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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녕초등학교 앞의 걷기일행과 환영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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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역 관가샘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은 재정비를 하고 출발한다. 조선통신사 삼사는 돌아가고, 기마단, 농악대, 옛길 걷기팀의 순으로 길을 떠난다. 다음 행선지는 면사무소 앞의 비석군이다. 길은 찰방길에서 치산효령로로 이어진다. 이 길은 신녕을 동서로 잇는 중심도로이다. 이 길 위로 경북선 기찻길이 지나가고, 신녕삼거리까지 가면 남북으로 이어진 장수로를 만난다.

장수로, 찰방길이라는 도로명은 모두 장수역 찰방에서 나왔다.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팀은 장수로를 따라가다 신화로로 접어든다. 신녕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는 학생들이 나와 플래카드를 들고 크게 환영한다. 이곳에서 일행은 화성중앙길로 해서 신녕면사무소 앞으로 간다. 그곳에 관찰사, 현감, 찰방선정비가 있기 때문이다.

 신녕 선정비군
 신녕 선정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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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비석은 원래 면사무소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최근 비석공원을 조성하면서 광장을 조성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공사흔적이 남아 있다. 비석은 모두 30여 기쯤 된다. 관찰사 조영복(趙榮福), 현감 김병원(金炳阮), 찰방 최상봉(崔商鳳)의 이름이 보인다. 조영복은 1725년(영조 1) 5월에 경상감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5월 승지가 되었으니 그의 재임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이름 앞에 상국(相國)이라고 적혀 있으니 그가 정승 자리에 올랐어야 한다. 그러나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그는 정승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상국은 높여주는 뜻으로 사용된 표현이다. 이 비석은 숭정기원후 8○년이 되는 병오(丙午: 1826)년에 세웠다. 그리고 현감 김병원의 선정비는 함풍(咸豊) 7년(1857: 丁巳) 5월에 세웠다. 그러므로 김병원은 조선 철종 때 신녕현감을 지냈다. 그 후 그는 고종 때 양근군수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수찰방비
 장수찰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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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모두 5기의 찰방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찰방이 관찰사나 현감에 비해 낮은 직책이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 기록을 살펴보아도 장수찰방의 이름은 두어 군데서만 확인된다. 강홍중(姜弘重)의 동사록(東槎錄)에 보면, 1624년 9월에 장수찰방 이대규(李大圭)가 조선통신사 일행을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조엄(趙曮 1719~1777)의 <해사일기(海槎日記)>에 보면, 1763년 8월 16일 영천 조양각의 전별연에 장수찰방 이명진(李命鎭)이 참석한다.

이곳 면사무소에서는 정면으로 팔공산이 보인다. 팔공산은 신녕의 진산으로 갓바위 부처가 있는 관봉이 남쪽으로 보인다. 일행은 이곳에서 영천시 문화체육과 이원조 문화예술담당으로부터 잠시 비석군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가지고 쉬어간다. 농악에 맞춰 춤도 추고,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마상재 보러 휘명승마장으로

 마상재를 준비하는 기수
 마상재를 준비하는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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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는 휘명승마장이다. 그곳은 조선통신사로에서는 조금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다. 그러나 영천 조양각에서 해야 할 마상재와 마상무예가 그곳에서 시연되기 때문에, 그리로 가는 것이다. 이 길은 919번 지방도 신화로를 따라 이어진다. 중간에 신녕향교도 보이고, 의흥과 영천을 잇는 28번 국도도 만난다.

이 교차로를 지나면 길은 오르막이고, 고개를 넘으면 휘명동산으로 빠지는 길이 나타난다. 길 입구에 '기수(騎手)는 천천히 가라(Equestrian slow)'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지붕을 얹은 승마장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말이 흥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농악대도 소리를 줄인다.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이 걸어서 승마장에 도착하니, 마상재와 마상무예를 보여줄 기수들이 준비하고 있다.

 마상무예 6기
 마상무예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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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전통문화연구소에 소속된 기수로 최형국 박사 등 4명이다. 이들이 보여줄 재주는 마상재와 마상무예다. 마상재는 말 위에서 부리는 재주를 말하고, 마상무예는 말 위에서 무기를 가지고 보여주는 무술을 말한다. 마상재와 마상무예는 각각 6가지가 있다. 이들은 정조 때인 1790년에 발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그 내용과 그림이 실려 있다.

마상재와 마상무예

마상재는 말을 타고 부리는 기술로, 기예(騎藝)라고도 한다. 마상재는 6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마입마상(走馬立馬上), 좌우칠보(左右七步), 마상도립(馬上倒立), 횡와마상양사(橫臥馬上佯死), 좌우등리장신(左右鐙裏藏身), 종와침마미(縱臥枕馬尾)가 그것이다. 주마입마상은 달리는 말 위에 똑바로 서는 재주를 말한다. 좌우칠보는 말등을 넘나들며 7보를 걷는 재주다. 마상도립은 말 그대로 말 위에서 거꾸로 서는 재주다.

