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KBO 리그(솔직히 지금도 이 명칭이 낯설고 굳이 32년 넘도록 국민들에게 익숙하게 자리했던 '프로야구'라는 명칭을 버리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초반 흥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0년대 들어 처음으로 시즌 초반 평균관중이 10,0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3월 28일 개막 이후 주말에 날씨가 화창했던 적이 드물었고 심한 일교차로 인해 평일 저녁에 야구보러 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는 것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보는 흥미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시즌 초반부터 끝내기 대역전 승부가 숱하게 일어나며 예측불허의 접전이 펼쳐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각 팀마다 불펜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어이없는 실책이 속출하는 등 리그의 전반적인 수준이 하향 평준화 되면서 빚어진 측면이 더 크게 보였다. 오히려 지나친 역전 승부의 속출로 '과유불급'의 피로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번 주말 3연전을 통해 왜 야구 보는 재미를 버릴 수 없는지를 몸소 보여준 팀이 있다. 바로 한화 이글스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4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맡은 한화 이글스는 2010년대 들어 KBO리그 단골 하위팀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201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시즌 초반 20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5할 승률은 커녕 4할대 승률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최약체 전력이었다.

그러나 '야신'은 달랐다. 시즌 초반 워낙에 약한 전력 탓에 매 경기 힘겨운 승부가 펼쳐지고 심지어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빈볼 시비로 인해 '야신' 김성근 감독에게 덧씌워져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확대시키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글스 선수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9경기를 치르는 동안 9승 10패의 5할 언저리 승률을 유지한 상태에서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이 왕조시절을 일구었던 SK 와이번스와 홈에서 올 시즌 첫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이글스는 4월 24일에 펼쳐진 주말 3연전 첫 경기에서 올 시즌 팀 선발진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안영명의 5이닝 무실점 호투와 나머지 4이닝을 합작하여 틀어막은 좌완 계투조 박정진, 권혁의 완벽한 구원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둔다.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4월 25일 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이글스 홈구장인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는 13,000석이 가득 찼다. 시즌 두 번째 매진을 기록한 이글스 파크는 충성도 높은 이글스 팬들의 우렁찬 응원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글스와 와이번스는 4회부터 점수를 주고받는 접전을 펼치면서 6회까지 2-2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글스는 7회부터 올 시즌 야심차게 영입한 FA 배영수를 마운드에 올려 접전의 기세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배영수가 예상 외의 난조를 보이면서 이글스는 3점을 실점했고, 경기 후반 3점차는 와이번스의 막강 불펜진을 감안할 때 뒤집기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이글스는 곧바로 이어진 7회말 반격에서 선두타자 권용관을 필두로 3타자 연속 호투하던 상대팀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내리 3안타를 뽑아내며 무사만루의 찬스를 만든다. 그러나 이글스는 대타 이성열이 얕은 중견수 플라이로 주자를 불러 들이는데 실패하고, 폭투가 나온 틈을 타서 3루 주자 권용관이 재치있게 홈을 파고 들었지만 비디오 판독에 의해 판정이 아웃으로 뒤집어지는 불운을 겪는다.

이대로 만루 기회가 무산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와이번스 구원투수 문광은의 두 번째 폭투가 나오면서 이글스는 기어이 한 점을 만회했고, 3번타자 최진행의 적시타로 한 점까지 추격하는 끈질김을 보인다.

한 점차의 살얼음판 승부가 지속되던 9회초 이글스는 7회부터 구원 등판하여 호투하던 이동걸이 정상호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6-4 두 점차의 리드를 내준다. 상대 마무리 투수가 올 시즌 단 한 차례도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았던 윤길현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승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글스는 9회말 공격에서 1사 후 신인 주현상이 좌전안타로 출루하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다. 2사 후 이성열의 몸에 맞는 볼이 나오고, 최진행이 7회에 이어 또 다시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적시타를 터뜨리면서 이글스는 다시 6-5 턱밑까지 추격한다. 4번 김태균의 안타성 타구는 아쉽게도 상대 2루수 나주환의 몸을 던지는 수비에 막혀 동점에 다다르는데 실패하지만 이글스는 2사 만루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5번 김경언은 윤길현을 상대로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극적인 2타점 역전 끝내기 안타를 작렬하면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소름 돋는 장면을 연출한다.

쉽지 않아 보이던 승부를 기어이 뒤집는 저력을 발휘한 이글스 선수들의 투혼에 홈 팬들은 또 다시 4월 26일 일요일 경기에서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를 이틀 연속 가득 메워주며 화답한다.

이글스는 전날 경기에 이어 또 다시 선취점을 내주지만 끈질기게 따라 붙으면서 6회에 승부를 기어이 뒤집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8회초 박정진과 권혁의 징검다리 역할을 위해 등판한 정대훈이 브라운에게 동점 솔로포를 허용하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8회말 반격에서 이글스는 보내기 번트 실패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1사 1루에서 권용관은 상대 투수 전유수의 떨어지는 볼을 절묘하게 받아치면서 우전안타를 만들어낸다. 이글스 1루주자 정범모는 2루를 도는 순간 잠시 멈칫하게 되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 우익수 브라운은 정범모를 잡기 위해 3루로 볼을 뿌렸다. 그러나 이 공이 악송구가 되면서 이글스는 행운의 역전 득점을 올리게 된다.

올 시즌 이글스 유니폼을 새로 입은 권혁은 자신의 최고 전성기였던 2008 시즌 당시의 위력에 못지 않은 힘을 선보이면서 9회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이글스의 2년 만의 3연전 스윕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첫 시리즈 스윕과 더불어 이글스는 승패 마진을 2로 벌리는데 성공한다. (12승 10패)

주말 3연전 경기 내내 이글스 선수들은 고도의 집중력과 투혼으로 상대가 좀처럼 치고 달아나려는 틈을 내주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쉽게 포기했을 법한 상황에서도 이글스 선수들은 집요하게 상대를 물고 늘어졌다. 김성근 감독 시절 상대를 질식시켰던 와이번스의 왕조시절의 팀 컬러가 올 시즌 이글스에서 고스라힌 재연되는 느낌이다.

모처럼 주말의 화창한 날씨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글스 야구의 고급 컨텐츠가 강한 중독성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야신중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해 개봉했던 영화 '인간중독' 대신에 '야신중독','한화중독','독수리중독' 등으로 수식어를 바꾸어도 손색 없을 만큼 이글스 야구의 중독성은 올 시즌 프로야구 보는 재미를 되살려주고 있다.

이글스의 '중독야구'는 어디까지 지속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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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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