파크, 송파파크데일, 은평뉴타운 등 뉴스에서나 들었던 아파트들에 열심히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데, 장기전세주택에 빠삭한 친구와 전화를 하던 아내의 얼굴색이 하얘지면서 그런 나를 제지했다. 그 많은 아파트들에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군데만 골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장기전세주택이 운도 좋아야 한다고 하는 거구나.

장기전세주택을 한 곳만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을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나 환경 등인데 당첨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려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이러니 많은 사람들이 장기전세주택을 정보의 싸움이라고 하는 거구나. 공가가 많은 곳은 그만큼 사람들이 몰릴 것이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공가가 거의 없는 곳에 넣자니 또 그만큼 경쟁률이 높을 것 같고.

도저히 어디를 선택할지 몰라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반응들이 한결 같았다. 아이가 셋이나 되면서 지금까지 장기전세주택을 알아보지도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신청하고 있는 줄 알고 우리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람들. 그들에 따르면 첫째를 허니문 베이비로 낳고 연달아 둘째와 셋째를 낳은 우리 집의 경우 지난해까지 신혼부부 특혜와 다자녀 특혜까지 받아 100% 장기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호라 통제야!

그래서 우리의 점수는 몇 점?

1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고 웃는지
▲ 장기전세 가점기준표 1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고 웃는지
ⓒ S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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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내와 나는 모집공고에 나와 있는 우리의 점수를 다시 체크했다. 서울특별시 거주기간 항목은 5점, 무주택기간 항목은 4점, 세대주(신청자) 나이 항목은 2점, 부양가족수 항목은 4점, 청약저축 납입횟수 1점, 소득기준(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 항목은 5점. 도합 23점.

자료를 살펴보니 23점은 어중간한 점수였다. 결코 낮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장기전세주택을 얻기에는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한, 운이 좋아야 선택되는 그런 점수였다. 신규 모집이 대량으로 나왔을 때는 18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공가가 나왔을 시는 평균이 25점 이상이었다.

우리 부부는 혹시라도 점수를 더 높일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봤다. 나이를 비롯해 부양가족수 등은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거나 변동이 있을 수 없는 조건이었으나, 두 가지, 즉 청약저축과 소득수준만 그나마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항목이었다.

소득 수준이야 내가 50%의 연봉삭감을 감수하고 사회적경제 분야에 있을 것이라고 아내와 약속한 것이 1년 3개월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이 점수를 유지한다고 치자.

문제는 청약저축이었다. 결국 언제 청약저축을 시작했느냐 혹은 청약저축에 얼마나 주기적으로 돈을 입금했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우리는 이 항목에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었다. 어머니가 2006년부터 내 이름으로 들어놓으신 뒤 2009년 결혼 때 주셨던 청약저축을 2년 뒤 1000만 원 올려달라는 전셋값에 톡 털어 썼던 것이었다.

장기전세주택을 신청하리라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때, 우리는 청약저축의 소중함을 전혀 몰랐었다. 그 통장을 계속 가지고 있었더라면 최소한 3점은 더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장기전세주택에 들어갈 확률도 더 높아졌을 텐데…. 오호라 통제야!

우리은행 주택청약종합통장.
 우리은행 주택청약종합통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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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을 갈까? 아니면 마곡?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내와 나는 우리가 갈 만한 곳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 부부가 주목한 곳은 목동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는 턱없이 비싼 곳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경쟁률이 낮을 듯 했고 목동 장기전세주택은 290세대 중 유일하게 3자녀 혜택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게다가 목동은 위치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조금 멀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고 현재 직장을 다닐 수 있으며, 본가인 화곡동과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은근히 목동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들뜬 아내. 그러나 이런 아내의 바람은 목동 옆, 문래동에서 살았었던 친구와의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 친구는 장기전세주택에 빠삭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듣더니 목동은 아내가 절대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직언해줬다.

