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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병>(마이클 웨셀스 지음)
ⓒ 세리프

올 초 우리나라는 터키에서 실종된 김모(17) 군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김군 실종이 이슬람 무장단체인 '아이에스(IS, 이슬람국가)'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했다. 실종 장소가 터키 남부 킬리스라는 점이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킬리스는 최근 아이에스에 가담하는 터키와 유럽 젊은이들의 월경 지역으로 주목받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군이 아이에스에 가입하려는 청소년의 사례로는 처음이어서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지난 2월 영국인들은 자국 소녀 3명이 아이에스 거점국인 시리아로 넘어갔다는 보도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3월에는 10대 후반의 영국 소년 셋이 시리아로 잠입하려다 터키에서 체포된 일도 생겼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아이에스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떠난 자국민 수가 600명을 넘었고, 이중 청소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550명 정도의 청년들이 터키를 거쳐 아이에스 거점이 있는 시리아로 넘어갔다고 한다. 지난 2월 터키 정부가 아이에스 가입 희망자 1만여 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이에스는 잔혹한 참수 장면을 내보내 전 세계인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과격 무장단체다. 김군 같은 평범한 청소년들은 그곳에서 '전쟁 기계' 같은 소년병으로 개조되어 야만적인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아이에스를 비롯한 무장 단체를 추종한다. 소년병에 대한 '판타지'라도 있는 걸까.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마이클 웨셀스는 이 책 <소년병>에서 강제적이거나 자발적인 방식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10대 소년병들의 문제를 다룬다. "소년병 문제의 원인과 충격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용적인 대책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책이라는 저자의 소개가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군, 군벌, 반군 단체, 준군사 조직, 기타 무장 단체들이 국제법에서 18세 미만의 청소년이라고 규정하는 소년병들을 약 30만 명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간단한 대답은 많은 사람들과 집단들이 청소년을 부당하게 병사로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소년병을 마지막 수단으로 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만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전쟁을 일으키고 계속하는 어른들이나 전쟁을 수행하는 지역의 지휘관들에게는 청소년을 병사로 이용하는 편이 편리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19쪽)

이 책에서 소년병은 "정규군이나 비정규군의 일부로 활동하는 18세 미만의 청소년"으로 정의된다. 위안부와 강요된 결혼 목적으로 차출된 소녀들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은 보초, 경호원, 짐꾼, 가사 노동자, 의무병, 경비병, 스파이, 요리사, 지뢰 제거병, 모집책 등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총을 휴대하고 있거나 휴대한 적이 있는 청소년만을 소년병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년병들을 인간성을 잃어버린 '전쟁 기계'나 '악마'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정신병에 걸린 소년병들만이 살인자가 된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보통의 소년병들이 살인을 배우고 이를 반복적으로 자행한다는 것이다. 살겠다는 의지, 복종, 폭력의 일상화, 살인에 따른 만족감, 이데올로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저자는 소년병을 어른들의 강요와 위협에 의해 병사가 된, 수동적이고 무고한 청소년들로 보는 시각에도 비판적이다. 소년병들이 정치적인 투쟁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해 당사자들이므로 '의미 제조자(makers of meaning)'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방과 사회적 변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투쟁에서 의미를 발견한 청소년들은 노골적인 강요가 없더라도 무장 단체에 이끌리게 된다. 또한 무장 단체에 가입함으로써 소년병들은 존경을 받거나 한 가족 같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호, 음식, 건강관리 또는 훈련과 같이 민간 생활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익도 얻을 수 있다. (21쪽)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청소년들이 무력 충돌에 참여한 적이 있는 국가들이나 지역은 27개라고 한다. 이들 대다수는 오랜 내전 등으로 전투가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청소년을 소년병으로 착취하는 현상이 이들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영국은 최근까지 17세 청소년이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지금도 부모 허락만 있으면 16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이 군에 입대할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2002년 1월 1일부터 시작해 9개월 간 17세 청소년 2만7755명을 신병으로 입대시켰다고 한다.

저자가 전하는 소년병들, 특히 소년 전투병들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무장 단체 지휘관들은 소년병들의 공포심을 줄이고 적군을 죽이겠다는 각오를 다져주기 위해 살해된 사람들의 피를 마시도록 강요하는 카니발리즘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고 한다. 상당수 무장 단체가 전투 중 마약 사용을 허용 또는 장려하거나 지시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소녀병 문제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폭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처럼 소녀병들이 언론에 의해 집단 강간과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희생자로 강조되는 획일적이고 선정적인 이지미 때문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소녀병들은 성폭력의 피해자로뿐만 아니라 아기 엄마, 가사 노동자, 노무자, 스파이, 훈련 교관,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고 한다.

소년병 문제의 배후에는 국제 관계의 역학,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치적·사회적·종교적 갈등 등 다양한 요인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어느 한 가지 측면만 보아서는 소년병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저자가 소년병 문제의 하나로 무장 단체의 자살 폭탄범과 일반적인 테러리즘을 둘러싼 일반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테러리즘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볼 때 오랫동안 보다 힘없는 집단들이 훨씬 더 강력한 적을 상대로 사용하는 주요 도구들 중 하나였다. (중략)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연구 대부분은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심리학적으로 정상임을 보여주었다. 테러리즘은 당연히 비이성적 행위라고 보는 견해를 한꺼풀 벗겨보면 그곳에는 비교적 시종일관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논리성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관, 신념, 관행이 존재한다. (164쪽)

저자의 지적대로 매일같이 민족적 모욕감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스리랑카의 타밀 민족이나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에게는 테러 활동이 정의 실현 방법을 가져다주겠다는 약속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전쟁 국가나 지역의 구조적 불의와 이에 따른 청년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일이 중요함을 지적한다. 김군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시각도 이와 관련된 방향에서 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기존에 나온 소년병 관련 책들은 그들을 '약탈을 일삼는 청소년 살인자들'처럼 선정적으로 바라본 측면이 강했다. 저자는 이 책을 희망적이고 빠른 복원력을 보이는 소년병 집단과 고통에 빠진 소년병 집단 양쪽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 썼다고 한다. 그 진정성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통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소년병들을 대신해 국제 사회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군복을 갖춰 입은 '아스팔트 보수'가 준동하고, '일베 현상'으로 지칭되는 증오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김군 사례가 '예외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소년병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년병>(마이클 웨셀스 지음, 이상근 옮김 / 세리프 / 2015. 4. 6. / 408쪽 / 1,48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소년병 이야기 -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전쟁 기계가 되었다

샤론 E. 맥케이 지음, 하정임 옮김, 대니얼 라프랑스 그림, 다른(2014)


태그:#소년병, #소녀병, #IS 김군, #무장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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