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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이창근 쌍용차노조 기획실장이 92일째 굴똑농성중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앞에서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응원하는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가 전국각지의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공장벽과 굴뚝에 '우리 살자' '사랑해' 글씨가 비춰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이창근 쌍용차노조 기획실장이 92일째 굴똑농성중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앞에서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응원하는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가 전국각지의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공장벽과 굴뚝에 '우리 살자' '사랑해' 글씨가 비춰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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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늘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눈이 내리면 비가 내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기온이 영하에서 영상으로 바뀌면 '다행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비까지 내리는 날에는 온종일 마음이 춥고 떨렸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괜찮다, 걱정마라." 굴뚝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굴뚝 위 아래서 우리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하늘만 쳐다볼 수 없었던 해고자들은 새해가 되자마자 땅바닥을 기었습니다. 온몸에 얼음이 박히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매번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처지에 서글픔이 앞섰습니다. 온몸에 휘도는 냉기보다 길 위에 엎드려 있던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들이 더 매섭고 추웠습니다. 한없이 높던 평택 굴뚝과 한없이 낮던 서울 땅바닥에서 해고자들은 한겨울의 새해를 그렇게 견뎠습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배우 김의성씨가 1인 시위를 시작했고, 부산역에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굴뚝을 기억하는 마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어받은 이들이 피켓을 함께 들었습니다.

해고자들의 가족들은 정한수를 떠다 놓고 기도하는 것처럼 매일 같이 굴뚝 위로 밥을 지어 올렸습니다. 주말마다 굴뚝으로 올리기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 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해고자들과 늘 함께했던 시민과 해고의 아픔을 묵묵히 견뎌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굴뚝 앞을 지켰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많은 이가 굴뚝 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굴뚝 밑에서 보내는 응원은 70m 굴뚝 위의 그들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고 굴뚝 밑 해고자들은 믿었습니다.

쌍용차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요구하며 101일째 굴뚝농성을 벌인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쌍용차 해고노동자)이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풀고 내려오기로 한 가운데, 이 팀장을 격려하는 자물쇠들이 철조망에 걸려있다.
▲ 쌍용차, 철조망에 걸린 '희망 자물쇠' 쌍용차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요구하며 101일째 굴뚝농성을 벌인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쌍용차 해고노동자)이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풀고 내려오기로 한 가운데, 이 팀장을 격려하는 자물쇠들이 철조망에 걸려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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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음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은 굴뚝으로 마음을 모아달라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력화된 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꿈꾸던 이들을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싸우는 곳곳이 굴뚝이었습니다. 어떤 곳은 위태롭게, 어떤 곳은 절박하게, 혹은 우직하게, 다른 빛깔과 모양의 굴뚝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지켜야 할 굴뚝이 중요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지만, 내 피붙이 같은 이들이 하루속히 안전하고 건강하게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초조했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시간은 묵묵히 그리고 속절없이 지나갔습니다. 굴뚝 위 이들을 여전히 쳐다만 봐야 했던 해고자들에게는 죄책감과 공허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봄을 맞는 소리로 아우성쳤지만, 해고자들의 마음은 내내 겨울이었습니다. 해고자들은 봄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자전거를 탔습니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부터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으로, 서울 LG-SK 통신비정규직 고공 농성장에서 평택 쌍용차 굴뚝으로, 매일 100km씩 700km 넘는 거리였습니다. 페달을 밟는 다리가 무뎌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엉덩이로 자전거에 몸을 실어 세찬 바람과 현기증 나는 고갯길을 넘어 묵묵히 굴뚝으로 향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굴뚝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증명해냈습니다.  

"또 와요"

쌍용차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요구하며 101일째 굴뚝농성을 벌인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쌍용차 해고노동자)이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풀고 내려오기로 한 가운데,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굴뚝을 바라보며 이 실장이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고 있다.
▲ 무사귀환 바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쌍용차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요구하며 101일째 굴뚝농성을 벌인 이창근 '와락' 기획팀장(쌍용차 해고노동자)이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풀고 내려오기로 한 가운데,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굴뚝을 바라보며 이 실장이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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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그런 바람과 간절함이 모여 92일 만에 굴뚝 앞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제주 강정 주민과 용산 유가족들이, 밀양 주민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그리고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함께 한 우리는 쌍용차 26명의 희생자 명예 회복과 187명의 해고자 복직을 약속했습니다.

약속을 상징하는 자물쇠를 굴뚝 앞에 매달고 지난 7년간 쌍용차 해고자들과 마음 나눈 이들이 준비한 음식, 노래, 그림, 뜨개질, 책 읽기, 사진, 영상과, 시 낭송, 이야기와 기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 굴뚝에 있던 이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서 있는 그곳이 굴뚝임을 증명하러 온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의 당연한 말로 내 어리석음과 초조함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했고 굴뚝에선 "또 와요"하며 오래 손을 흔들었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절박함을 증명했던 101일간의 굴뚝 농성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7년의 싸움과 101일간의 절박함이 만든 교섭으로 이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뿐입니다. 해고자들은 실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다행입니다.

김정욱, 이창근 그들이 살아 내려와 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행입니다. 또 누군가를 앞세우지도, 떠나보내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희망을 찾기 위한 한 발을 내디딜 것이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한 발을 또 내디딜 것입니다.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물쇠를 걸었던 마음들을 믿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에게 손을 흔들 것입니다.

"또 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동민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입니다.



태그:#쌍용차, #굴뚝농성, #희망행동, #김정욱,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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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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