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내기 홈런 친 브렛 필 29일 오후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9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KIA 필이 끝내기 역전 2점 홈런을 치고 있다. KIA는 오늘 경기를 7대 6으로 승리하면서 개막전 이후 2연승을 이어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흔히 KBO리그에서 외국인 타자라고 하면 커다란 덩치와 조금은 험상궂은 인상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초창기의 타이론 우즈가 그랬고, 작년 시즌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꼽히는 에릭 테임즈(NC다이노스)가 그렇다.

이는 '거포형 외국인 타자'를 선호하는 국내 구단들의 '취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아무래도 장거리형 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경우가 많다. 자신의 성격과는 별개로, 상대 투수에게 더욱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수염을 기르는 등 후천적으로 인상을 바꾸는 노력도 한다.

이런 강인한 외국인 타자들 사이에서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순박한 인상으로 상대 투수들을 방심(?)하게 만드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얼굴만 보고 편하게 상대했다간 '험한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KIA 타이거즈의 2년 차 외국인 타자 브렛 필이 그 주인공이다.

부상과 외국인 제도로 36경기에 결장했던 필의 2014년

필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6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11년 9월 엔트리 확장 때 빅 리그에 데뷔한 필은 아주 강렬하게 빅 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해 9월 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한 필은 빅 리그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데뷔전의 상승세를 오랫동안 이어가지는 못했다. 필은 브랜든 벨트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대타 요원으로 전락했다.

2013년에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다저스)과의 맞대결이 아쉽게 무산되기도 했다. 9월25일 샌드란시스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류현진은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 때 브루스 보치 감독은 필을 대타로 기용했지만, 돈 매팅리 감독이 곧바로 브라이언 윌슨으로 투수를 교체하는 바람에 류현진과 필의 빅 리그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필은 작년 시즌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로 진출했다. 당시 KIA는 샌프란시스코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필을 영입하기 위해 적잖은 이적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은 시즌 개막 후 맹타를 휘두르며 빅 리그 출신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3명 보유 2명 출전'이라는 외국인 규정이 필의 발목을 잡았다. 외국인 투수 하이로 어센시오를 마무리로 활용하던 KIA는 외국인 선발 투수가 등판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필을 선발명단에서 제외해야 했다.

게다가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손등 미세골절 부상을 당하며 전반기를 통째로 날려 버리고 말았다. 결국 필은 작년 시즌 92경기 출전에 그치며 시즌을 마감했고 KIA 역시 2년 연속 8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개막 2경기서 2홈런 5타점, 착한 인상에 속으면 큰일난다

중심타자로 배치하는 외국인 타자에 대한 '최소 기대치'는 20홈런 80타점이다. 하지만 작년 시즌 필은 타율 .309 19홈런 66타점을 기록했다. 부상과 외국인 규정 때문에 풀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외국인 선수의 성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KIA는 필과 총액 70만 달러에 재계약을 체결했다. 3할을 때릴 수 있는 외국인 타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필이 풀시즌을 소화할 경우 작년보다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208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만 해도 필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믿음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필은 개막 2경기 만에 그 걱정과 의심을 믿음과 환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필은 지난 28일 LG 트윈스와의 개막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비록 득점 장면에 직접 기여하진 못했지만, 필의 2루타와 기습적인 3루 도루는 호투하던 LG선발 헨리 소사의 '멘탈'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필의 진가가 발휘된 경기는 29일 2차전이었다. 필은 0-2로 끌려가던 3회 말, LG 선발 임지섭을 강판시키는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렸고, 5-6으로 뒤지던 9회 말에는 LG의 마무리 봉중근을 상대로 끝내기 투런 홈런을 작렬했다. 한 방은 당겨서, 한 방은 밀어서 만든 홈런이었다.

필은 개막 2연전을 통해 수비에서도 여러 차례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29일 경기 5회 초 이병규(9번)의 1루 땅볼을 병살로 처리하는 플레이는 필의 집중력과 센스가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장면이었다. 바로 직전 상황에서 KIA가 요구한 합의 판정이 실패로 돌아간 후 만들어낸 병살 플레이라 그 가치는 더욱 컸다.

필은 뛰어난 실력뿐만 아니다 인품과 친화력까지 두루 갖춘 외국인 선수다. 작년 시즌 친하게 지내던 젊은 선수들에게 스파이크를 선물했던 일은 KIA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일화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순박한 인상의 브렛 필. KIA는 모두가 부러워할 외국인 타자를 보유하게 됐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KIA타이거즈 브렛 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