"처음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든 구한다고 치자. 그럼 2년 뒤에는? 안 그래도 목동 사람들이 주위 전세보다 장기전세주택 가격이 너무 싸게 나왔다고 난리던데, 주위 시세의 5~10%만 올려도 2000만 원이야. 그 돈을 2년 마다 낼 수 있겠어?"

친구는 또한 돈 외에도 우리가 목동에 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바로 교육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청난 사교육을 받고, 옷을 입어도 대부분 명품을 걸치는 목동에서 물려받은 옷을 입히고, 특별히 가르치긴 보다는 풀어놓고 키우는 우리가 버틸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혹여 부모가 흔들리지 않아도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러 학원을 가겠노라고 하면 과연 어떤 부모가 아무렇지도 않게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아내와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목동을 포기하기로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 어마어마한 경쟁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 S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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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우리가 살펴본 곳은 마곡지구였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라는 마곡. 그곳은 목동만큼 비싸지 않았고, 공가도 많아 비교적 확률도 높아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강동에서 살다가 강서로 가면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했지만, 내가 결혼 전 30년 강서에서 살면서 그 근처 중학교를 나왔고, 우리의 신혼집도 오류동이었고, 본가도 얼마 멀지 않은 화곡동이기에 적응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현재 다니고 있는 나의 직장과 마을극단 등을 하고 있는 아내의 생활권이었는데 막상 강서로 옮길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출퇴근하는 데 전철로만 1시간 20분. 그동안 아이 셋을 혼자 돌봐야 하는 아내로서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이끌고 강동구로 오기에는 더더욱 긴 시간이었다. 게다가 아내는 멀리 이사를 하게 되면 까꿍이가 지금 다니는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우리는 마곡지구도 포기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공가일 뿐이니, 8월로 예정돼 있는 신규 모집에는 다시 한 번 지원하기로 했다. 그 모집의 입주 기간이 되면(6개월 정도 걸리므로) 까꿍이의 유치원 졸업과도 맞을 것이며, 내가 강동의 지금 직장에 꼭 다녀야 하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 점수로는 신규에 될 가능성이 높다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택한 강동

강동구 공가를 빌며 달집태우기를 하는 까꿍이
▲ 2단지 되게 해주세요 강동구 공가를 빌며 달집태우기를 하는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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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도, 마곡도 포기한 우리 부부. 그럼 어디를 지원해야 할까? 아내는 강동구를 주장했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290세대 중 1세대였는데 아내는 기어이 그곳을 지원하겠노라고 했다. 지금의 생활권에도 변동이 없고, 까꿍이의 학교도 혁신초등학교로 갈 수 있는 그곳이 최상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덜컥 그 공가를 보고 오기까지 했다.

물론 아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현재 우리 삶의 궤적을 따지다 보면 조건 상 강동구가 최선임은 분명했다. 다만 문제는 확률이었다. 이렇게 극심한 전세난에 시달리고 있는 강동구에서 우리 점수로 그 곳에 당첨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혹시 모르니 강동구를 지원하자고 했고, 가능성 높은 지원은 8월에 하자고 했다. 그때쯤 되면 우리의 조건도 맞아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번 차수를 포기하면 적어도 두 번의 이사를 더 해야 했지만 촉박한 시간에 떠밀려 잘못된 선택을 하느니, 가능성이 높을 때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장기전세주택은 이전에 계약 사실이 있는 경우 6점 이상의 감점을 당하니, 어쨌든 한 번 지원할 때 최선을 지원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금 강동구의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한 우리 부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강동구를 선택해 인터넷 청약을 넣었고, 서류심사 대상자 발표를 기다렸다. 드디어 3월 12일 13시, 서류심사 발표. 강동구 경쟁률은 192대 1이었는데, 최소지원점수는 무려 28점이었다. 28점이라. 물론 꿈도 꾸지 않았었지만 막상 그 숫자를 보니 절망적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집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태그:#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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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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