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구토, 전신쇠약, 백혈구와 혈소판 감소증, 심장질환, 근육통과 관절통.

이것은 암의 증상이 아니다. 항암제에 적힌 부작용이다. 그래서 암 환자와 보호자는 길고 우울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혹 생길 수 있는 항암제의 부작용에 관해서 말이다.

전이가 진행된 환자(4기) 대부분은 임상시험으로 항암을 시작한다. 임상시험이란,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목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다. 치명적인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지만,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인 거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무작위로 만든 대조군은 '진짜 약을 받을 그룹'과 '위약(가짜약)을 받을 그룹'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약을 받는지 알 수 없다. 윤리적인 차원에서 철저한 비밀이며, 이는 의사도 모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가짜 약을 주는 상황에 '윤리적'이라는 말이 참 부질없다. 실험용 쥐가 된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환자는 살기 위해 약을 삼킨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포스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포스터 ⓒ (주) 나이네스엔터테인먼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4)>의 론 우드로프도 그랬다. 전기감전으로 실려 간 병원에서 에이즈진단을 받고, 살 수 있는 날이 3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난잡한 성생활에 술과 마약, 로데오 도박으로 시간을 보낸 그였지만, 게이도 아닐뿐더러 그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보다 에이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는 달력을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도서관에서 HIV(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고, 의학 학술지에 소개된 신약을 알게 된다.

AZT는 제약회사에서 FDA에 승인을 받기 위해 임상시험 중인 에이즈 치료제다. 론은 AZT를 처방받으려 했지만, 위약대조군에 걸리면 그마저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 게 되자, 암거래를 통해 AZT를 대량 복용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약을 구할 수 없자 멕시코의 불법 의사를 찾는다.

그곳에서 론은 AZT의 실체를 알게 된다. 제약회사의 로비로 FDA의 승인을 받게 되는 AZT는 면역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병세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말이다. 론은 멕시코 의사에게 비타민 등의 다른 치료제를 받고,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회원제로 클럽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약을 나눠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알게 된 게이, 레이온 덕분에 많은 환자들이 클럽에 가입하고, 론은 갖은 방법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그리고 미국에서 허가 받지 못한 약들을 구해 환자들에게 공급한다. 부작용은 덜 하고 효과가 좋은 약으로 말이다.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은 병원보다 더 나은 약을 받기 위해 클럽을 찾는다.

생존을 위해 벌이는 론과 FDA의 싸움

게이를 끔찍하게 경멸했지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 레이온의 죽음을 맞으며 론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치료와 돈벌이가 아닌,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위해 일한다. 쾌락만을 누리던 그가 사회적 약자들을 이해하고 제도와 맞서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 국세청과 FDA(식품의약국)는 모든 약을 수거해 간다. 생존을 위해 벌이는 론과 FDA의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진다. 거대 제약사와 FDA를 상대로 한 소송은 기각되지만 "약자를 무시하고 안전한 약물도 인정 안 하는 이기적인 FDA의 정책에 본 법정은 불쾌하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론이 주장한 처방과 복합약물요법이 널리 사용되면서 수백만 명의 환자들은 생명을 연장한다"는 자막이 나온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1985년 에이즈에 걸린 론 우드로프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그는 미국 FDA와 제약회사에 맞서 '에이즈에 관한 자율 처방 권리'를 주장했던 실존 인물이다. 론은 30일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 후로 7년을 더 살아냈다.

극중 임상을 주도하던 의사는 "그들은 어차피 죽을 것이니 장기적인 영향력은 알 수 없다" 는 말을 한다. 이는 에이즈 뿐 아니라, 많은 중증환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환자는 치료약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치료확률이 높다고 보도된 약을 원해도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면 방법은 없다. 승인과 규제로 인해 환자들은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다.

제약사의 로비와 식약처의 갑질이 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그들의 이권 사이에는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환자들의 증상개선과 생존율을 위해서다.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신약의 상용화를 서두르고, 외국에서 시술되는 신약을 허가해야 한다. 위중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치료받을 권리의 보장이다.

덧붙이는 글 인권위 <별별이야기>에도 송고합니다
임상시험 달라스바이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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