 말 위에 길게 누워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말 위에 길게 누워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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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옆구리에 거꾸로 매달리기
 말 옆구리에 거꾸로 매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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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위에 길게 거꾸로 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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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3가지 재주는 용어가 더 어렵다. 횡와마상양사는 말 위에 길게 누워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동작이다. 좌우등리장신은 기수가 말 옆구리에 매달려 거꾸로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는 기술이다. 종와침마미는 두발을 등자에 건 채로 길게 누워 기수의 머리를 말의 엉덩이로 가져가는 기술이다. 이때 떨어지지 않도록 기수는 말 꼬리를 잡기도 한다.

최형국 박사 등 네 명의 기수는 먼저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일행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6가지 마상재를 차례로 보여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주의 수준이 높지는 않다. 주마입마, 좌우칠보, 횡와마상양사는 잘 하는 편이지만, 마상도립, 좌우등리장신, 종와침마미는 아직 기술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라도 보여주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

 마상 기창
 마상 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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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무예는 기창(騎槍),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의 6기로 이루어져 있다. 기창은 말을 타고 창을 쓰는 무예다. 마상쌍검은 말을 타고 쌍검을 쓰는 무예다. 마상월도는 말을 타고 청룡언월도를 쓰는 무예다. 청룡언월도는 관우가 사용해 유명해졌다. 마상편곤은 편곤을 사용하는 무예다. 편곤은 막대 끝에 쇠사슬을 단 무기다. 격구는 막대로 공을 쳐서 구문(毬門)에 넣는 무예다.

이 기술은 무기를 사용해선지 훨씬 그럴 듯하다. 먼저 말을 타고 과녁에 화살을 정확히 맞추는 시범을 보인다. 그리고 나서 무예를 하나하나씩 보여준다. 창, 검, 도, 편곤 시범이 멋지다. 특히 긴 칼인 월도를 가지고 말 위에서 하늘을 가르는 시범은 마상무예의 백미다. 마지막으로 검을 가지고 볏단을 베면서 무예를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진행이 매끄러운 편이다.

조선통신사 사행기록에 나타난 마상재 이야기

 눕는 묘기
 눕는 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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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렴의<해사록(海槎錄)>에 보면 동명은 1636년 8월 30일 영천 조양각(朝陽閣)에 도착해 마상재를 본다.

"상사와 함께 조양각에 올라가서, 함께 가는 마상재(馬上才) 두 사람에게 성밖 냇가에서 달리게 하니, 섰다가 누웠다가 거꾸로 섰다가 옆으로 붙었다가 하여 날쌔기가 형용할 수 없었는데, 구경꾼이 담을 두르듯이 많았다." 

 마상월도
 마상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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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김지남(金指南)이 쓴 <동사일록(東槎日錄)>에 보면, 1681년(壬戌) 5월 20일 영천 조양각에서의 연회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연회가 끝난 후 경상감사가 삼사에게 마상재를 볼 것을 청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마상재를 보여준 사람이 오순백과 형시정임을 알 수 있다.

"몇 차례 술잔이 돈 뒤에 방백은 마상재를 보기를 청했다. 삼사와 방백이 모두 각각 교자를 타고 풍악과 가무를 앞세워 조양각(朝陽閣)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순백(吳順白)·형시정(邢時挺)에게 여러 가지로 말 위에서 하는 재주를 보이게 했더니, 누각 앞 넓은 들판에는 구경꾼이 저자와 같았다. 이것이 바로 객회(客懷)를 풀어 주는 것이다."

기수단, 농악대와의 아쉬운 작별

 기수단과의 작별 인사
 기수단과의 작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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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재가 끝나면서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에 대한 환영연은 모두 끝났다. 이제 영천을 향해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영천으로 가는 길은 연정리, 효정리, 화산리, 가상리, 암기리, 대기리를 거쳐 오미동, 창구동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대표적인 거점은 효정교-화산교-시안미술관-암기보건진료소-경북 차량용 임베디드 기술연구원-농업기술센터-조양공원이다.

휘명동산을 나온 걷기 일행은 삼거리에서 농악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기마단은 마상재를 하는 동안 이미 떠났다. 농악대도 앞으로 계속될 도보에 무운장구를 빌어준다. 이제 조선통신사 걷기팀은 신화로를 따라 20㎞ 이상을 걸어야 영천에 도착할 수 있다. 신녕중학교에서 목표지점 조양각까지는 25㎞ 거리다. 중간에 화산면 가상리 가래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 두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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